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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 문: 요한일서 4장 19절
설교자: 조 정 의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오 늘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중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참 이상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교회는 그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 그러겠노라고, 가족보다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왜 사랑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점점 잊어갑니다. 갓 구원받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풍성히 젖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흘러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 의무적으로 출석하고 찬양과 감사도 형식적으로 드립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처음 사랑을 잃어갑니다. 성경은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식어가는 현재의 우리는 그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분명해지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저 는 여러분들에게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냐고 질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보다 더 섬기고 희생하며 봉사하라고 채찍질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으로 낳으셨다
자 녀들은 부모님이 나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부모님이 나를 필요해서 낳았다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하려면 왜 나를 낳았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생일이 되면 자신에게 특별한 날이라고만 생각하지 부모에게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꼭 필요로 해서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한 찬양사역자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묘사하기를 “내 눈물에 당신만이 이렇게 흘러 내리는데 곁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하는 당신은 바보 같네요 당신 아파하면 내 가슴은 이렇게 터질 것 같은데 네겐 관심 없는 당신만 바라보네요”라고 마치 연인 간의 사랑처럼 인간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하나님은 절대 이런 마음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거나 우리의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족하시는 분입니다. 스스로 아무 부족함이 없으시고 홀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행17:24-25)”
부족함이 전혀 없는 분이 왜 우리를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사43: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더 놀라운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지 못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등지고 살아왔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3)”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롬1:29)”로 이 시대에 팽배한 죄악들로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주 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3-18)” 다윗은 자신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고 말하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으로 기르신다
“공 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고 공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임금님 상 같은 음식을 대할 때, 하루 중 “아이고 배불러~”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될 때, 옷장에 많은 옷들이 있고 눈비가 내리고 밤이 깊어도 쉴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돈으로 구입한 것이고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은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매 순간 순간마다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십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든지 구하지 않는지, 알든지 모르든지, 감사하든지 하지 않든지 매 순간 사랑으로 우리를 기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필요 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채우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을 섬기며 세상의 죄악을 좇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의 죄를 사랑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2)”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 없었고 은혜를 구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를 사랑으로 낳으신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르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 자라가게 하시며 의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십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고 가장 좋은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물질적인 필요 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 매일매일 채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으로 부르신다
문 득 생각해보면 세월이 참 빠른 것 같고 삶이 참 짧은 것 같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평생 살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후에 저는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게 되는데 승객들에게 낙하산을 하나씩 주지도 않으니 저는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
저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말씀에게 가리키고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고 희망합니다. 그날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릴 때 집에 혼자 있으면 참 많이 울었는데 옆집에 계시던 애드가 군지 할아버지와 루이스 할머니가 늘 위로해주셨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그분들을 죽음 이후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릴 때 교회에 오면 시키지 않아도 늘 인사를 하던 분, 아이들에게 줄 사탕을 항상 준비해오셨던 구자성 부친님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이 모임이 소중한 것은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서 다시 만나고 영원토록 교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 리는 거룩하신, 영광이 가득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이 빛나서 해와 등불이 필요 없는 그 분 앞에서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시온 성을 떠나 천하고 천한 곳에 오신,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섬기셨던, 손과 발에 우리를 향한 십자가의 흔적을 간직하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눈물이 씻어질 것이며 고통도 아픔도 없고, 영원토록 왕 노릇할 것이며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구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구한 것도 아닌데 먼저 사랑을 보이신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
결론
하 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낳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영광이 가리울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매 순간 우리를 사랑으로 기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