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은사는 정말 다양합니다. 크게 ‘입’의 은사(말하는 은사)와 ‘손’의 은사(섬기는 은사)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보다 세부적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은사를 나열한 것도 아닙니다. 한 성도에게 하나의 은사만 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 뜻에 따라 각 성도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고 그런 면에서 그 성도의 은사는 유일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세부적으로 나눠보자면 은사의 수는 성도의 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각자가 성령님께서 주신 독특한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직분’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직분은 은사와는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전하는 직분과 말씀을 전하는 은사는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직분은 말씀을 전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맡아야 하지만, 말씀을 전하는 은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성도를 돌아보는 은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목회자가 되어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은사를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어떤 직분을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도 비슷합니다. 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 서로 다른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이 같은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역에는 하나의 은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은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은사는 여러가지이지만 은사를 주신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여러가지 직분을 맡아서 섬기지만 결국 같은 주를 섬깁니다. 어떤 사역을 하더라도 일하시는 하나님은 동일합니다.
신기하게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성도들이 이 당연하고 중요한 사실을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열심이 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생각도 많고 애정도 많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섬기고 은사는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만약 내가 은사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교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 일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본질적으로 나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내가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 유익이 되는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것 역시 세상의 가치관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재능(gift)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인데, 교회에서 은사(gift)는 남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은사는 그렇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랑과 겸손이 나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