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보름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매일 빠짐없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거나, 여러 방식의 성경 일독에 도전하거나, 특별한 성경 주제나 책들을 깊이 연구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사무엘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기도에 힘쓰려고 하신 분들(삼상 12:23), 꼭 ‘주일성수’라서가 아니라 “모이기를 폐하는…습관”을 버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모이기를 힘쓰겠다고 결심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히 10:25). 그런데, 우리는 매년 초반에 강한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다가도 금세 의무적으로 힘겹게 결단한 일들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저는 목적 실종 또는 방향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팀 챌리스는 “Do More Better”라는 책에서 생산성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 반드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사명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목적을 되찾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칼럼을 통하여 우리가 Q.T.를 하는 목적, 성경 읽기 또는 성경 연구에 시간을 쏟는 이유, 기도와 공예배 참석에 힘쓰는 동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정하는 일을 돕기 원합니다. 올해 당신이 무기력해지거나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의무적, 형식적으로 변해갈 때, 은혜를 경험하는 도구가 짐처럼 여겨질 때, 다시 이 칼럼을 통하여 마음가짐을 리셋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Q. T.의 목적

Q.T.는 Quiet Time(“경건한 시간”, “조용한 시간”)의 줄임말로 넓은 의미에서 신자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나누는 교제 시간을 의미합니다. 개념적으로는 이 안에 성경 읽기, 성경 묵상, 성경 공부, 기도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지만, 실천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Q.T.는 기도로 시작하여, 성경 본문 몇 구절을 읽고 묵상한 뒤 발견한 몇 가지 관찰 내용을 근거로 본문의 의미를 해석하고, 오늘 적용할 원칙과 교훈을 찾은 후 기도로 마치는 일종의 개인 경건 훈련입니다.

모든 훈련에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경건 훈련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명령하면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딤전 4:7-8). 우리가 매일 열심히 Q.T.하려고 애쓰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에게 범사에 유익을 가져다주는데, “경건”이 바로 그 목적이고, “경건”이 우리에게 금생과 내생에 약속된 복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경건”은(헬: 유세베아) 영어 성경에서 “godliness”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친밀한 사귐을 통하여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성경을 통해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고 했습니다(딤전 6:3). 우리가 경건의 시간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 많이 알고 믿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날마다 닮아가고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전 12:13). 기독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시간은 우리가 창조된 본래의 목적, 그리고 구원받아 되찾은 금생과 내생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기 위한 훈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화롭게 하려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기 위하여 우리는 경건의 시간,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의 시간을 날마다 갖는 것입니다. 영생의 복을 누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으로 변하지 않도록 이 목적을 반드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항상 고백할 수 있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시 119:131).

성경 읽기와 공부의 목적

매년 우리가 도전하는 성경 일독의 목적도 ‘경건의 시간’과(Q.T.)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한 번 읽는 것이 성경 일독의 목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경 일독’에 관한 설명이지, 진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읽기의 올바른 목적을 상실한 이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책망하셨습니다(요 5:39). 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거부하면서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7:3).

예수님을 알기 위한 성경 읽기가 아니라면 성경 읽기의 참된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더 아는 것이고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온전히 회복되어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영원히 더불어 누리게 된 것이 곧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의 목적은 반드시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더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누리는 영생의 기쁨과 만족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한 마디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성경 일독은 성경 공부에 비하여 더 많은 본문을 다루고, 깊이 묵상하고 자세히 연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줄거리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반면 성경 공부는 비교적 짧은 본문을 세세히 관찰하고 해석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풍성한 영적 교훈과 지혜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이 각각 다르고 각각의 장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더 알고 사랑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요셉과 함께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심지어 악까지도 바꾸어) 선을 이루신다는 진리에 감격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세세한 제사법과 절기를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실체로 그 모든 그림자를 온전하게 보여주셨는지 깊이 묵상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읽기 또는 성경 공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 아는 것이 어렵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더 경외하고 사랑하기 어렵다면, 잠시 멈추고 그 목적을 바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더 풍성히 누리려고 부지런히 성경을 찾기는 하지만, 정작 성경이 증언하는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을 발견하고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연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

많은 신자가 기도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기도해도 큰 효과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믿음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잘못된 믿음이 기도의 목적을 상실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단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청구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로 구하는 것들을(“일용할 양식”으로 표현된) 먼저 구할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6:33). 기도의 내용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마 6:9-13), 그 기도의 시작과 끝을 찬양으로 채우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 13). 기도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목적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나라와 뜻으로 채우고, 자기를 숭배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이라면, 기도는 그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은혜의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효과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기도는 언제나 효과 만점입니다. 하나님은 환경과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셔서 우리를 아들의 형상대로 빚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치는 기도 훈련은 하루의 시작을 나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시작하게 합니다. 나의 세상과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면,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하나님의 세상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해있습니다. 기도는 또한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게 합니다. 기도 없이 우리는 야고보가 지적한 장사꾼이 되기 쉽습니다(약 4:13-17). 나의 계획과 예상과 상황과 계산에 따라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 뜻이면…’이라고 묻거나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잠 16:9). ‘주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라고 겸손한 태도를 갖게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합니다. 기도는 또한 감사를 낳습니다. 내가 이룬 것에 대한 자랑과 교만을 쌓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숨 쉬는 것도 하나님 때문이고, 지혜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기도는 또한 회심을 일으킵니다. 마르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회개의 삶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나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나를 성화시키실 것을 기대하고 바라게 합니다.

J. C. 라일은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했습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하면 안 됩니다.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애쓰는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 속한 모든 영적 축복을 누리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와 자세를 갖게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고, 나를 나의 자리에 두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하며, 환경과 상황을 바르게 보는 시각을 제공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자족하는 힘을 공급합니다. 한 마디로 기도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단지 청구서를 내거나 도와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친밀한 사귐을 누리기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만, 기도는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말입니다. 

집회의 목적

마지막으로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성도의 모임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나느냐”(고전 3:16). “너희”라고 언급한 복수의 대상, 곧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성도가 함께 모일 때,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도 각자와 동행하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모인 곳에 하나님도 특별한 방식으로 임재하시고 또 함께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집회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말씀인 히브리서 10장 25절을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교회가 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모일 때 믿음이 견고해지고, 소망이 재설정되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히 10:24).

어떤 면에서 집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우리가 모여서 삶의 소명을 새롭게 세우는 주기적이고 반복적이며 공동체적인 은혜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관한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임을 새롭게 결단합니다. 우리는 집회를 통하여 성도를 격려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나신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그 일을 우리 삶의 소명으로 삼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폐할수록 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삶의 개혁을 이루어내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각각 주신 은사는 서로를 돕고 세우고 섬기기 위해 주신 것이고, 그런 돌봄과 섬김 없이 홀로 서겠다고 자만하는 것의 대가는 너무 큽니다. 왜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게 될까요? 모이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릴까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모임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목적은 괴물 같은 자기애를 버리고 다시금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새해 모이기를 더 힘씁시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올바른 삶의 목적을 되찾도록 계속해서 권면합시다. 여기저기 목적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성도가 있다면 다가가서 올바른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언젠가 그 성도가 나를 도와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의 방편이 인생의 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은혜로운 도구가 되도록 서로를 힘껏 섬깁시다. 그렇게 함께 올해도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더 친밀한 사귐을 누리며 영생을 맛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