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기뻐할 수 있는 환경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집들이 너무 아름답고 거리도 깨끗하며, 개인 풀장과 자가용, 보트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그런 환경에서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로 1위가 ‘방글라데시’인 것을 보면 환경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현재 내 환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일까요? 풍요롭고 어려움 없이 산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뭔가 반박할 수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주리고 헐벗고 두들겨 맞고 정처가 없는 데다 아내도 없고 후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당신은 기뻐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던 그입니다. 임신한 사람은 몸이 불편하니 아기를 낳으면 편해지겠지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리면 좀 크면 나아지겠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손이 덜 가겠지, 어른이 되어서 장가가면 편해지겠지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환경이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내가 가진 어려움보다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오늘 교회에 새 차를 뽑아서 타고 왔는데 누군가 흠집을 내 놓았다면 참 슬플 것입니다. 그때 마침 핸드폰으로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어떨까요? 그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보다 더 큰 기쁨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경이 나아져서 기뻐했던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보다 더 기쁜 것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자녀가 건강하지 않은 가정도 있고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를 가진 부모도 있으며, 사업이나 직장에서 여건이 좋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기쁨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이 땅에 머물러서는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마음이 하늘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사도 바울은 어려운 삶 속에서 주님이 거기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기뻤던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소망을 생각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은 앞으로 우리가 받게 될 하나님의 약속들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것이 될 소망, 살아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귀신이 나가고 병든 사람이 낫는 기적으로 인해 기뻐했을 때, 주님은 “너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머물러 있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덧붙여 성도들의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얻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여러분의 얼굴은 어떠합니까?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의 성도들은 더욱 살벌하고 치열한 삶이었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사도들은 “항상 기뻐하라” “즐거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눈이 하늘의 소망에 머물러 있을 때 환경을 잊어버리고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뿌듯해집니다. 이 땅에서 해방 받을 날, 하늘의 새로운 몸을 입게 되는 날이 다가옴을 생각할 때 참 기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우리의 관용과 너그러움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님이 주장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늘 불평만 가득한데 매사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것들을 이뤄주셨는지, 앞으로 어떤 일들을 이뤄주실 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눈이 하늘에 머물러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해주신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본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불평’에서 ‘감사’로, ‘우울’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다운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하나님께 맡겨놓으십시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기쁨과 평강 가운데 사십시오. 우리가 매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산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늘 하늘에 머물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