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복음서의 제자들과는 마치 다른 사람들 같습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항상 배우는 것이 더디고, 이기적이며, 믿음이 적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확신에 차 있고, 담대합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복음과 하나님을 먼저 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서 그날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4절). 당연히 이는 큰 소란이었고,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와서 심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절)
이 위협적인 상황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답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말입니다(10절). 예수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어필해야할 것 같은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먼저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했고,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임을 스스로 밝혔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이 당당한 태도에 그들을 심문하던 자들은 오히려 당황하면서, 자기들끼리 의논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서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18절).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20절)
분명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달라졌습니다. 왜일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 안에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을 담대하게 하시고 그들이 할 말을 생각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들을 달라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성령님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임하셨습니다. 그들 안에 계셨던 성령님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다르지 않습니다. 즉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달라지게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두려워하는 자를 담대하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십니다(고후 4:7). 제자들을 변화시킨 힘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더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