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렇지만, 오늘 말씀처럼 ‘이게 맞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은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서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예수님께 구했습니다(25-26절).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온 것,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린 것,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구한 것 등 모두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자녀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 무언가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본문이 주목하는 것은 이 여인이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26절).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동안 보여주셨던 모습을 보면 그 사실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문제 삼아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절).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의미는 명확했습니다. 여기서 자녀는 유대인이고, 개는 이방인입니다. 거절을 해야 한다고 해도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애초에 굳이 거절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사용하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매몰차게 이 여인의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이 여인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화를 내거나 소리치지 않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절). 자신을 스스로 개에 비유하며 예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이셨던 의외의 반응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의도적으로 교훈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봐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께 어떤 호의를 요청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자격을 생각하고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은혜를 구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믿음이었고, 사실 구원 받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자신의 자격 없음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믿음의 실례를 이 여인을 통해 보여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는 오늘날, 우리는 이 여인처럼 예수님이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어도 나의 필요를 채울 것들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원을, 우리의 영혼을 생각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무엇이 마땅하고(심판), 무엇이 마땅하지 않은지(구원)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분께 나아가야 하고, 그 발 아래 엎드려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긍휼하신 예수님께 나아가고, 그분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 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