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제리 브릿지즈의 저작 <거룩한 삶의 추구> 1장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십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온 회중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명령하셨고(레 19:2),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신약 시대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삼으신 교회 모든 구성원에게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라고 명령합니다(벧전 1:15;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반드시 ‘거룩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제리 브릿지즈는 1978년 <거룩한 삶의 추구>라는 책을 통하여 ‘거룩한 삶’이 하나님과 우리의 “공동 작업”이라고 바르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시는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히 2:11). 동시에, 우리가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히브리서 기자는 거룩함을 따르지 않는 자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무섭게 경고했습니다(히 12:14).

브릿지즈는 오늘날 많은 신자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을 말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우리는 책임 전가를 좋아하는 죄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의 책임만 묻고 싶어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과 실천해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정의와 장애물

그렇다면, “거룩함”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 600번 이상 나오는 ‘거룩’이란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흠이 없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책 전체가 ‘거룩’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모세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드리라고 명령합니다(레 22:21). 가축이 아니라 사람에게 적용할 때, ‘거룩함’은 육체의 흠이 아니라 도덕적인 결점을 말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거룩함”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자로 구별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리 브릿지즈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죄악의 길을 떠나서 성경이 제시해 주고 있는 도덕적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18p). 성경은 그런 삶을 가리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엡 4:22-24).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의 현실은 거룩함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까요? 죄악의 습성을 여전히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거룩함을 입은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 이런 문제는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물론, 거룩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평생 우리를 빚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아기가 성장하여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거룩함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성장통을 겪을 수 있고,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에야 우리는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을 입게될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설 때까지, 거룩한 삶의 추구를 멈출 수 없다는 말이고, 또한 그날까지는 완벽함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신자가 거룩한 삶을 추구할 때, 이를 가로막는 세 가지 장애물이 있다고 제리 브릿지즈는 밝힙니다. 첫째, 죄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기 중심적 태도입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대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의 싸움에서 진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W. S. 플러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 죄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 죄의 정체를 올바로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죄가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의미는 이것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이 파괴되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위가 무시되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바로와 발람과 사울과 유다는 모두 다 ‘내가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탕자는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라고 했으며,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주를 거역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말했습니다(윌리엄 플러머, <시편>, 1975)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책임은 순종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승리를 가져오십니다.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승리는 미묘하게 그 관계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대할 때, 반드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사는 삶”의 의미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갈 2:20).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확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내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내실 것이라고 떠넘기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순종이 아니라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면서요. 그러나, J. C. 라일은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을 크게 경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지 결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과연 타당한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거룩함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함을 좇기 위해서는 믿음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J. C. 라일, <거룩> 1952).

같은 서신서에서 바울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권면했습니다(갈 5:16). 거룩함을 ‘추구’하고 ‘행하’려면 반드시 노력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어떤 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리 브릿지즈는 “Respectable Sin”이라는(“존중할 만한 죄”) 책을 통하여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는데, 우리가 죄를 1) 심각한 죄와 2) 눈감아 줄 수 있는 죄로 은근히 나누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죄에 경중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협할 수 있는 작은 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은 죄를 타협하는 우리의 습성은 점점 더 큰 죄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반드시 나아갑니다. 앤드류 보나는 “순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그 법의 중요성이 아니라 바로 그 법을 주신 분의 위엄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앤드류 보나 <레위기> 1972). 홀로 입법자와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눈감아 줄 수 있는 죄도 그분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우리가 타협하는 작은 죄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한 지옥 불의 형벌을 받아야 할 큰 죄가 됩니다(마 5:22).

만일 우리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기준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거룩함에 이르고자 하는 달음박질을 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구분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죄를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벧전 1:16). 거룩함의 기준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제정하신 거룩함의 기준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준으로 삼는 것이, 거룩한 삶의 추구의 첫걸음입니다.

결론

윌리엄 맥도날드는 “잊혀진 명령, 거룩하라”라는 책에서 ‘거룩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오늘날 우리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묻습니다. 신자는 절대로 이 명령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신 이유가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히 10:10). 우리의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자발적으로 달려 우리 죄에 대한 모든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그분의 아들의 형상, 그 거룩하신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롬 8:29-30).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싸워야 합니다. 승리가 아니라 순종에 힘써야 합니다. 거룩함을 얻기 위한 믿음의 경주를 하되, 우리 책임을 다하여 최선을 다해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자기 기준으로 죄를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기준으로 죄를 판단해야 합니다.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 하나,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