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무엇을 위해 살죠?>라는 책으로 박진영이 구원 간증을 나누었을 때, ‘박진영을 구원받은 형제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동안 자신의 노래와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반영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거룩함과 정결함과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의 뜻밖의 놀라운 고백이 잠시 반짝였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박진영은 “첫 열매들”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주 강사로 등장하여 복음과 기독교 교리를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이 채널의 구독자는 8.8만 명에 달하며, 기독교 콘텐츠로는 드물게 조회수 10만을 넘는 영상들도 있다.
하지만, 박진영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박진영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직접 강연 중에 “’우리 목사님이 박진영 강의 듣지 말래요. 박진영은 목사가 아니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우려를 넘어서 다수의 목회자와 기독교 유튜버, 심지어 이단 대책연합회 사람들까지도 박진영의 복음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진영은 몇몇 비판에 관한 답으로, 자신은 구원파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정식적인 신학 교육이나 목회자 훈련 과정을 밟지 않은 것으로 문제 삼지 말고 순수하게 성경 하나로 자신과 대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필자는 박진영이 시인한 구원을 불신하거나 그가 자기의 유익과 인기를 위하여 악의적으로 거짓 가르침을 선포하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사람의 의도는 분명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박진영의 복음 세미나 그리고 여러 교리적 가르침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예정과 선택을 인위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인간의 선택이 있는 곳에는 예정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적이 있었던 시기와 그것이 그친 시기를 구분하면서, 성경에는 믿음만 요구하는 복음과 행위까지 요구하는 복음,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복음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메시지만 가지고 엄격하게 판단하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단적이다. 그러나 성경을 혼자 연구하면서 기존의 기독교 전통의 가르침을 배제한 채,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본문의 의미를 찾는데 서툴러서 그렇다고 이해하려고 든다면 그는 이단이기보다는 어리석고 미성숙한 성도라고 할 수 있겠다.
1. 박진영이 목사가 아닌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리석고 미성숙”하다고 평가한 이유는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거나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성도를 돌아보는 역할로 목사를 언급하는데(장로, 감독이라고도 불린다), 그 자격은 사람이 만든 시험을 통과하거나 훈련을 수료하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딤전 3:2). 오늘날 교단이 인정하는 ‘목사’는 아닐지 몰라도, 박진영은 지금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그에게 요구되는 성경의 자격은 그래서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단지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한다고 말한다(딛 1:9). 성경의 진리를 거슬러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책망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반드시 바른 교훈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또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단의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성경의 바른 교훈을 잘 가르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거의 대부분의 교단에서 존경받는 찰스 스펄전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도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가르침을 어리석고 미성숙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박진영이 어리석고 미성숙하다고 느껴진 부분은 그가 반대로 신학 교육을 무익하거나 도리어 해로울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신학 이론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거부하고 온갖 세속 철학을 뒤섞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독교는 끊임없이 잘못된 교리와 그 교리를 생성하게 된 오류 있는 성경 해석과 싸워왔고, 기독교 정통 신학은 바로 그 치열한 싸움과 논쟁 끝에 지켜낸 성경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가령 초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속성과 삼위일체 등의 논쟁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제거해 나갔고, 공의회의 선언을 통해 올바른 교리를 정립해 갔다. 그런데 그 틀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롯이 본문만 가지고 순수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실제로는 지난 기독교 역사와 전통이 지켜낸 교리의 틀을 쉽게 무너뜨리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전통이 성경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성경에 관한 자기 해석이 수 세기 동안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해석해 온 것과 다를 땐,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연구해 볼 필요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스펄전과 로이드 존스가 위대한 성경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저작에서 충분히 발견되는 사실처럼, 종교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 정통 신학을 존중하며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2. 문제는 자기 신학을 모든 신학보다 성경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기존 신학의 틀을 깨고 오직 성경만 가지고 말한다’라는 주장은 사실상 모든 신학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잘못된 신학이 아닌 이상 모든 신학은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립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좋은 신학은 정립된 교리를 도출하기까지 각각의 근거가 되는 본문을 일관성 있는 해석의 방식으로, 즉 문자적-문법적(문맥적)-역사적 성경 해석의 방식으로 신실하게 연구한다. 어떤 교리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성경의 어떤 구절들이 서로 모순처럼 느껴질 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 즉 더 분명하고 확실한 가르침으로 다른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기독교 정통 신학은 이런 무수한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성경에 근거를 둔 신학으로 계속해서 다듬어져 왔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진영은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 본문을 비교하면서 둘이 모순처럼 보이는 이유를 엉뚱하게 풀어낸다. 오직 믿음만 요구하는 구원이 있는가 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는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선택이 요구된 것에 대해서는 예정하지 않으시고 예지하신다고(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미리 아시고 보신다고) 결론 내린다. 사실상 신자의 구원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한 셈이다. 우리가 믿기로 선택하고 나서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판별된 펠라기우스주의적인 사고와 유사하다. 박진영은 왜 성경의 여러 본문을 통해서 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자기식으로 엉뚱하게 풀어낸 것일까? 그는 왜 오랜 세월 기독교가 정통적으로 정립한, 셀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통해 찾고 발견하고 재확증한 진리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자신이 몇몇 성경 구절을 참고하여 자기만의 결론을 내린 것일까?
필자는 그 궁극적인 이유를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신학을 모든 신학보다 성경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신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직 성경만을 말한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신학이기 때문에 그도 사실상 신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신학은 잘못되었고, 자기 신학은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생각 저변에는 기존 신학 체계는 비성경적인 것이 섞여 있고, 기존 교회는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될 수 있는 한 멀어지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성경 본문에서 발견하는 순수한 것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는 것이다.
3. 그런 태도는 결국 성경적인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박진영이 구원파인지 아닌지를 그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있는지로 파악하려는 이들이 많다. 종종 신자의 구원받은 날짜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을 가지고 구원파 교리와 비슷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박진영이 혹시 구원파라고 할지라도, 구원받은 날짜나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회심할 때 분명한 깨달음을 얻고 또 그날과 장면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신자에게 천편일률적인 회심의 경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원파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박진영의 경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자체적으로 신학을 정립하고 기독교 정통 신학과의 교류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순수하게 성경만을 가르치고 성경의 복음만을 선포한다고 믿으며, 대부분의 교회엔 참된 복음이 없거나 너무도 빈약하다고 섣불리 판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태도는 결국 성경적인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누구보다도 복음적이고 성경적이라고 자부하는 분파라도, 오직 성경만을 연구하고 사람이 연구한 것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그 노력 때문에, 오히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가 생각하고 믿는 길로, 그 길이 진짜 성경이 가리키는 길이 아닌데도, 과감하고 대범하게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지난 세월 모든 거듭난 형제자매에게 성경을 알게 하시고 그들에게 은사와 지혜를 주셔서 성경에 관한 지식을 정립하게 하셨다는 믿음이 없이는, 결국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옳지 않은 길로 가게 된다는 말이다.
필자는 신학교에서 역사 신학과 조직 신학을 배우면서, 기독교는 끊임없이 성경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성경 교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를 가지고 논의해 왔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여러 잘못된 견해가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구원에 관한 많은 잘못된 가르침에 어떻게 배척되었는지를 배웠다. 성경적인 교리는 그렇게 끊임없는 논의와 투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물론,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권위를 거부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견해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논의는 성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박진영이 그렇게 역사 신학 및 여러 정통적인 조직 신학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기식의 해석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는지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모순처럼 보이는 본문에 관한 연구는 아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다. 정통 기독교 교리가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에 귀를 기울이고, 대다수가 합의에 이른(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본래 의미라고 다수가 받아들이는) 그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충분히 성경으로 그것을 뒤집을만한 근거를 찾아서 얘기해주기를 바란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첫 열매들”에서 그런 소통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그렇게 성경이 진짜 그것을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순수한 성경 자체의 가르침인 것처럼 전달받고 영향받게 될 이들에 대한 염려가 무척 크다.
박진영은 한 영상에서 ‘성경만 가지고 자신과 토론해 보자’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말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제발 성경을 가지고 다른 신자들과 토론해 보라. 옛 교부들과 논의해 보라. 루터, 칼빈, 오웬, 패커, 그루뎀, 존 맥아더 등과 논쟁해 보라. 자신이 발견한 성경 본문의 의미가 전부인 것처럼, 획기적이고 독창적이며 순수한 것처럼 믿고 가르치기 전에, 수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발견한 성경 본문의 의미와 비교해 보고 겸손히 자신의 견해를 평가해 보라. 마이클 리브스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대변한 책, “복음의 사람들”에서 “성경은 우리의 서재이며, 전통은 이제껏 교회가 그 안에서 잘 읽거나 잘못 읽어온 일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성은 우리가 그 내용을 읽고 헤아릴 때 쓰는 안경이다”라고 말했다(복있는사람, 2023, 38-9pp). 성경적인 교사가 되려면, 정답도 오답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성을 따라 성경의 서재에서 홀로 연구하고 가르치지 말고, 지금까지 정리된 정답과 오답 노트를 겸손히 부지런히 활용하라. 그래야만 간절히 바라는 대로 사람들을 올바른 성경의 진리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