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2010년까지, 총 805회 방송된 시사교양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는 여러 번 그 포맷을 바꾸었지만,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그리운 사람 가령 학창 시절 선생님, 하숙집 주인아주머니, 초등학교 짝사랑,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 등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과정을 담아내어 시청자에게 사랑과 감동을 전해주었던 프로그램이다. 최근엔 다른 종류의 사랑을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뜨거운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솔로지옥”, “돌싱글즈” 등이 있다. 일단, 멋지고 예쁜 남녀 출연진이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시청자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패널들이 한두 마디씩 평가하고 훈수 두는 것처럼, ‘남자가 이렇게 했어야지,’ ‘여자가 저러면 못 참지’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남녀 주인공의 상황에 완전히 빠져드는 재미가 있는 듯하다. 드라마나 영화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보다는 현실적이라고 느껴져서 더 몰입된다고 한다(물론 대본에 따른 연출도 상당히 많을 테지만).
그런데 오늘날 TV가 싣고 있는 사랑을 우리는 현실 남녀의 건전한 연애와 사랑을 지켜보는 단순한 관찰 프로그램, 또는 꾸며낸 이야기보다 훨씬 몰입되는 흥미로운 드라마 정도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과 성도들을 바른 교훈으로 지켜내기 위하여 반드시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고 명령했다(딤전 6:20). TV가 싣고 있는 연애가 성경의 참된 지식에 반론을 제기하는 거짓을 담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경계하고 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믿음이 진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사랑으로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딤전 6:21). 오늘날 TV가 담고 있는 연애와 사랑엔 과연 어떤 거짓이 섞여 있을까? 혹은 어떤 진리가 누락되어 있을까?
1. 연애 상대를 고를 때, 믿음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세속적인 TV 프로그램에서 기독교 신앙을 매력 포인트로 삼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남녀 출연진 가운데 종교가 기독교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연애와 사랑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당신의 종교를 존중한다’라는 멋진 반응이 전파를 타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신앙을 나에게 요구하지 말라’라는 반응을 당연한 것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교제할 대상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할 수 없는,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항목이라고 TV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성경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형의 키와 몸무게, 직업과 학력, 재력과 성격, 가족 관계 등을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의 백성, 믿는 자와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 7:39). 하지만 TV는 우리에게 믿음을 매력적인 것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만 빼고 다른 것들을 꿈꾸게 한다. 저렇게 잘생기고, 예쁘고, 커리어가 좋고, 잘 벌고, 좋은 학교와 사회적 기반을 가졌다면, 신앙은 옵션으로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여겨도 되겠다고 생각하도록 미혹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아름답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가는 부부 관계를, 그리스도 밖에서 그분과 그분의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을까?
2.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 가장 잘 해주는 사람을 택하라
TV 속 짝짓기 원칙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 또는 나에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을 찾아라’인 것 같다. 남녀 출연진이 호감 있는 대상을 선택하고(중간에 바뀔 때도 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그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심인가,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가, 자신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고 또 특별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는가이다. 패널들도 남녀 주인공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점수를 매긴다. 남자 혹은 여자 출연진끼리 따로 모여서 데이트 상대를 함께 평가해 줄 때도 있다: ‘이렇게 하는 걸 보니 정말 멋지다’, ‘이렇게 너를 대하다니 정말 못됐다’라는 식으로. 하지만, 성경이 묘사하는 남녀의 사랑은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항상 “먼저”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롬 12:10).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3)
이 말씀은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을 사랑에 관한 명령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연애와 사랑을 하는 원칙도 마찬가지다. 결국 결혼을 지향하는(전제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구절의 말씀을 유심히 관찰하면, 각각 남편과 아내에게 상대방을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성경의 원칙이다. ‘나를 존경해 주는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해’, ‘나를 자신 같이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야 해’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인지에 관심을 둔다. 성경은 참 사랑의 특징이 교만하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이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3장). 그런 이타적인 참 사랑의 원칙은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TV는 그 사랑의 시작부터 이기적으로 굴라고 권유한다.
3.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라면, 스킨십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기독교인들도 리얼 연애 프로그램을 비판한다. 특별히 그들은 청소년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며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커플이 함께 동거하면서 연애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부부가 가상으로 이혼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일반적인 관찰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진의 노출이나 스킨십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방영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TV에서 나오는 연인의 애정행각에 익숙해지면, ‘아, 저렇게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엔, 스킨십이 자연스러운 거구나’, ‘서로가 동거하기로 합의하면, 부부처럼 저렇게 지내도 되는 거구나’라고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자기 몸에 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며 따르는 이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고전 10:3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 4:3-4)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은 부정한 것을 버리고 거룩한 것을 취하는 것인데, 먼저, “음란을 버리고”, “색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다(마 5:28).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내가 지금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마음으로 불륜을 저지른 것이란 말씀이다. 왜? 그 대상이 나의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제한된(limited) 선물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이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혹은 남편)” 대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TV는 이 진리를 엄격하게 다루지 않는다. 사실 무시한다. 그런 면에서 리얼 연애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에게 해로울 수 있다. 하나님이 취하라고 하신 것을 버리고, 버리라고 하신 것을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4. 남녀의 사랑이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연애는 청소년의 로망이고, 결혼은 청년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에게(그것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결혼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답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론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인정할 수는 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혹은 빠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온통 사랑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더 크고 원대한 목적을 잠시 망각하기가 쉽다. 특별히 TV는 그들의 욕구를 매우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저 사랑을 내가 가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텐데’, ‘저런 연애와 사랑을 내가 얻을 수 있다면 뭐든지 지불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기 만족과 행복이 삶의 가장 큰 목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남녀의 결혼을 제정하시고(창 2장), 그들의 범죄가 망가뜨린 사랑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로 회복시키셨다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엡 5장),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기대할 사랑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원한 관계라는 것을 가르친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계 21:9)
남편과 아내의 친밀한 사랑을 누리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 사랑이 품은 비밀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2). TV속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교회가 나눌 영원한 사랑을 기대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을 꿈꾸며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녀 간의 일시적이고 짜릿한 만남이 영원한 가치를 갖는 것처럼 포장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내(우리)가 누리는 영원하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사랑을 약속하신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의 연애와 결혼이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 때문에 어그러지고 무너질 때도, 우리를 이끌어 참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줄 온전한 사랑의 관계에 도달하게 하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의 관계를 날마다 새롭게 만드는 은혜의 능력으로 역사하게 하신다.
결론
오늘날 TV가 싣는 사랑은 성경이 말하는 참 사랑이 아니다. 세속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TV로 사랑을 관찰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면(그런 목적 없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도 많지만),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고한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잔뜩 얻게 될 것이다. TV는 성경의 진리에 반론을 제기한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지식을 반대한다. 그것도 아주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방식으로. 우리는 TV가 연출한 남녀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관찰하느라 성경이 말하는 진짜 사랑 이야기를 관찰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의 믿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려고 하는 것이 주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남편과 아내 사이에만 허락하신 성이 안전하면서도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우리 행복에 있어서 절실한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의 관계가 마침내 영원한 세상에서 더 크고 온전하며 영광스러운 주님과 누리게 될 사랑의 관계를 가리키고 있다는 진리를 믿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지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TV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 그러니 TV로 연애와 사랑을 배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