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가족 전도는 예수님께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가족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거나,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적을 노골적으로 그들에게만 숨기시거나, 혹은 가족들 앞에서 결점 많은 인격과 규모 없는 생활 습관을 보였기 때문도 아닙니다(요 7:3-4). 가족이기 때문에, 자라면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인간적인 면모를(신성을 배척하는 측면이 아니라 명백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계속해서 봐왔다는 측면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가족으로서는 그분이 입으신 인성 너머의 신성을 바라보거나 인정할 만한 믿음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가르치실 때, 그곳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 곧 불신과 무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지혜에 놀랐고, 예수님 손으로 행하는 권능에 감탄했습니다만(막 6:1-2), 고향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막 6:3)

이들 또한 예수님이 단순히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아우와 누이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자랐던 예수라는 아이가 아무리 지금은 선지자처럼 가르치고 놀라운 일까지 행한다고 해서, 그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메시아)로 인정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막 6:3).

예수님은 그들의 배척을 이미 예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가정)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막 6:4).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막 6:6). 여기 ‘이상히 여기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마태복음 21장 20절에서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가 즉시 말라버렸을 때, 보였던 반응과(“이상히 여겨”) 유사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가족과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씀과 기적으로 충분히 전달하셨고, 그런데도 그들이 배척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명백한 복음의 증거를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거부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셨던 것입니다.

가족 전도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는 우리, 그분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해야 하는(먼저는 가족부터) 우리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무지 때문입니다.

1. 가족 전도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불신과 무지 때문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과 소욕대로 살아가는 사람에 관하여 절망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사람, 다른 말로 육신에 속하여 육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겐 두 가지 복음의 장애물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소욕과 성향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은혜로운 뜻조차—따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고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나 사람들의 의견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과 권위를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향하여 가는 길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태도를 요구하는데, 그들의 불신은 커다란 장애물이 되어 그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만일 가족들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거나 해서 복음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치더라도, 두 번째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것은 무력(무지)함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있는 능력이 불신자의 내면에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가족들이 비록 구원받지는 않았어도, 얼마나 선량한 시민으로서 착하게 살고 있는데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우리 눈에 선한 일은 단지 이웃에게 희생적인 호의와 사랑을 베푸는 것이지만, 하나님 눈에 선한 일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때도 있습니다(마 25:40, 45).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일을 거역하는 사람은 아무리 이웃에게 선행을 베푼다고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불신과 무지(무력), 그것이 우리 가족들로 하여금 진리의 빛을 피하여 어둠으로 숨게 만들고, 명백한 진리를 거부하게 만듭니다. 힘들게 지적 동의에 이르러도 감정과 의지가 반항하여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전도는 정말 힘듭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게다가 전도의 열매인 구원은 우리가 성취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처럼 단단한 불신과 무지의 마음을 권능으로 부드럽게 만들고, 새로운 마음으로 바꿔주시기 전까지(겔 11:19),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구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2. 가족 전도가 어려운 이유는 나의 한계와 결점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전도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이것이 전도하는 자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특별히 가족들은 우리가 취한 삶의 태도를 가까이에서 그것도 많이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첫째,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살아가는 데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 할 때, 가족들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 과연 삶을 변화시키는 지혜나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만일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분명하게 붙잡지 않는다면, 그래서 가족들이 볼 때, 그들과 우리의 삶이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우리는 복음의 지혜와 능력을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실패할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다른 소망(산 소망, 벧전 1:3-7)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누구도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대답할 것”을 준비하는 일에 게으릅니다. “항상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언제 가족들에게 소중한 기회의 문이 열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간절히 필요로 할 때—마음이 많이 낮아지고 들을 귀가 열려 복음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바로 그때—우리가 준비되어 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고 믿음을 주시며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입게 하시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얼마나 후회하겠습니까? 또 다른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동안 준비하지 않은 자신에 관한 죄책감을 더욱 무겁게 만들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론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볍고 거칠게 복음을 전할 때가 많습니다. 나이와 친분, 사회적 지위로 누르고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복음은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부작용은 정말로 큽니다.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두려움”(또는 “경외심”), 우리도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처럼 죄와 허물로 죽고 진리를 철저히 반대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랑으로 권면하고 가르치는 태도인 “온유함”을 반드시 가지고 전도해야 합니다.

많은 비그리스도인이 침례 간증을 하면서 ‘사실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을 꺼렸던 이유,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의 심각한 결점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가족 전도는 그래서 힘듭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불신과 무지가 그 첫 번째 문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의 한계와 결점이 그 두 번째 문제입니다.

3. 가족 전도가 절실한 이유는 그들이 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전도를 가로막는 방해물을 생각하면 전도할 의욕이 사라질 정도로 참담합니다. 돌처럼 굳은 가족들의 마음 밭에 복음의 씨를 어떻게 심으며, 그 엄청난 과제에 우리처럼 연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어떻게 감히 도전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우리가 가족 전도에 힘써야 할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멀리 있는 나라와 민족까지 반드시 찾아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날마다 복음을 들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가족으로 입양되는 날까지,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믿지 않는 친척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사랑하는 친척들을 이 땅의 한 가족으로 묶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들이 천국 복음을 믿고 변화를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가족들이나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혹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기 위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저의 사랑하는 가족이고, 저는 그들에게 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들을 거듭나게 하실 때까지 전도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무이자 가족들을 향한 간절한 사랑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음부에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한 가지 요청을 합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을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8). 그러나 그는 단칼에 거절당합니다. 거절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29, 31). “모세와 선지자들”은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듣지 않는 자는 죽음에서 부활한 자가 혹시 있을지라도 그의 말을 무시할 것이라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가족들 중 누구라도 음부에 빠지는 것을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모세와 선지자들” 곧 성경을 들고 그들에게 가서 음부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들이 듣고 돌이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4. 가족 전도가 절실한 이유는 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불신과 무지로 인하여 돌처럼 굳어진 마음을 가졌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때, 아무런 생명도 자라날 수 없는 딱딱한 마음 밭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우리의 한계와 결점 앞에 철저히 겸손해야 합니다. 게을리 준비하거나 세속적인 삶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온유하게 사람을 대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께 반항하는 불같은 마음을 가진 가족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족들에게 끝까지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이나 우리가 가진 장애물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는 핑계를 버립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의 충성은 단지 의무적인 굴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어날 가장 선하고 좋은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충성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가족 전도에 충성하는 것은 절대로 무모하지 않다’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앞뒤로 둘러싼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볼지어다!”라고 주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니 주목하십시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세상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단순한 의미 그 이상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기한을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한까지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받으신 그 권세로 중간에 명령된 지상대위임령, 전도의 사명을 도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동기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십니다. 우리 가족의 딱딱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고, 불신의 마음에 믿음을 주입하십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던 영혼의 눈과 귀를 여시고, 새로워진 마음 밭에 복음의 씨앗이 심겨 자라나게 하십니다.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을 아버지께 구하여 우리 마음에 내주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거룩함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십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있는 불신과 무지(무력), 우리에게 있는 한계와 결함이 주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21).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가족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전도로 주님의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곧 명절입니다. 올해 10월엔 특별히 더 긴 연휴를 누릴 수 있게 되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가족 전도하기가 제일 어렵지만, 가족만큼 사랑하는 대상은 또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 부모, 친척, 자녀를 만났을 때, 그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가족 전도가 어려웠다는 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 믿는 성도로 모여있던 사람들의 목록에서 참 흥미로운 이름들이 발견됩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3-14).

예수님이 반드시 하십니다. 주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와 아우들까지 그 불신과 무지의 장벽을 허물고 복음의 지혜와 능력으로 거듭나게 하셨다면, 그분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