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은 어떻게 보면 고넬료라는 한 사람의 구원 이야기 같지만 사실 복음 전파에 있어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들에게 복음을 드러내셨을 때부터 복음은 어느 때도 어떤 사람이나 어떤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셨을 때도 그가 복의 근원이 되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셔서 다른 민족들이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에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것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유대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선민 의식에 빠져서 유대인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 받지 못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다름’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시길 원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분리’의 도구로만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벽이 세워졌고 적대감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런 분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치시기 위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환상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였습니다(15절). 하나님의 기준보다 높은 기준은 더 좋은 것이 아니라 죄입니다. 베드로도 이 교만한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는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한 편견과 차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혹은 특정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 그런 사람들은 마치 구원 받지 못할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나에게 어떤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할 사람 혹은 구원 받으면 안되는 사람으로 봅니다.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는 ‘젠더 이슈’도 비슷합니다.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하는 것과 죄인을 회개 못할 죄인 취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그렇게 합니다. ‘회개’를 말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심판’만 선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의 어떠함으로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구원 받을 만해서 구원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히시고 의롭다고 선포하십니다.
복음에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차별한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적인 모습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나는 조금은 구원 받을만했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편견을 버려야 하고 어떤 형태의 차별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는 복음을 바르게 선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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