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서셨던 그곳에 서있었습니다. 얼마전 그곳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결국 이방인의 손에 십자가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떠났었고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베드로와 요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크게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유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을 문들을 닫”아두고 있었습니다(요 20:19).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서섰던 그곳에서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구원의 이름임을 선포했습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13절). 그들은 제자들을 통해 나타난 표적과 그들의 담대함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표적은 너무나 분명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는 말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권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자들을 위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행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증인으로서 제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인이 되라고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신 예수님께서 주신 명령을 순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가운데 제자들은 담대하게 보고 들은 것을 말했던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제자들과 같은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도들이 드린 기도가 또한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29-30절).
“주님,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우리의 연약함을 주께서 돌봐 주소서. 무엇이든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주의 종으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 되는 이적은 지금 없을지 몰라도,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능력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삶을 통해 주께서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시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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