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서로를 향해 더욱 넘치는 사랑

최종혁 · 2024.10.07 · 데살로니가전서 2:17-3:13

본문 글자 크기 100%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일행은 유대인들의 극심한 핍박으로 인해서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제 막 세워진 교회를 바울은 부모가 갓난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돌보고 있었기에(살전 2:7, 11), 그들을 떠나는 것은 마치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부모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아이를 잘 돌봐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맡기고 떠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환난이 그들에게 있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난 후에도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2:18).

이런 상황을 바울은 계속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3:1). 사탄이 자신들도 방해하고 있었기에 연약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5절). 그래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고,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보이며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의 말씀을 그들의 삶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1:2-10). 바울은 이 소식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고 이제야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3:7-8). 바울이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염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이런 마음은 비단 목회자로서 그리고 교회의 개척자로서 교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그렇게 서로를 돌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25–26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됨’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됩니다. 나는 환난에서 빠져나왔으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 있는 다른 성도를 염려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나 하나’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씩 좋은 옷 입고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말씀 듣고 오는 사교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입니다. 한 몸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어 함께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기도가 이런 하나됨을 추구하는 우리의 서로를 위한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살전 3:12–13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어서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