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칭이 있을만큼 그의 사역은 괴롭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계속해서 선포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선지자로서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이런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실하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예루살렘의 함락을 그의 눈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그 참혹하고 괴로운 마음을 기록한 것이 예레미야애가입니다.
단순히 건물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않고,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삶아 먹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참혹한 모습 앞에서 예레미야는 “내가 그렇게 될거라고 그렇게 경고했잖아!”라며 자신이 옳았음을 드러내거나 한숨을 쉬며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애 3:48-49).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소망을 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소망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소망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 때문에 소망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인자와 긍휼(22절), 하나님의 크신 성실하심(23절), 하나님의 선하심(25절)이 그가 이 절망 속에서 여전히 소망을 품는 이유였습니다. 사람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무섭지만, 결국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은 선하심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은 좋은 일입니다(26절). 예레미야는 비록 지금 눈물 중에 있지만 이 소망을 굳게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다림이 길어질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기다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성실하심, 선하심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다림으로 그 은혜를 맛보고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의 한 구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