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본문 : 누가복음 17장 20~21절
설교자 : 조정의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에서 37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는 대상이 다릅니다. 20-21절은 그 대상이 “바리새인들”이고 22절부터는 “제자들”입니다. 또 가르침의 내용도 다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에게는 장차 인자의 날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 설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된 나라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모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균형 있는 가르침 중 자기가 좋아하는 한 부분을 택하여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시작된 나라에 치우쳐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고 복음을 선포하다보면 세상이 천국처럼 변할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변화된 나라에 마침내 들어와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자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베드로후서 3장 7절 말씀은 당황스럽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불태워지기 위해 임시로 보존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자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 집착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할 책임은 뒤로하고, 여러 가지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징조들을 찾으려 애씁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를 동영상으로 보게 되었는데 북극 빙하의 감소, 이상 기온, 북극동물의 멸종, 담수의 감소 등을 그 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여러 이유들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고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017년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이론만 여러 개인데, 각각 마야 유적의 예언,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행성 충돌 이론, 개기일식 멸망설, 심지어 트럼프 멸망설까지, 2017년 12월 17일 오늘로 그 모든 이론이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사람들은 2018년에도 수많은 추측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과도한 집착,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 역시 후자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 바리새인의 질문(20절a)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20절a)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언제” “어느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시간 혹은 그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때(질병의 징후를 찾아내기 위해 환자를 지켜보는 데 사용한 말), 그 징조들에 대해 정보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바로 구약의 예언 때문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은 너무도 명확하게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식민지로 600년 이상 억압된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그의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고 다른 모든 권세를 제압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 인자와 같은 이를 메시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헬. 그리스도)이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위대한 선지자로 추앙하던 이사야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사 40:10)
암울하고 억압된 사회 속에서 살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구약의 예언서를 읽으면서 유대인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선지서의 표현들처럼 하늘을 가르고 강력한 표적들과 함께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커다란 표적을 추측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을 의미하는데 그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메시야인지 물었고(요 1:20) 심지어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께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실 줄을 내가 안다”고 말했습니다(요 4). 제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추측했고(요 1:41),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 십자가에 같이 달린 강도까지도 예수님께 “네가 그리스도, 메시야냐?”고 물었습니다(마 26:63).
지금 바리새인들의 눈 앞에는 사람들이 메시야라고 강하게 추측하고 따르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 스스로도 바리새인이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 제국을 뒤집어 엎는 권세 있는 통치력, 하늘에 울려퍼지는 위대한 표적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고, 성전은 헤롯이 장악했고, 이방민족과 제국은 축출되지 않고 강력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기도 하고(눅 11:16) 오늘처럼 이렇게 끈질기게 물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당신이 진정 메시야,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면 뭔가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뭐라고 답하실까요?
- 예수님의 대답(20b-21절)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20절b)
이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지만 눈으로 확연히 볼 수 있도록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대대로 하늘로부터 시작된 표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건들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마구간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땅이 갈라지거나 하늘에 구름을 가르고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오심은 유명한 유대인 대제사장 무리나 로마 황제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동방의 박사들과 들판의 목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가 풍성한 아이로 자라셨지만 나사렛 작은 마을에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30년을 사셨습니다. 그 가르침에 권세가 있고 병 고침과 죄 사함과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었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로마 정부를 뒤엎거나 전복시키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 메시야, 그리스도는 강요하지 않으셨고 협박하지 않으셨습니다. 크고 위대한 능력으로 동정과 긍휼과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셨고 삶으로는 겸손과 온유로 섬기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지고 있는 권세와 능력으로 세상을 꺾어버리고 자기 왕국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시고 자기희생적인 사랑,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하신 위대한 사랑으로 세상에 진실로 정의를 시행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사랑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이 사실을 이미 분명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에게 익숙한 구절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이사야 42:1-4)
하나님께서 붙드는 종,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택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그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상하고 꺼져가는 죄인들을 무참히 짓밟지 않으시고 긍휼과 사랑과 겸손과 온유로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희생적인 사랑으로 가지고 계신 능력을 사용하며 섬기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고 계신 하나님의 종, 메시야였습니다. 다만 바리새인들이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처럼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보고 경험했으면서 그분을 알아보고 돌아와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을 앞에 두고도 그 왕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1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즉 바리새인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안에”라는 말 때문에 조금 혼동이 됩니다. 바리새인 안에 천국이 있다고?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안에”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른데 결론적으로 이 표현은 “너희 가운데” 혹은 “너희 손 닿는 곳에” “가까이에”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눈 앞에 지금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까이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니요? 너무 엉뚱한 대답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왕정국가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력을 가진 왕입니다. 지금 바리새인 앞에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직접 그들을 대면하고 계십니다.
한국 대통령이 중국이라는 나라와 협정을 맺기 위해 그 나라의 대표인 주석을 만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대표, 왕, 그리스도가 그들 눈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그 왕을 거절하는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예수님은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건 중 하나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마 12:24)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진짜 메시야라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귀신이 자기 편인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이 말과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냈고 그것은 내가 하나님 나라의 왕, 메시야라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한다, 너희 눈 앞에 있는 나는 귀신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70인을 자기 앞서 보내셨는데 곧 그 마을에 가실 예정이었습니다. 그 70인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였는데 이를 거절하면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경고하였습니다(눅 10:1-11).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고 계셨고 그분을 거절한 이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침례를 베풀 때 성부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 하나님이 임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히자 그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라고 묻습니다. 당신이 정말 메시야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 유대인이 기대했던 화려하고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행위가 아니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가 하신 일이 예수가 왕임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 중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고 하셨고 며칠 후 원래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앞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원래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 나라 왕의 참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코 앞에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그들 손 닿는 곳에 계셨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분을 영접하는가?입니다. 왕을 거절하는 것은 곧 그 왕의 나라를 거절한 것입니다. 구약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렸던 바리새인들은 그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고 여기저기서 찾으면서도 정작 그 나라 왕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럴 벅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그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복에 동참하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려면, 그는 진정한 왕인 예수에게 와서 그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나라의 왕궁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대럴 벅, ‘누가복음’, 베이커 신약 성경 주석, 688)
- 적용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은 예수를 거절했다는 이유 하나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냐고 묻습니다. 천국은 아름답고 영화로우며 기쁨과 즐거움과 영광이 풍성하다고 말하는 데 그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좁고 협착한 길을 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제시하는 답은 간단합니다. 그 나라 왕을 영접하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을 대적하면서 그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백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나라, 곧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입니다. 처음에 오셨을 때는 자기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 오셨고 다시 오실 그 때는 자기를 거절한 모든 자를 죽이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끊어버리실 것입니다.
타락한 하늘과 땅을 불태우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나라 밖 어둡고 불타는 곳에서 영원히 심판받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말이론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것이 진짜 종말에 대한 진리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그 나라 백성이 되기를 거절한 자들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 영원히 슬피 울고 고통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이 왕을 영접하십시오. 바리새인처럼 왕을 눈 앞에 두고도 거절하는 심각한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서 왕의 율법을 듣고 나누며 함께 교제하는 이곳에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을 거절한다면 이 바리새인처럼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영접한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예수님께 바리새인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8)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 대한 추측과 징조를 과도하게 살피는 일을 삼가고 지금 이곳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입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땅 끝까지 이르러 왕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속한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따라 우리 삶을 굴복시키고 우리 입술을 열어 그 왕을 선포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 나라 백성을 통해 하시는 일이며 바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딛 2:14).
우리는 이웃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사 45:14). 우리 삶을 통치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에 관하여 묻게 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