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를 바탕으로 모팩 스튜디오 대표 장성호가 연출, 각본, 제작, 편집한 영화, “만왕의 왕”이(The King of kings) 미국 역대 최대 흥행 기록을 세웠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기독교 콘텐츠를 담고 있으면서도 많은 외국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이 영화가 한국에 배급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7월 16일 국내 개봉과 동시에 빠르게 7월 20일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전국 교회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독교인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천만 배우로 만들자’라고 선동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정말 성경의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가’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천만 관객에게 엉뚱한 예수를 소개하는 셈이니 말이다.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 유튜브 채널인 Wretched에서 이 영화를 다루면서 “이 ‘기독교’ 영화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그리고 심각하게 실패한다”라고 평가했다(보기). 국내에서도 북미 지역 배급사가 모르몬교 신자가 설립한 회사라는 비판, 원작자인 찰스 디킨스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유니테리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성경적인 복음과 구원을 담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인품과 사역에 집중된 내용이라는 비판 등이 있었다. 특별히 Wretched 채널의 진행자인 토드 프리엘(Todd Friel)은 존 맥아더 목사가 섬기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가 주최한 목회자 콘퍼런스에 종종 초대된 적이 있어서, 그가 직접 달턴 틸(Dalton Teal)과 함께 리뷰한 영화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들은 이 영화가 찰스 디킨스의 부정확한 신학을 그대로 담지는 않았다고 평가했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인품과 도덕적인 본을 따르는 것이 복음이라는 잘못된(혹은 불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비판했다.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이 영화를 보는 기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필자도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이 영화에 관하여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직접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러 평가를 수렴하여 나름의 확고한 분별을 갖추기를 바랐다. 여기 그 결과가 있다. 이것이 킹 오브 킹스를 보려는(혹은 본)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 긍정적인 평가
먼저, 킹 오브 킹스는 예수님의 사역을 성경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헤롯이 군사를 동원하여 두 살 아래 아기를 죽이게 한 것은 시간상으로 동떨어진 두 사건을 하나로 엮은 것이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신 것, 시험당하신 것, 제자를 부르시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성전을 거룩하게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잡히셔서 심문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신 사건을 이 영화는 최대한 성경의 기록에 일치하도록 그려낸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성경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왜곡하거나, 예수님의 인품과 신성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를 추가하거나 하지 않는다. 기독교 영화 중에서 성경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심각하게 변질시킨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대표적으로 ‘엑소더스’, ‘노아’). 그러나 킹 오브 킹스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둘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으로 소개한다. 영화에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각각 언급하고, 예수님을 계속해서 ‘만왕의 왕’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부정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생애를 다루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분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묘사하기는 하지만, 기적을 일으키거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예수님의 신성 또한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만왕을 다스리시는 왕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나(종말론) 실제로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신론)을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왕들 중에서 가장 큰 왕으로 소개된다. 이것이 충분한가에 관하여는 아래 “부정적인 평가”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일단 예수님을 단지 사람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시키거나, 육신의 껍데기를 입은 거룩한 영 등으로 기독교 이단들이 다루듯 잘못 그려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영화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죄의 기원에 관하여 제법 잘 설명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찰스 디킨스는 아들 월터에게 창세기 1-3장을 통하여 죄를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그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가 있었는데, 뱀이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금지된 과실을 먹게 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죄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죄를 미워하시는가?’, ‘죄는 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는가?’, ‘죄의 삯은 무엇인가?’, ‘십자가는 죄와 무슨 관계인가?’ 등 따라오는 질문이 많이 생긴다. 문제는 디킨스가 아들 월터에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아래 “부정적인 평가”에서 더 다루겠지만, 일단 영화가 죄에 관하여 계속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라고 본다. 영화를 함께 본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는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희미하지만, 적어도 킹 오브 킹스는 사람의 문제가 죄라는 것,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문제를 가져왔다는 것,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은혜로운 해결책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넷째, 십자가 대속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이 평가에 동의하기 힘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가 대속의 개념을 잘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죄’와 연관시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치르신 죗값은 누구의 것인가?’,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 ‘십자가의 대속이 어떻게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얻는 의가 될 수 있는가?’ 등 대속에 관한 중요한 질문에 영화는 답하지 않는다. 이것이 앞으로 “부정적인 평가”에서 다룰 주요 문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십자가와 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복음을 분명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큰 어려움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영화가 충분히 다루지 않는 복음에 관한 풍성한 교리를 그들은 이미 알고 맛보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데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영화가 명백히 그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경우인데, 킹 오브 킹스는 다행히도 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2. 부정적인 평가
첫째, 예수님이 왜 만왕의 왕이신지가 불분명하다. 주인공인 월터가 매료되었던 ‘킹 아서’보다 더 위대한 ‘킹 오브 킹스’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의 왕 되심이 영화의 중심 주제로 다루어지는데, 여기서 ‘왜 예수님이 진짜 왕 중의 왕이신지’에 관한 설명이 충분히 주어졌는지는 의문이다. 검 없이 기적으로 사람들을 고치고, 전쟁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승리하셨다는 것이 아서 왕보다 예수님이 더 위대하신 이유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왕이셨다. 아기로 태어나 왕으로 등극하신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아기가 되신 것이고,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다시 그 왕좌에 앉으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이라고 노래했다(사 9:6). 킹 오브 킹스가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희미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 중심축은 확실히 예수님의 신성과 왕 되심보다는 인성과 종 되심에 치우친 것 같다. 예수님의 종 되심만 강조하는 것으로 왕 되심이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의 왕 되심이 분명히 드러날 때, 그분의 종 되심도 더 깊고 아름답게 전달될 수 있다.
둘째,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죄와 대속의 개념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죄를 언급하고 십자가와 대속의 개념을 연결하는 듯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가장 큰 것이다. ‘그러면 영화에 복음 교리를 조직신학처럼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집어넣어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아니다. 그렇게 하면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것이다. 설교나 강의를 듣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면 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는 것일까? 토드 프리엘은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관객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줄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를 얻었다면, 그 시간에 최대한 복음을 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특별히 자녀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죄에 관하여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 죄를 어떻게 심판하셨는지, 그 심판의 대가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기회가 충분히 있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보면서 실제로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리고, 자기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장면인지 알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그려내는 영화가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면서도 복음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다들 죄가 없는 건 아니니까 죄인이라고 치고, 예수님이라는 굉장히 인품이 훌륭하고, 희생적으로 남을 돕던 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니까 너무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죄인인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크고 가증한 것인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믿음으로 그것을 어떻게 붙들 수 있는지, 그것이 왜 사랑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관을 나선다면, 결국 이 영화가 목적하는 바가 성취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기독교 배경이 전무한 사람, 모태신앙이라 하더라도 복음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복음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쉽게도 ‘그렇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킹 오브 킹스는 해로운 영화는 아니다. 반성경적 사고를 심어주거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반감을 갖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인품과 사역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킹 오브 킹스는 보는 이들에게 많은 유익한 질문을 남기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 혹은 이미 본 이들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이 영화가 충분히 답하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사랑하는 가족 특히 자녀들에게 설명할 준비를 할 것을 격려하고 싶다. 어린이를 위한 성경이나 동화 등이 굵직한 이야기 외의 공백을 부모에게 맡기는 것처럼, 이 영화는 많은 공백을 관객에게 남긴다. 우리 스스로, 나아가 함께 한 이들에게 왜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신지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 비판과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