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아더 목사님과의 첫 인연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는 당시 용인의 작은 시골 교회였던 유평교회에서 1980년대 초반부터 목사로 성도를 섬기셨고, 성경에 충실한 설교를 성도에게 제공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절대 쉽지 않았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까지 올라가서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많이 복사해 오곤 하셨습니다. 차에서 그 테이프를 듣다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계속해서 호통치는 남자가 누구인지 그땐 잘 몰라서 “아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존 맥아더 성경 연구: John MacArthur’s Bible Studies>라는 소책자도 많이 얻거나 구매하셨는데, 이 시리즈를 통하여 설교의 개요를 파악하고 가르치는 데 많은 유익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평교회에서 35년의 사역을 모두 마치시면서, 다음 세대 일꾼을 반드시 존 맥아더 목사님이 총장으로 섬기던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훈련하기를 원하셨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으로 현재 유평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는 최종혁 목사와 제가 그 기회를 얻게 되었고, 저희는 그렇게 한국 땅에서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하여 유학을 떠난 첫 번째 학생들이 되었습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마스터스 신학대학원 그리고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다니면서, 총장이자 목사인 존 맥아더 목사님을 제법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보고 배운 것은 성경 교리이고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분투하는 착하고 충성된 교회였지만, 이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가르치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꾼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특권이자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2009년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1969년부터 섬겨온 존 맥아더 목사님의 40주년을 짧게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2025년 7월 15일), 56년간 섬기던 교회를 떠나 주님 품에 안기신 목사님을 생각하니, 진한 아쉬움과 함께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한 사도 바울처럼(빌 3:17),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신 목사님의 본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겠다는 굳은 결단과 함께 그동안 간절히 닮기를 원했던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와 목회의 핵심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꺼내봅니다.

 

 1. 충성스러운 주의 종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는다

40주년 목회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레이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비법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제게 그 비법이 무엇인지 직접 묻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비법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목사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많은 목회 현장에서, 교회 안팎의 여러 세력으로부터, 진리를 타협하게 만드는 압력과 유혹과 회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그레이스 교회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교회의 실세였던 장로 자녀의 결혼을 집례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불신자와 결혼하는 성도의 결혼을 집례하여 축복하는 것과 교회 건물을, 죄를 축복하는 자리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힌 대가로 목사님은 나머지 장로들이 목사님의 퇴임을 논의하는 회의실 옆 공간에서 그들의 최후통첩을 기다리면서 인내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목사님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긴 장로가 많은 성도를 이끌고 나가버렸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을 때 목사님이 겪으셔야 했던 여러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방송과 신문 매체가 목사님의 지극히 보수적인(성경적인) 가르침을 시대착오적 주장이나 문자주의에 빠진 외골수적 가르침으로 폄훼하고, 목사님이 진리에 더욱 확고히 서려고 하면 할수록, 성경을 굳게 붙들고 오직 성경만을 전하려고 하면 할수록, 비방과 조롱과 모욕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코로나 때는 정부의 탄압과 규제에 맞서 삶에 필수적인 예배를 고수하려고 했는데, 분별이 다른 성도들 심지어 동역자들까지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성경 분별에 오류가 전혀 없다거나 그분이 해석한 성경 구절의 의미만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먼저 소천하신, 맥아더 목사님의 절친 R. C. 스프로울 목사님이 어떤 강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존 맥아더 목사님은 성경이 과연 그러한가 연구하여 지금까지 수십 년간 주장해 왔던 분별과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즉시 성경에 굴복할 사람’이라는 믿음을 지난 56년의 설교와 목회를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관한 신념을 결정하는 유일한 권위였습니다. 10년의 짧은 목회 경험을 통하여 저는 이제 진리를 타협하게 만드는 압박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때로 얼마나 큰 대가와 깊은 상처를 감수해야 하는지 체감합니다. 그러나 존 맥아더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목사님이 간절히 본받기를 원했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서, 절대로 진리를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2. 충성스러운 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는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도자로서 존 맥아더 목사님은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목사님의 40주년 기념 자리에서 기립박수로 감사를 표할 때,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저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높임을 받는 건 아닌지 잠시나마 우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박수가 그친 후 “이로써 내가 받을 하늘 상급이 모두 사라졌다”는 가벼운 농담으로 40년간 수고한 일꾼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저에게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인 목사를 싫어하지만, 권위가 없는 목사도 싫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목사가 하나님께 받은 권위를 정말로 필요할 때, 주신 권한 안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몇 가정으로 구성된 교회의 리더십 안에서나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리더십 안에서나 똑같이 지켜져야 하는 성경의 원칙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질의응답 시간에 한 성도로부터 “교회에서 목사는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전혀 없다”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목사가 가진 권위는 목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나 경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성경을 말하는 것에서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목사는 성경이 부여한 권위를 총동원하여 성도로 하여금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게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적이 없는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목사가 부르심에 불충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할 때, 목사는 더 큰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때도 여전히 성도를 섬기는 자리에 서 있을 것인지, 여전히 겸손과 온유 즉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성도를 인도하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보호할 것인지 시험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본체이지만 그분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6-7). 목자는 목자장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와 같이 권위를 가지고 종처럼 섬겨야 합니다. 자기를 낮춰 죽기까지 사랑하고 섬기고 복종하는 일에 권위를 사용해야 합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충성하셨고, 성도들은 목사님을 정말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지지했지만, 그 모든 것은 목사님이 아니라 목사님이 가리키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모든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믿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하고, 그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성도가 인정하는 사실이어야 합니다.

 

3. 충성스러운 주의 종은 복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마스터스 신학교에서 “예배학” 수업을 들을 때, 저는 그레이스 교회와는 다른 형식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방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릭 워렌 목사님이 섬기던 새들백 교회를 선택했습니다. 4만여 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답게 놀이공원 주차장만큼 넓은 주차장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주차장에서 교회 정문까지 걸어가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캠퍼스의 크기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교회 주변에 있던 인공폭포와 모래사장, 햄버거 가게와 그 옆에 있던 오락실과 휴게 공간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신나는 연주와 대중가수의 퍼포먼스를 능가하는 노래가 어우러졌습니다. 팬시하고 재치있는 사회자의 짧은 광고 후에,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샌들을 끌며 릭 워렌 목사가 설교를 위해 강단에 나타났습니다. 설교는 간결하고 쉽고 재미있었으며, 설교 중간중간에 광고와 찬양이 삽입되어, 예배 전체가 마치 잘 계획되고 조직적으로 편집된 TV 프로그램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훗날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교회: 새들백교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목사님이 말하는 목적이라는 것이 어떻게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고, 그날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바로 그 목적을 충분히 반영한 예배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윌로우 크릭 교회도 유사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가리켜 “구도자에 민감한 집회”(Seeker-Sensitive Service) 또는 “소비자 친화적인 교회”(User-Friendly Church)라고 부릅니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제가 많이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프로그램이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대예배나 주일 저녁 예배, 형제 성경 공부, 자매 성경 공부, 교회 학교, 심지어 구역 집회에서도 언제나 강해 설교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함께 합주하는 찬양 시간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피아노 또는 오르간 한 대로 청중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회중 찬양을 이끌어낼 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교회를 찾는 구도자나 예배를 얻으려는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를 계획적으로 예배에 집어넣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루한 찬양을 구도자가 좋아할까?’ ‘계속해서 성경만 설명하고 선포하는 설교를 사람들이 지루해하지는 않을까?’라는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엇에 관한 자신감이 존 맥아더 목사님으로 하여금 이렇게 과감하고 담대한 선택을 고집하게 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목사님의 마음에 확고히 박혀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56년간 설교 가운데 성도들이 유쾌하게 여길만한 농담이나 세상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관한 언급, 심리학 또는 다른 세속 학문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10년이라는 짧은 목회 경험을 통하여 설교자로서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때로는 교회 전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나 감화, 감동을 위한 훈화 말씀을 해야 할 필요성도 발견합니다. ‘복음으로 충분하다’는 신념이 없으면, 목사는 언제나 이것저것 유용한 것들을 끼워 넣을 기회를 찾게 될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성실하게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면서도 말씀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하는 일에도 관심을 두셨습니다. 그레이스 교회에서는 결혼 생활, 자녀 양육, 은퇴 후 노년 계획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강의가 제공되었는데, 모든 교회의 가르침 그 중심에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루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그 복음이 삶의 구석구석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성경을 통해 맛보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그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 밖에서 그 자원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 확신이 없는 목사가 성도에게 무엇을 먹이겠냐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말씀의 꼴을 그리스도의 양들에게 먹이신 존 맥아더 목사님의 복음에 관한 확신을 진실로 본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고전 2:2).

 

결론

존 맥아더 목사님을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더 있습니다. 졸업 만찬식 자리에서 저와 최종혁 목사를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러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첫 학생이라서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제가 그레이스 교회에서 안수받기 위하여 참석한 목사 회의 자리에서 주일에 자신이 한 설교에 대한 피드백을 겸손히 듣고 계시던 장면, <정직한 크리스천의 솔직한 질문들>이라는 첫 책을 출판했을 때, 정말 감사하게도 축하의 서신을 직접 써서 보내주신 것 등, 강단에서는 철 심장을 가지고 우레와 천둥 처럼 말씀을 선포하던 목사님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항상 친절하고 온유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목사님이 선포한 설교를 목사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일에 헌신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범사에 인정하며, 복음으로 충분하다는 신념으로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맺는 삶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 목사로서 절대 진리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고 그런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하자.
  • 내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주인으로 모시고 내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을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굴복시키자. 그리고 성도에게 담대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하여 그리스도께 충성하도록 이끌자.
  • 복음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문제와 갈등과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자. 그런 확신이 있는 인도자만이 그를 따르는 자에게 ‘진심으로 복음이 너희를 살게 한다’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라고 말합니다(히 13:7). 존 맥아더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분의 충성스러운 행실의 결말을 지켜보면서, 그 믿음을 본받기 원합니다. 그분의 충성스러운 말씀 선포와 오직 말씀의 권위로, 복음의 능력과 지혜로 목양하는 본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마 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