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144,000
본문: 요한계시록 7장
설교자: 조정의
사도 요한은 유배된 밧모 섬에서 주의 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봤다(1장). 그리고 그는 “지금 있는 일”에 관한 계시를 받아 당시 아시아 일곱 교회에 전달했다(2-3장). 또한 “장차 될 일”을 두루마리에 기록했다(4-22장).
“마땅히 일어날 일들” 중 첫 번째로 기록한 것은 천국 예배이다(4-5장). 하늘 성전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네 짐승(높은 반열의 천사들), 이십 사 장로들(성도들의 대표), 많은 천사, 모든 피조물이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렸다.
이 땅을 떠난 성도는(자는 자들) 이미 천국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살아남아 있는 성도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Rapture)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항상 주와 함께 있으”면서 천국 예배에 참여할 것이다(살전 4:13-18).
이 일 후에 요한이 본 장면은 교회가 끌어올려지고 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어린양의 진노였다(6-16장). 여섯 인을 차례로 떼실 때, 거짓 평화, 전쟁, 기근, 사망, 지진 등의 무서운 환난이 땅에 쏟아졌다.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① “누가 능히 서리요?”(6:17). 아무도 진노의 큰 날에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주님께서 특별히 살려두실 종들이 있다(144,000, 1-8절).
②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10). 땅에 거하는 자들을 언제 완전히 심판하시겠냐는 순교 당한 주의 종들의 탄원이다(다섯째 인). 주님은 죽기까지 자기에게 충성할 종들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고 하셨다. 곧 일곱째 인을 시작으로(8:1) 땅에 쏟으실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대환난 심판 동안 주님은 수많은 동무 종들과 형제들의 수를 채우실 것이다(큰 무리, 9-17절).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환난 속에서 택하신 종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가장 강력하게 이루실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능력을 찬양하자. 또한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택함 받은 종으로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복음 전도의 사명에 더욱 충성하기를 원한다.
1. 택하신 종들, 144,000(1-8절)
144,000은 인침을 받은 자(사람)의 수이다(7:4). 진흙이나 밀랍 위에 왕의 인장 반지로 인을 치면, 그 인봉 된 문서의 내용이 보호되고 권위가 인정되며 소유권이 선포된다. 누구의 인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다(7:2). 유일하신 참 하나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자기 소유로 삼고 보호하기로 택하신 사람들이 144,000이다.
이들을 9절부터 나오는 “큰 무리”와 같은 대상으로 보고 ‘교회’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본문을 가장 자연스럽게 문자적으로 해석할 경우, 이 둘은 같은 무리가 아니라 다른 무리다. 144,000은 정해진 숫자이고 큰 무리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다(7:9). 144,000은 땅에 있고, 큰 무리는 하늘에서 어린양 앞에 서 있다(7:9). 144,000은 이스라엘 자손이고(7:4-8),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다(7:9). 144,000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7:4). 땅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대인들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 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AD 160년까지 없던 사상). 성경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약속한다.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을 언급하며 이렇게 확언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신비”를 밝히면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을 말했다(롬 11:25). 사도행전은 실제로 유대인은 우둔해지고 이방인은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역사를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를 물었고, 예수님은 그때는 아버지의 권한에 두었다고 말씀하셨다(행 1:6-7). 환난기 중간에 바로 그때가 시작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왔고 이제 이스라엘의 충만함을 위한 일꾼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 보호받고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어 만국에 복음을 선포한다. 이들은 이사야 43장에 예언된 것처럼 동서남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불러 모은 자, 창조하신 자들이다. 이들은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았다는 것을 마침내 믿게 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아합 왕때 7천 명의 신실한 자를 남겨두신 하나님은(왕상 19:18), 환난기에 신실한 자 144,000을 남기셨다.
요한은 144,000의 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들”었다(7:4).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이렇게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도합 144,000명이었다(7:5-8). 12X12X1000은 이중으로 완벽한 숫자이다. 충성스러운 종들의 목록이기 때문에 단과 에브라임같이 우상숭배 죄질이 심한 지파를 감추고(삿 18:30; 호 4:17), 대신 제사장 지파 레위와 충성스러운 인물인 요셉을 넣었고, 메시야가 나올 지파, 유다를 선두에 세웠다.
이들은 특별히 환난기 중반에 택하심을 받았다. 여섯째 인의 심판 이후에 요한이 본 환상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7:1). 바람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켰다(단 7:2). 실제로 네 천사는 2절에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라고 불린다.
8장에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천사를 통해 일곱 나팔의 심판이 땅에 임하는데, 초반에 있는 심판이 모두 땅, 바다, 수목, 식물에 미치는 심판이다(8:6-11).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기 전 하나님은 다른 천사를 보내셔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게 하셨다(긴급, 중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7:3). 이 장면은 에스겔 9장에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전 신실한 자들의 이마에 먹으로 표를 그려 살려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겔 9:4, 짐승의 표, 13:16). 대환난의 후반기 극심한 심판이 땅에 쏟아지기 전, 하나님은 신실한 종들을 인쳐 자기 영광을 위한 일을 하게 하실 것이다.
특별히 이마에 인치는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것을 보면(7:2), 밧모 섬 기준으로 동편에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룰 종들을 세우실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에 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사도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증언하라고 명령하셨고, 오늘날 우리가 그 사명을 이어받았다. 환난기에도 그 사명에 충성할 자를 주님이 택하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그제야 끝이 올 것이다.
144,000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 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은 우리를 가리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라고 부른다(엡 1:13). 144,000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벧전 2:16). 주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롬 14:8).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명은 단 하나다(환난기나 지금이나):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마 28:18-20). 그러므로 당신이 사명에 충성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1800년대 인도 선교사 헨리 마틴은 “내가 수행할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수될 때까지 나는 불멸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함이고, 우리가 수행할 그리스도의 사역을 마치는 순간 주님은 우리 영혼을 도로 찾으실 것이다. 주어진 시간, 사역, 만나는 사람과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사명에 충성하라!
2. 구원받은 종들, 큰 무리(9-17절)
일단 144,000의 정체가 밝혀지면 9절부터 등장하는 “큰 무리”를 파악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들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앞서 천국 예배의 장소(4-5장), 하늘 하나님의 성전, 보좌 앞과(7:15) 어린양 앞에 서 있다(7:9). 그들의 수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다. 유대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십 사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7:13). 질문했던 그가 답도 줬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
먼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는 말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입은 자들, 곧 성도라는 것이다. 흰 옷은 정결함, 거룩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성도라고 말할 수 없다. 큰 환난에서 나왔다는 말이 기간의 범위를 제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이 처음 환난이 시작되고나서 부터(첫째 인) 앞으로 쏟아질 대환난의 마지막까지 천국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천국 예배에 동참하게 될 성도라는 걸 알 수 있다(환난에서 ‘나오는’-현재형).
누가 대환난 기간에 수많은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 이르러 천국 복음을 전했을까? 앞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증인들이다.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무 종들, 그리스도의 피로 형제 된 큰 무리가 대환난을 당하거나 자연적인 이유로 혹은 순교 로(6:9-11) 죽음을 통과해 천국 예배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들 손에는 종려 가지가 들려 있는데(9), 이는 주권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뻐 맞이하고 경배하는 방식이다(예루살렘 입성 하실 때 예수님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모습, 요 12:13). 큰 무리는 하나님과 어린양께 큰 소리로 외쳐 경배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7:10). 대환난에서 구원받은 사실, 그리고 영원한 멸망에서 건짐받은 은혜에 크게 감사했다.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주권자이십니다!
큰 무리의 찬양에 장로들과 네 생물 주위에 있던 천사가 “아멘”으로 화답한다(7:12). 그리고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한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7:12). 모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관련되어 있는 찬송 제목이다. 구원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고의 속성들(영광). 천사들이 계속 헤아리기 원했던 구원의 놀라운 지혜, 구원에 합당한 반응인 끝없는 감사, 구원하실 수 있는 무한한 권능과 실제로 구원의 역사에 사용하신 지극히 큰 힘, 구원의 업적을 인정하는 존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영원히 돌리는 경배가 쉬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때(예배), 하나님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시고 그들을 온전히 채우시고 보호하신다(7:15).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는 말은 구약시대 성막에 특별한 임재를 두신 하나님 영광의 임재가(쉐카이나 영광) 하늘의 성전에서도 풍성히 그들을 덮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 하나님이 진실로 함께하신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히 그들을 만족시키신다. 다시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는다(7:16).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7:17). 주께서 그를 믿는 자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요 7:38), 결코 주리지 않게 하는 생명의 떡이 되신다(요 6:35).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신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다(7:16). 이 표현은 대환난 때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생각나게 하는데, 이제 다시는 그들에게 환난이 미치지 않을 것이며, 과거에 흘린 고통과 슬픔의 눈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씻어 주실 것이다(7:17).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하면서(벧후 3:12) 동시에 그날이 더디다고 생각되는 것은 진짜 더딘 것이라서가 아니라 주님이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서 그러렇다고 말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하지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거의 대부분 멸망에 이르고 드물게 회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종말에 충성스러운 일꾼을 통해 하나님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멸망에서 건지시고 회개하기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주님이 종말에 이루실 구원의 역사는 참으로 모든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감사와 권능과 힘과 지혜를 주님께 돌리기에 합당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참으로 크고 놀랍다. 구원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은 지극히 풍성하다.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일을 위한 일꾼이 되었다는 것,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려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자라나게 하시는 사역에 봉사하는 종들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귀하고 가치 있는 특권이다.
마귀는 우리가 종말에 관심을 두지 않기를 원한다. 세상이 항상 지금처럼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든다. 왜? 구원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구령의 열정을 틀어막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우리가 종말에 관심을 두기를 원하신다. 세상이 심판받고 새로운 하늘과 땅으로 회복될 것을 믿게 한다. 왜? 구원의 가치를 헤아리게 하고 구령의 열정을 끓어오르게 하기 위해서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마귀의 거짓에 속아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산다. 구원에 대한 감사가 메마르고, 맡겨주신 사명에 두렵고 떨림으로 충성하지 않는다. 아시아 일곱 교회가 그랬다. 처음 사랑을 버렸고, 세속화되었고, 살았다고 말하나 죽었고, 미지근한 상태였다. 그래서 교회에게 성령님은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세상을 미워하며, 뜨겁게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