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욥의 입장에서 그리고 욥기를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구들의 오해를 푸시고 욥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시는 것일 것입니다. 욥과 친구들은 몰랐던 하늘에서 벌어졌던 일들을(욥 1-2장)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만 하면,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욥에 대해서 오해했던 것을 알고 사과할 것이고 욥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의 이유를 이해하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욥에게 질문을 퍼부으셨습니다. 마치 욥을 책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들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혜와 주권을 강조하셨고, 결국은 그것이 욥으로 하여금 자신을 바로 보게 만듭니다.
먼저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이 땅을 비롯한 모든 만물들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당연히 욥은 알지 못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보고 관찰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추측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상 오늘날의 과학은 근본적으로는 ‘왜’에 대한 답은 없다고 합니다. 그저 생존에 유리한 것이 살아남은 것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유를 가지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욥이든 누구든 함께 있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욥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41장의 리워야단에 대한 말씀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였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사람이 길들여서 가축으로 삼기도 하고, 데리고 놀기도 하고, 잡아서 팔기도 하고 하지만, 리워야단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운 존재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 피조물 앞에서 스스로 겸손할 수 밖에 없다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들이 선포하고 있는 창조주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같은 피조물 앞에서는 겸손하면서 창조주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롬 1:22-23). 이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욥 4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