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사람으로서 참 놀라운 특권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부분적으로나마 모세에게 특별히 자기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셨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출 33:11).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도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민 12:8). 모세 후에 일어난 그 어떤 선지자도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신 34:10).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친밀하게 알았던 모세는 때로는 하나님의 편에서 백성들에게 말하기도 했고 때로는 백성들의 편에서 하나님께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자신이 아는 하나님을 말합니다(3절 “여호와의 이름”).
먼저 모세는 하나님을 ‘반석(바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반석의 이미지는 모세가 설명하는 것처럼 모든 것에 있어 완전하고 바르고 공의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구름은 계속해서 모양을 바꾸고 흘러갑니다. 따라서 그런 구름에 두고 무엇을 약속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위는 그런 이미지가 아닙니다. 바위는 변하지 않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위의 이미지고, 모세는 하나님을 그런 바위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석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을 ‘보호자’라고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보호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습니다. 마치 자기 새끼를 지키는 독수리 같이 지키셨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사실은 기대할 수도 없는 그런 보호자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셨습니다.
그래서 끝으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은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 것을 말합니다(5-6절). 부모에게 자녀는 순종해야 하지만,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자녀의 불순종은 말이 안됩니다. 순종하는 자녀라고 해도 부모 입장에서는 손해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사랑으로 그 일을 합니다. 기쁨으로 합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안다면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 받는 자녀로서 합당히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