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는 구약에 감추어졌던 비밀이었는데, 이제 드러난 그 모습을 보아도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교회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종종 우리 몸에 비유됩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어서 각기 다른 기능을 하지만 결국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면에서 몸과 교회는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하나의 지휘 체계 아래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교회는 조금 다릅니다. 교회에도 물론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각 지체라고 할 수 있는 성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각자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기계가 아닌 인격체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 다른 인격체의 뜻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강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정말로 놀라운 유기적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에게 3개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그 모습 그대로 기능하는 것을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완벽한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를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교회가 되라고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에게 해당되는 부분은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하라입니다.
‘부지런함’은 많은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자기 절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마음을 쏟는 것,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의 경우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책임져야할 사람은 많지만, 자신을 책임져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리더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목자장이신 예수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일을 하는 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님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그분의 양을 치고 먹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목자로서의 역할을 베드로에게 위임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일을 대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해서도 안됐고 다른 어떤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할 수도 없었습니다(벧전 5:2). 정말로 부지런히 그 일에 충성을 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한 지체로서 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사와 직분을 통해 최선을 다해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교회의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그것을 위해 내가 먼저 교회의 합당한 지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