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자녀 삼으신 사랑에 합당하게 살기

최종혁 · 2024.12.09 · 요한일서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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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컴음을 받게 하셨다는 이 말씀을 우리는 어쩌면 너무 가볍게 혹은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당연한 것도 가벼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수된 우리를 자녀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이것은 권세일 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당연한 책임이 있고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그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반문이 나올만한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
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는 마귀에서 속하였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 구원 받은 자도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요한도 2:1에서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것은 ‘특징’입니다. 즉, “죄를 짓는다”는 말의 의미는 한 번이라도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특징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특징이라고 할 때는 항상 그렇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1장에서 봤던 것처럼 이들은 죄에 더 민감하여 죄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럼, 요한은 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헉하고 놀랄만한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그것이 올바른 기준이고 생각의 방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죄 지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는 없지”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죄를 좋아하는 우리의 남은 본성은 죄에 더 쉽게 넘어지고 죄를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멸하려고 하셨던 그 마귀의 일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만약 실제로 이것이 내 삶에 대한 묘사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바로 하나님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고 하고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람이고 우리 삶의 특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삶으로 세상 가운데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선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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