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확실한 부활, 불확실한 믿음
본문: 누가복음 24장 1절~12절
설교자: 조정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 19:10). 이를 위해 예수님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셨는데, 하나는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고(눅 4:43), 가시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하신 일은 자신이 단지 복음을 전달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올 자가 없다는 것을 많은 표적으로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를 통해 나실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라고 예언했고(눅 1:3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바로 앞에 서 있던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 27:54).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잃어버린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이 살면서 하신 모든 말과 일에 의문을 품기에 충분할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한 말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눅 24:19~21).
그런데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 메시야가 어떻게 백성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요 11:25~26) 약속하신 분이, 정작 자기는 죽음으로 끝나버렸다면, 어떻게 그분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복음)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확실하게 선포합니다(고전 15:14).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선포한 복음이 진정 참된 복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참으로 진리와 생명의 하나님께 나아갈 유일한 길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큰 표적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많은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부활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적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는 세 가지 확실한 증거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당시 제자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주어지기를, 부활에 합당한 반응으로 예수님을 찬송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증거1: 빈 무덤(1~3)
1절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들어가서 2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절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부활의 첫 번째 증거는 바로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이 비어있는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이 무덤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새무덤으로 예수님의 시신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눅 23:53,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 그런데 3절에 보시면 무덤 속에 있던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없어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활 즉 예수님이 확실히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빈 무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먼저, ‘엉뚱한 무덤에 갔을 것이다’라는 가설입니다. 1절 말씀처럼 새벽 그것도 해가 돋기 시작한 아주 이른 새벽이라 여인들이 엉뚱한 무덤에 찾아갔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기 소유의 무덤에 가져와 예수님을 장사지냈을 때 예수님의 제자였던 이 여인들도 그 뒤를 따라 “그 무덤”과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눅 23:55).
안식일 즉 금요일 저녁 6시쯤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여인들은(눅 23:56), 안식 후 첫날(일요일), 이른 새벽 해가 돋을 때 미리 봐두었던 “그 무덤”으로 준비한 향품을 들고 갔습니다. 절대로 엉뚱한 무덤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후에 베드로도 무덤으로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여인들이 확인한 바로 “그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히 요셉의 새무덤에 묻히셨고 삼일째 되던 날 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가설은 ‘제자들이 무덤의 시체를 훔쳐 달아난 것이다’입니다.
예수님이 묻히신 시간이 금요일 저녁 6시쯤이라고 생각할 때, 주일 새벽에 빈 무덤이 발견되기까지 약 35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우려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청하여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하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교세를 확장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마 27:62~66).
그래서 빌라도는 경비병을 데려다가 무덤을 돌로 인봉하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마 27:66). 그런데 보십시오. 2절에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3절에 예수님의 시체도 사라졌습니다. 정말 제자들이 한 일일까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근처에도 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살아계실 때 그랬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오히려 로마 경비병과 맞서 싸우고 거의 2톤에 가까운 돌을 굴려내고 나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고 나갔겠습니까?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히려 그들은 빈 무덤에 대한 여인들의 설명을 듣고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가설은 ‘빌라도 혹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훔친 것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 시신을 훔쳐서 얻을 이득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슬픔을 더할 수야 있겠지만, 그들의 우려처럼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주장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시체가 오랫동안 무덤에 확실히 묻혀 있어야 그 추종자들의 세력을 단단히 틀어막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날 수 있는 소란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빈 무덤이 발견됐을 때 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로들은 서로 모여 의논하고 “제자들이 밤에 와서 병사들이 잘 때 시체를 도둑질해 갔다”는 거짓 소문을 만들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유대인 가운데 이 소문이 두루 퍼지도록 만들었습니다(마 28:11~15).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제자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만큼 빈 무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로마 통치자들에게 다른 말로 설명하기에 매우 어렵고 불편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가설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거의 죽음에 이르렀지만 죽지 않았고, 35시간 이내에 빠르게 회복되어 무덤을 뚫고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넘기기 전에 백부장에게 죽은 것을 확인하라고 명령했고,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확실히 예수님이 죽었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이 가설은 터무니없는 거짓입니다(막 15:43~44; 요 19:34). 빌라도는 확실히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확인하고 시신을 넘겨주었습니다.
게다가 거의 초주검에 이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스스로 세마포를 풀고 일어나 2톤에 가까운 돌을 치워버리고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을 제압한 후 무덤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왜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
빈 무덤을 설명할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다시 復, 살 活). 여러분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지금껏 기독교를 거부하거나 박해한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 중 빈 무덤에 대해 다른 설명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확실히 보여주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2. 증거2: 천사의 증언(4~7)
4절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절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절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그 두 번째는 천사의 증언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무덤을 찾아오면서 서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 말하면서 왔는데(막 16:3), 돌이 벌써 굴려 옮겨졌고 들어가 보니 주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생각한 것은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옮겼구나’였을 것입니다(요 20:2).
막달라 마리아는 이 여인들보다 먼저(“아직 어두울 때에”, 요 20:1) 무덤에 왔었는데, 그녀가 돌아가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보고한 것은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였습니다(요 20:1~2).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거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아신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그들에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도우미, 즉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마 28:2).
여인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문득”, 홀연히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찬란한 옷은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인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 투영하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모세의 얼굴에 비친 광채, 출 34:29). 여자들은 이 영적인 존재 앞에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경외의 태도를 갖춥니다.
그때 두 천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들이 근심하며 당혹했던 사건, 즉 무덤이 비어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이 직접 천사를 통해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천사의 말은 책망으로 시작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살아나셨다’는 표현은 과거형 수동태로 예수님이 누군가에 의해 살아났다는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행 3:15; 4:10). 그래서 베드로가 오순절에 이렇게 백성 가운데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
그런데 살아 있는 예수님을 왜 여기 죽은 자가 있는 무덤에서 찾느냐고 꾸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여인들을 천사가 꾸짖은 것은 이것이 예전부터 이미 그들에게 분명히 알려진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것을 분명히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는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그 사례를 여인들에게 언급합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갈릴리에서 너희를 가르치실 때 이미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 가르침을 친히 다시 설명해줍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갈릴리 사역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그들을 칭찬하시고 바로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제대로 봤다. 맞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눅 9:22).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천사들이 이 말씀을 상기시켜 준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하나 순종하지 않았느냐? 고난받으셨고,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로 죽임당하셨고, 그리고 제삼일에 어떻게 되신다고 했느냐?
제삼일에 살아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삼일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에 그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확증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서 백성을 대신하여 죽고 부활할 것이라고 확실히 주장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주장하신 대로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무덤에 묻힌 채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면, 그분이 하신 약속은 거짓이며 그분이 구원자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교주처럼 부활을 약속하고는 30년 넘게 무덤에 묻힌 채로 있는 사기꾼도 있고,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처럼 절대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도 있습니다. 안상홍 교주의 무덤은 하나님 교회의 모든 교리를 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신천지의 모든 가르침은 곧 이만희 교주가 죽으면 무너질 것입니다. 물론 다른 거짓으로 세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약속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순간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사기꾼이거나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빈 무덤의 의미는 예수님이 거짓 교사가 아니라 가르치신 것처럼 그리고 제자들이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천사의 증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온 빈 무덤에 대한 확실한 설명이었습니다.
3. 증거3: 증인(8~10)
8절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절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이제 세 번째 예수님 부활의 증거를 만나보겠습니다. 바로 빈 무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천사를 통해 두 귀로 들었던 증인들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법적 효력을 갖는 증인으로 최소한 두 명에서 세 명을 요구합니다.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은 10절의 말씀처럼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눅 8:3),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로 이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았습니다(신 19:15; 마 18:16).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종종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루면서 최근에 방송국으로 연락한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했다면서 크게 흥분하며 이제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목격한 한 사람만으로도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에 있었던 증인은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도 아니며 적어도 다섯 사람 이상이었습니다(살로메, 막 16:1).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 네 사람, 그리고 다른 증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목격자들은 두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빈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또 두 귀로 천사가 말해주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부활의 확실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8절을 보시면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렇다! 예수님이 제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확실한 약속을 기억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열한 사도와(유다 제외) 다른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9절).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여자들은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했습니다(마 28:8). 한편 마가는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고 기록합니다(막 16:8).
이 두가지 기록을 어떻게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자들은 큰 무서움에 빠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무서워했지만 갑작스레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갑니다.” 무엇이 여인들이 가졌던 큰 무서움을 큰 기쁨으로 바꾼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마태복음 28장 9절에 나와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그들을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그들을 만나 “평안하냐”하고 인사하셨고, 여자들은 나아가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마 28:9).
여인들은 이제 부활하신 주를 직접 본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기쁨으로 달려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원합니다. 사도들은 이 소식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4. 반응: 믿지 않음(11~12)
11절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절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도들은 증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11절 말씀처럼 사도들은 그 많은 증인, 빈 무덤을 직접 목격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증언을 들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너무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큰 기쁨으로 달려온 이 여인들의 증언을 허탄한 듯이 들었습니다. ‘가치 없는 말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혹은 ‘의식이 희미해진 환자의 헛소리’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연약한 믿음,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봅니다. 아무리 확실한 부활의 증거를 말해도, 믿지 않으려는 견고하고도 완악한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갔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다른 제자”(아마도 요한)가 함께 무덤에 달려갔고 먼저 도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여인들이 말한 빈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구부려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을 싸맸던 세마포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요 20:7).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급히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시신을 감싼 베옷을 다 벗겨두고 머릿수건도 따로 개켜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누군가가 세마포와 머릿수건을 그 자리에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밖으로 빠져나간 모습이었습니다. 누가는 베드로가 이 일을 놀랍게 여겼다고 말했지만, 요한복음에 따르면 요한은 이 장면을 눈으로 보고 “믿었다”고 말합니다(요 20:8).
둘 다 확실한 부활의 증언을 여인들에게 들었고, 둘 다 확실한 부활의 증거를 빈 무덤 속에서 보았지만 한 사람은 믿었고 한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불확실해서가 아닙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사도들 중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요 20:25).
후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래 한 번 직접 만져보거라..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그리고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9). 왜 그들이 복될까요? 더 큰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일어난 사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처럼 이단으로 정죄받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된 60년, 누구든지 빈 무덤을 찾아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바울은 55년(예수님 부활 사건 이후 약 22년 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500여명의 형제가 대부분 살아있다고 고린도 교회 편지를 통해 증언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요일 1:1). 후에 열한 사도는 모두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확실한 부활의 증거 앞에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겠습니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증거는 너무나 확실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불확실한 것뿐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부활은 그분이 전파하신 복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증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이 확실한 증거가 증언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믿으십시오(요 3:36).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는 분들께 이 한 마디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믿는 여러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엡 1:19~20)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베푸신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신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롬 8:11). 그 부활의 소망과 능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능력의 영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강력하게 역사하도록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를 말과 행함으로 세상에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가서 내 증인이 되라”(마 28:20; 행 1:8).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나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