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까지 날마다 거룩함을 이루기 위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살전 5:23).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말도 안 되는 단기 계획을 세운 뒤, 찰나의 성공 또는 실패를 맛보고는 금세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경건해진 것 같은 착각에 우쭐하다가도 금방 불경한 삶의 나락에 빠지고 나면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타고난 그리스도인만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믿는 모든 사람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히 10:10).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인생의 경주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고 선포하신 이들을 반드시 온전히 거룩하게(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롬 8:30).
자, 그러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연단”이라고 대답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 “훈련”, 새번역). 운동선수가 자신의 기술과 체력을 연마하고 훈련하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는데, 신자도 경건에 이르려면 그들처럼 부단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더 절제하고 많은 시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딤전 4:8). 경건의 훈련을 부지런히 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형통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이 약속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경건에 이르려면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고전 9:25). 그러면 개인적인 경건의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훈련 도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 15:40). 예수님도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사도 바울도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라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 교육(훈련)하기에 유익하다”라고 확신했습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고 의롭게 훈련하는 도구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제리 브릿지즈는 그의 책 <거룩한 삶의 추구>에서 “그러므로 거룩함을 위한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고 그것을 매일의 생활에 적용해 나가기 위한 훈련 계획으로부터 출발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103p).
그는 말씀을 통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데 필요한 “성령과 우리의 상호 협력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로 설명했습니다(103p).
더 단순하게 요약하면 “성령의 영감 → 우리의 해석 → 성령의 조명 → 우리의 적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을 섭취하고 적용하여 우리 삶을 거룩한 예배로 하나님께 날마다 드리는 삶을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성령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올바른 해석으로 바르게 분별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조명하여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여 삶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기분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하는 훈련은 효과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에 이르기 위한 성경 섭취 훈련도 반드시 규칙적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제리 브릿지즈는 “거룩함에 진보를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정기적으로 성경에 시간을 드리는 삶을 훈련해 온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다른 길은 없습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104p). 여유 있는 시간에 성경 읽기를 끼워 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복잡하고 분주한 삶에서 여간해선 그 여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힘들게 찾는다 한들, 다른 급한 일로 금세 채워질 것입니다).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은 나중에 자투리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시간을 선점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섭취할 계획을 세우고 나머지를 생각할 정도로 우선순위에 두라는 말입니다.
훈련 방법: 듣고, 읽고, 묵상하라
성경에 시간을 드리는 삶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셨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제리 브릿지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네 가지 일반적인 방법으로 1) 듣기(렘 3:15), 2) 읽기(신 17:19), 3) 공부(잠 2:1-5), 4) 암송(시 119:11)을 제시했습니다(105p).
1) 듣기: 하나님의 말씀이 책으로 보급되어 모든 신자가 소유할 수 있게 되기까지 ‘듣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교회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씀의 은사를 나누어주신 사람을 세우십니다(엡 4:11; 딤전 3: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여 성도들에게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전파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것을 호소합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라고 계속해서 말씀으로 독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두 번이나 부탁하셨습니다(요 21:15, 17). 말씀을 듣는 것은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양분과 능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갓난아기처럼 듣는 것을 사모하고 그 자리를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거르지 마십시오.
2) 읽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대부분의 신자가 성경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습니다. 집에 몇 권씩 종류별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읽고 싶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스마트 폰에 성경 앱이 깔려 있으면 언제든지 성경을 꺼내볼 수 있습니다. 매년 성경 일독에 도전하는 성도와 이를 독려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실제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브릿지즈는 성경 읽기가 “거룩한 진리의 전반적인 개요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105p). 성경 공부가 현미경으로 성경 교리를 자세히 살펴보는 방법이라면, 성경 읽기는 망원경으로 성경 전체 줄거리를 눈에 익을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딤전 4:13). 성경을 읽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전념하여 훈련해야 할 일입니다. 혼자 또는 여럿이 성경 읽기에 도전하십시오. 밀리거나 오래 중지되었어도 다시 읽으면 됩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는 것”에 “전념”하십시오.
3) 묵상: 제리 브릿지즈는 말씀 섭취 방법으로 “공부”와 “암송”을 세 번째와 네 번째로 제안했습니다만, 그보다 많은 분량의 글로 “묵상”을 강조합니다. 물론 개인이 성경 공부 교재나 강의 영상을 통하여 성경의 특정 교리나 주제에 관하여 더 깊이 연구하고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암송은 말씀을 기억나게 하여 삶의 적절한 기회에 그 말씀을 적용하게 하는 기쁨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브릿지즈가 말하는 “묵상”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는 일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종합적으로 “묵상”이라는 제목으로 나머지 내용을 다루기를 원합니다. 먼저 브릿지즈는 말씀 묵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이모저모 살펴보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105-6pp).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수 1:8). 시편 기자도 형통한 삶을 누리는 의인의 특징에 관하여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시 1:2). ‘묵상’과 유사한 표현은 ‘읊조리는 것’인데,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시 119:97). 저는 그래서 묵상이 연구와 암송과 적용의 복합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자는 그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깊이 생각하며 말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길어냅니다(연구). 그리고 그 말씀을 계속해서 소리내어 암송하며, 삶의 적절한 순간에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그 말씀의 열매를 삶에서 맺는 것입니다(적용).
제리 브릿지즈는 말씀을 묵상할 때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하며 묵상하라고 권합니다(107p):
- 이 구절은 거룩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무엇을 가르치는가?
- 이 말씀에 비춰볼 때 나의 삶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특히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가?(일반적으로나 막연하게 답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답하십시오)
-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물론 묵상이 무조건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수많은 실패가 쌓여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야구 선수가 헛 스윙을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특별히 훈련 때, 얼마나 많은 실수를 반복하겠습니까? 그러나 실망하고 연습을 멈추거나 훈련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계속해서 인내하며 경건에 이르는 훈련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결단했습니다: “56. 아무리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부패와의 싸움을 절대로 포기하지도 말고 조금도 긴장을 풀지도 말자.” 그의 결단은 성경의 결단과 같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내하고 다시 일어나 경건에 이르는 경주를 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훈련을 절대로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훈련 동기: 복음의 은혜
브릿지즈는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도표를 제시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지식”과 “거룩함의 실천” 사이에 있는 간극 때문에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탄식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라고 말한 것과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111p):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 거룩하심 앞에 선 우리의 부패와 더러움을 더 선명하게 그리고 깊이 깨우칠수록, 우리는 더 벌어지는 간극 때문에 바울처럼 외마디 탄식을 터뜨리고 말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죠. 그런데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거룩함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우리가 그 간극 때문에 좌절하거나 심판의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용서받고 화목을 누리며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 이사야가 절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단에 핀 숯을 그의 입에 대시고 거룩한 선지자의 일을 계속 하도록 사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사 6장). 그래서 저는 반대로 거룩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록, 그래서 거룩함을 실천하는 우리의 현실과의 간극이 좁아지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질 때,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도표로 그려보자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끝으로 사도 베드로가 말한 이 말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은혜의 능력이 우리가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무한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