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변화된 삶을 드리는 살아 있는 예배

최종혁 · 2024.05.06 · 로마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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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지금보다도 훨씬 적었던 어린 시절에 제일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로마서 12장 1-2절이라고 답했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 말씀이 명령하는 하나님을 위한 삶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 보통, 중간’이 익숙한 저에게 이런 삶은 뭔가 달라서 그렇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이 말씀은 여전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전에는 단지 이 말씀에서 말하는 삶이 멋있어 보였다면, 지금은 정말로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이 세상의 것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과 달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삶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1절 가장 앞에 있는 단어 “그러므로”입니다. 이 “그러므로”가 없었다면 1-2절에서 말하는 삶은 불가능한 또 다른 율법일 뿐입니다. 이 삶은 절대로 ‘합당한’ 예배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명령 앞에는 “그러므로”가 있습니다. 로마서 1-11장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죄인인지, 그에 합당한 결과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 구원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지금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한 모든 말씀이 이 명령의 근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이해했고 받아들였다면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너무나 “합당한(당연한)” 예배입니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의 ‘일부’든 ‘전부’든 그것이 진짜 ‘나’를 드리는 것을 ‘대신’해서 드리는 것이라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의 일부를 드리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것이나 나의 일부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만이 합당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이 예배는 또한 단순히 “나를 드립니다”라는 입술의 고백만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변화된 삶이 그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삶은 새롭게 되는 마음이 먼저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이 가득한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인 우리의 삶입니다.

지금부터 또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이 말씀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면서 또한 부담이 되는 말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변화된 삶’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기억합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또한 지금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변하게 하시는 은혜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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