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형제를 사랑하기

최종혁 · 2024.06.05 · 고린도전서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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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기에 아무 것이나 다 할 수는 없다는 원리에서 ‘유익’은 꼭 나의 유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에 대해서 말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아무 문제도 될 것이 없습니다. 애초에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었다고 해서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모두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먹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따라서 그렇게 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면서 먹는다면 그 때문에 죄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더 문제 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지식에 따라 행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 그로 하여금 정죄하게 만들고 시험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으로 정죄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다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만의 죄입니다(1절).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지식으로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1-12절).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지금 바울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어떤 성경의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8절이 말하는 것처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합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더 나쁜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바울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유익’은 나만의 유익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나한테는 좋은 것이라고 해도 남에게 좋지 않다면 그것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식의 올바른 사용이고 사랑입니다. 사실 지식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리고 배려해야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바울의 이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내가 먹고 싶은 고기를 먹거나 내 생각에 옳은 일을 하는 것과는 비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하셨던 형제를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나 내가 옳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중요한 일로 만듭니다.

사랑하기 어려울 때, 나의 유익을 구하고 싶을 때, 항상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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