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편견과 차별이 없는 교회
본문 : 사도행전 10장
설교자 : 조 정 의
세상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 경제, 결혼 여부, 종교, 문 신, 복장, 머리 모양, 화장 여부, 지역 등. 편견을 가지고 서로 차 별한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도 편견과 차별이 있을까?
찰스 스윈돌 목사는 “편견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라는 끈질기 고 가시 많은 잡초이고, 타락한 죄성이라는 썩은 퇴비에서 양분을 얻는다. 싹둑 자르거나, 잎에 독을 뿌리거나, 뿌리째 뽑아보라. 어느새 다시 돋아날 것이다”라고 말했다(213p).
교회는 타락한 죄성과 싸우고 있는 성도의 모임이기 때문에 여전 히 그 안에 편견이 자랄 소지가 있고 차별이 존재할 수 있다(정 치, 경제). 초대 교회에도 아주 무시무시한 편견이 존재했다. 얼 마나 큰 편견이었던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사명조차 그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할 정도였다.
오늘 말씀을 통해 ①그 편견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②주님께 서 어떻게 그 편견의 벽을 허무셨는지 알아보기 원한다. ③그리 고 모든 편견이나 차별을 제거하는 복음, 모든 정치와 경제와 성 별과 교회 형태와 전통과 문화를 초월하여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가 되게 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배우기 원한다. 그 복음 안에서 우리가 편견과 차별 없는 교회가 되어 하나 되기 원한다.
1. 교회에 있던 편견과 차별
사실 초대 교회는 오순절에 성전에 모인 여러 민족(유대인 혈통) 이 구원받는 역사를 목격했다(2장), 빌립을 통해 구원받은 혼혈 민족 사마리아인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내려오는 것도 봤다(8 장). 문제는 순수 이방인이었다. 이방인도 교회가 될 수 있는가?
고넬료(코넬리우스, ‘뿔’)는 순수 이방인으로 유대 주둔하던 로마 (이달리야)의 예비 보병대(보통 600명 구성) 백부장이었다(대 위, 중대장, 100명 지휘). 그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경건한 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자였다(2절).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11:3), 하나님을 진지 하게 믿고 그 율법에 따라 살며 순종의 열매를 맺는 자였다.
하지만 유대인의 시각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벧전 2:10).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외인이었다. 바울은 이방 인이 하나님도 없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는 자였다고 말한다(엡 2:12).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이방인은 아니었다. 유대인은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받았지만, 이방인은 그런 징표 가 없었다. 유대인은 거룩한 장소인 성전에서 하나님 존전에 성 회를 가졌지만, 이방인은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이방인의 뜰). 유대인은 하나님께 구별된 민족으로 먹는 것, 입는 것 등 삶의 규율이 엄격하게 정해진 반면, 이방인은 유대인이 볼 때 야만 인처럼 아무거나 먹고 자유롭게 살았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품, 하나님 나라가 보장되었지만, 이방인은 보장된 미래가 없었다. 이방인의 유일한 소망은 유대인으로 개종하는 것뿐이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의 편견을 사용하시어 여자의 믿음을 시험하셨는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막 7:27). 극단적인 유대인은 이방인이 지옥 불을 태울 연료, 장작이라고 말했고, 유대인이 매일 드렸던 기도 중 하나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 기도였다.
사도행전의 남은 기록은 교회가 가진 편견의 역사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유대인처럼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예루살렘 공회의(15장),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혀 로마로 끌려가게 된 계기엔 율법에 열성을 가진 수만 명의 믿는 유대인이 관여했다(21장). 서신서에도 교회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을 두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롬 3:29; 고전 12:13; 갈 3:28; 골 3:11). 초대 교회가 극복해야 했던 편견과 차별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던 장애물이었다.
베드로가 보이는 편견과 차별 역시 두드러진다. 그는 항구도시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했는데 해변이 다 보이는 지붕 (옥상)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다(6, 9절). 때는 제6시, 정오였 고, 시장하여 먹고자 했다(10절).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를 위한 음식을 준비할 때, 그는 환상을 봤다(황홀한 중에, 10절).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네 귀퉁이가 매어, 한 그릇처럼 보였다(11절). 보자기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발 가진 짐승, 기는 것, 공중의 나는 것들이 있었는데, 모두 유대인에게 부정한 것,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12절, 레11장; 신14장, 돼지고기, 문어). 하늘에선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소리가 있었고(13절),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다 (14절).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다(15절).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음식 때문이었다. 음식의 장벽을 넘으면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데 훨씬 수월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속되 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그마치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16절). 베드로는 세번 모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답했다(세 번 부인한 베드로). 그 정도로 도저히 이방인이 먹는 음식 나아가 이방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님이 “깨끗 하게 하셨다”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말이다.
17절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밖에 서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냐고 물었던 것을 보면 그는 이방인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영접하는 것을 경계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을 때 비로소 베드로는 내려가 그들을 맞았다(19절).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는 50km로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이튿날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 셋, 욥바의 형제들(23절, 11:12) 여섯 명과 함께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 집에 갔을 때, 거기엔 고넬료와 그의 친척, 가까운 친구들이 제법 많이 모여 있었고(24절), 그들의 영접을 받은 베드로의 첫 마디는 이랬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 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28절)
사마리아 여인은 똑같은 말로 예수님께 “어찌 나에게 물을 달라 하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편견과 차별 없이 그녀에게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어 주셨다(요 4).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 자였고 교회의 핵심 일꾼이었지만, 예수님처럼 고넬료와 그가 모 은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사마리아 여인 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가지고 다가갔다.
오늘날 교회도 이런 편견과 차별을 가지고 있다. 특정 범죄를 저 지른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제한된 것처럼 여긴다. 정치적, 경 제적 차이를 교제할 수 없는 장애물로 만든다. ‘참 그리스도인 맞아?’라는 편견을 갖는다. 본질적인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예 배 형식, 견해 차이) 선을 긋고 벽을 쌓는다. 죄를 범한 성도를 용 서하고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선입견을 갖고 정죄한다.
하지만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교회 안에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차별 없는 은혜와 그리스도의 편견 없는 사랑을 받은 공동체라는 것을 세상 이 알게 하기 원하신다(요 17:23). 정통 유대인 베드로가 순수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진 편견을 그래서 주님이 허무셨다.
2. 편견과 차별을 허문 주님
먼저 주님은 고넬료를 찾아오셨다(빌립, 가이사랴, 8:40). 그가 제 구시(오후 3시) 저녁 예배 시간에 맞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 자, 천사를 보내주셨다(3-4절).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4절). 편견과 차 별의 벽에 막혀 들리지 않던 이방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 다. 하나님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셨다(5절). 하나님이 먼저 그에게 권하지 않으셨다면 고넬료 역시 함부로 베드로를 청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넬료는 신중하게 집안 하인 둘 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욥바로 보냈다(7-8절).
앞서 살펴본 대로 주님은 베드로가 기도할 때 그에게도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가 속으로 의아해하면서 환상에 대하여 생각 할 때,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고넬료가 보낸 이방인을 맞이하게 하셨다(19-20절).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 때문에 베드로는 마음의 편견을 허물고 그 이방인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유숙하 게 했다(23절). 함께 먹고 교제했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이 보여주신 환상을 제대로 이해했다. 고넬료에게 나중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라고 했다(28절).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할 때, 베드로는 그를 일으켰다. 그리고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했다(25- 26절). 오직 하나님만 경배를 받으실 분이라는 말이지만, 그 하 나님 앞에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고넬료가 빛난 옷을 입고 자기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 한 천사의 이야기를 하자,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다(30-33절).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5절).
- C. 스프로울은 사도행전 10장이 신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 말한다. 바로 베드로의 이 깨달음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받으시는 데 외모, 국가 등 그 어떤 편견이나 차별이 없으시다는 것. 베드로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통해 마침내 그 편견의 벽을 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44절). 베드로뿐만 아니라 함께 욥바에서 온 여섯 형제, 할례 받은 신자들(유대인)이 모두 놀랐다(문: ‘정신을 잃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다(45절). 오순절에 그들이 성령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게 하셨다(46절). 그래서 베드로는 말한다.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47절). 하나님이 허무신 편견과 차별의 벽을 우리 가 어떻게 세우겠느냐는 것이다. 침례는 이방인을 그리스도의 교 회로 포함하겠다는 공적인 선언이다. “우리가 다 유대인이나 헬 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 12:13). 하나님께서 둘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 19:6). 단지 부 부로 한 몸이 된 경우만 그런 게 아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 4:3). 하나님께서 모든 편견과 차별을 허물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 교회가 되게 하셨다.
3. 편견과 차별이 없는 복음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로 만든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일까? 모 든 종류의 편견과 차별을 허물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한 형제자매가 되게 하는 복음의 정수는 무엇인가? 바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파한 복음이다(36-43절). 초대 교회 시대, 사도들 이 두루 다니며 전파한 이 복음의 정수를 케리그마(설교)라고 한다.
- 이 복음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 선지자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평을 선언하는 복음을 전하셨다(36절).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반포한 후 갈릴리에 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이 말씀을 두루 전하셨다(37절).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면서 성령과 능력으로 두 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게 하셨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게 하셨다(38절).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는 복음의 선포자가 되게 하셨다. 사도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39절).
- 예수님은 참 제사장이시다.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는 제사장이시다. 예수님은 죄인의 죄를 지고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43 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셔서 유대 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유일한 중보자가 예수 그 리스도라는 것을 확증하셨다(4:12). 사도들이 증인이다(41절).
-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참된 왕이시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왕으로 모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재판하신다(42절). 하나님 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구속 사역뿐만 아니라 그 분의 왕되심을 백성에게 전도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 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꿇게 하 시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빌 2장).
교회는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의 모임이다. 그 어떤 편견과 차별도 이 복음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물론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딤전 3:15) 하 나님 말씀을 예리한 검처럼 다루며 거짓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검이 마귀와 거짓 교사를 물리치기 위함인지 아니면 형제자매를 돕기 위함인지 분명히 하라. 확실한 건 우리의 편견과 차별은 고통과 상처만 남길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회복과 하나 됨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예배 형식, 비본질적인 견해의 차이, 세대, 지역, 결혼 유무, 과거를 가 지고 편견을 갖지 말라. 차별하지 말라. 참 복음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차별 없는 사랑, 차별 없는 의로 우 리를 구원하셨음을 세상에 선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