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룹바벨 주도 아래 이루어졌던 1차 귀환에 이어서 에스라의 주도 아래 2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첫 귀환의 목적이 성전 재건이었다면, 둘째 귀환의 목적은 백성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숙한 학자였던 에스라였습니다(스 7:6).
2차 귀환한 사람들의 전체 인원은 5-8천 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1차 귀환 인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긴 이동 거리나 가지고 가야하는 많은 물품들 등을 고려해 보면 대규모 이동이었고, 누가 봐도 보호해 줄 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에스라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에스라는 왕에게 도움을 구하기보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라가 그렇게 한 이유입니다. 그는 평소에 왕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말했었습니다(22절). 에스라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그가 평소에 했던 그 말을 증명할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왕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겸손히, 하지만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21, 23절).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안전하게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31절).
이 말씀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조금 뒤 또 다른 귀환의 리더인 느헤미야는 왕의 도움을 받으며 귀환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것”이라고 말합니다(느 2:8). 우리는 때에 따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신앙의 양심에 따라 담대한 선택을 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에스라는 그의 신앙에 따라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분명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 신앙을 선택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에 따른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같은 선택을 하여 하나님을 나타낼 기회를 그렇게 놓쳐 버립니다. 우리에게 필요함 담대함은 순종할 수 있는 담대함임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스 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