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는 말씀의 은사

최종혁 · 2024.06.18 · 고린도전서 1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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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령의 은사에 대한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1절)

그리고 이제 바울은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며, 방언이 아니라 예언을 추구할 것을 말합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가 방언을 잘못된 동기로 너무나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동기란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방언이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일반적인 원리로서 예언이 교회 안에 더욱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이적의 은사로서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이었습니다(22절). 따라서 일반적으로 교회가 모여서 예배를 하는 상황에서 방언이 필요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특별함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방언을 더욱 원하고 있었고, 바울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방언과 예언을 통해 잘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방언 치중 현상은 표면적인 문제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은사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특히, 그 목적을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은사의 목적을 강조합니다.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은사는 은사를 받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은혜의 통로가 될 뿐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은사는 제대로 활용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예를 들어서 말하는 예언은 오늘날 말씀 사역과 같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며 예언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예언은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고 그래서 교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을 합니다(3절).

교회 안에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 더욱 책임감과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를 잘해서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설교든 강의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세움을 받고 권면을 받고 위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르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저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사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결코 나태하게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설프게 해서도 안됩니다. 다름 아닌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 교회의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려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심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신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실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쉽지 않지만 참 감사한 일입니다. 늘 감사하며 주신 일에 더욱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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