묵상

나의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까

최종혁 · 2026.07.31 · 말라기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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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우상 숭배자가 된 것이 타락이며, 우상 숭배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예배자가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 궁극의 우선순위이며(존 맥아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선교(전도)가 존재합니다(존 파이퍼).

개념적으로 보면 예배는 하나님의 하나님이심(가치)를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행위를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잘할 때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예배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그 일의 가치를 크게 생각하면, 단순히 그 일에 대하여 칭찬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 자체를 칭송하기도 합니다. 흔히 ‘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면 분야에 상관 없이 따르는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그 행위는 예배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상 숭배에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십니다(6절). 하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반문합니다(6절).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조목조목 대답해 주십니다. 그들은 그들이 총독에게도 드리지 않을 눈 먼 희생제물을 가져왔습니다(8절).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했습니다(13절). 그래도 어쨌든 제사는 드렸고 예배는 드린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배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가치는 그들의 총독보다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받으셔야하는 분이 아니라, 어차피 버릴 가치 없는 것을 받으셔도 상관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예배가 아니라 조롱입니다. 하나님께 “당신 자신은 이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가치 밖에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멸시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10절).

말라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당신의 예배는 어떠한가?”라고 묻습니다.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 뿐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묻습니다. 그 모든 나의 예배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드러나고 계시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내가 좋아하는 어떤 영화 배우나 가수, 스포츠 선수보다 못하신 분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지, 멸시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이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중에서 위대하게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11, 14절).

오늘의 한 구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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