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와 관련된 가치관만큼 과거와 지금이 많이 달라진 것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정말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결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떤 필요, 예를 들면 ‘노년에 외롭지 않기위해’와 같은 것들이 아니면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에서 어떤 ‘당위성’과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성경은 결혼을 ‘부르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 남편이나 아내만 구원을 받은 경우, 그것도 하나의 부르심으로 볼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이는 39절 말씀과 고린도후서 6장 14절이 제시하는 결혼의 기본 원리에 따라 배제됩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주 안에 있는 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경우는 부부가 둘 다 믿지 않다가 그 중 한 사람만 믿고 구원을 받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믿는 자는 매우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전에는 둘이 좋아서 함께 하던 일을 이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깁니다. 삶의 지향점이 완전히 달라졌고, 따라서 결정하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자녀가 있다면 그들을 양육하는 목표와 방식이 달라집니다.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등도 달라집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부부로서 함께 산다면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믿는 자가 하나님께 불평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왜 이런 상황을 주시는지 원망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혼을 하고 믿는 사람을 만나서 다시 가정을 꾸리면 훨씬 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바울은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는 원리를 적용합니다. 그런 상황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지금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상황을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동일한 상황이 아니어도 비슷하게 이런 원리를 적용되어야할 상황은 많습니다. 우리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상황들이 그렇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그 상황만 벗어나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황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지금’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정말 편하게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상황같은 것은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지금의 부르심에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지금이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