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즘 “조지 윗필드” 전기를 읽고 있다(복있는사람, 2015). 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경험한 대각성 혹은 대부흥 현상을 접하면서, 매일 야외에서 전해지는 말씀에 수십 명이 구원받고 수백 명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감격과 눈물이 지속되었던 그 역사가 지금은 왜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했다. 만일 우리 교회가 오순절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가 경험한 부흥을 겪는다면, 덩굴의 일을 하나님이 풍성하게 일으키고 계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기쁨과 흥분으로 격자의 일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텐데(일곱 집사를 세우는 등).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에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 만일 그런 대각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무조건 격자의 탓으로 보거나 내부의 죄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 지혜로운지 의문이 생겼다. “격자와 덩굴”(“The Trellis and the Vine”)의 저자인 콜린 마샬과 토니 페인도 3장에서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덩굴을 심고 기르신다: 이스라엘

저자는 시편 80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덩굴)처럼 여기시고 약속의 땅에 심으셨으며 온 땅에 가득하도록 자라나게 하시고 돌보신다고 말했다:

이 시에서 하나님은 농부처럼 묘사되었고,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처럼 그려진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신 그 약속의 땅에 심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가꾸셨다. 그 결과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했고, 잎이 무성해져서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릴 정도가 되었다. 가지는 뻗어나고 넝쿨이 널리 미쳤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번영과 형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영적인 풍요로움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편 기자가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담이 무너졌고 지나가는 사람과 들짐승이 함부로 포도나무와 그 열매를 탈취하게 내버려두신 것처럼 보였다. 농부께서 덩굴의 일을 완전히 멈추신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한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알았다. 포도나무 덩굴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오른손으로 친히 심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있게 자라나게 하신다.

시편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도 덩굴의 비유를 이용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고 성장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덩굴로 비유된 이스라엘이 뿌리가 박히고 가지가 퍼지며 꽃처럼 피고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덩굴을 심고 돌보고 기르시며 자라게 하신다. 열매 맺게 하신다. 덩굴의 일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덩굴을 심고 기르신다: 교회

저자는 주님께서 지금도 하고 계신 일이 덩굴을 심고 기르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하게 보고한다. 사도들은 1) 말씀을 전하고, 2)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3)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힘썼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더하시고 복음의 결실을 거두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예수님도 포도나무 비유로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셨다(요 15장).

하나님은 농부시고, 우리는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은 가지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오직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 안에 거하는 일(붙어있는 일)이 “내 계명을 지키”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요 15:10).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고, 그러면 우리를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붙어 있는 가지를 깨끗하게 돌보시고 기르셔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신다. 덩굴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이 아니라 복음 성장에 힘쓰라

저자는 교회 성장이 아니라 복음 성장을 꿈꾸라고 권면한다. 무슨 말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덩굴의 일을 하신다는 진리를 믿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덩굴의 일을 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이 한 영혼 한 영혼 교회에 접붙이시고 그들을 기르시고 돌보시며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 복음(또는 말씀과 증언)으로 인한 하나님의 역사, 덩굴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교회가 복음이 아닌 인간의 방법과 수단과 프로그램과 체계로 교인의 숫자를 불리는 데 헌신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복음 성장이 아니라 교회 성장에 치중된 문제로 볼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설교로 기준을 낮추고, 죄를 지적하는 불쾌한 과정을 없애고 누구든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며, 공동체 구성원의 기호와 성향에 맞도록 교회 운영과 프로그램을 수시로 바꾸는 전략을 취할 때, 우리는 그런 교회를 ‘대형 교회를 꿈꾸는 교회’, ‘사람을 채우는 일에 치중하는 교회’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 부정한 입술을 가진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역사하실 때, 계속해서 사람들을 복음 공동체로 이끄시며 접붙이시고 자라게 하시는 덩굴의 일을 하나님이 친히 하실 때, 그렇게 성장하는 교회를 우리는 ‘교회 성장’에 치중하는 교회라고 정죄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말씀이 뿌려진 곳에서 덩굴의 일을 하심으로 친히 당신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저자는 이 사실을 근거로 세 가지 교훈을 전달한다:

  1.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고 계신 일이라면,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작은 야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복음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
  2. 하나님이 찾으시는 성장은 사람의 성장이다. 사람들이 거듭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며 열매 맺는 것이다.
  3. 이 모든 성장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 우리는 심고 물을 줄 뿐이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저자는 그래서 덩굴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말씀을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효과적으로 더 잘하게 하는 모든 것은 격자의 일이라고 했다.

결론

조지 윗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존 & 찰스 웨슬리 등의 시기에 하나님이 일으키신 대부흥이 오늘날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덩굴의 일을 멈추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땐 순수했고 우리는 불결하다고 섣불리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흠과 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했던 셀 수 없이 많은 격자의 일, 즉 공동체를 관리하고 조직하고 훈련한 일들은 웬만한 교회의 경영과 프로그램이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체계적이며 다채롭다(그들의 전기를 읽어보라). 그때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교회 성장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하나님이 덩굴의 일을 하실 것을 믿으며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말씀의 물을 주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얼마나 자라게 하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많은 사람을 우리 교회에 접붙이시고 자라게 하신다고 해도, 우리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덩굴의 일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고, 그분은 반드시 우리 가운데 그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