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잔치에서 배우는 신앙의 원리
본문: 누가복음 14장 7~14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는 때로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원리를 배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먹은 것을 감출 수 없고 내가 먹은 것은 나의 몸무게로 나타난다는 원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먹는 자신을 보면서 사람이 참 연약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때가 되어서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는 것을 보면, ‘벌써 일 년이 지났구나!’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문득 거울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세월은 막을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배우는 원리는 그만큼 실제적이고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교사이신 예수님은 많은 경우에 당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상을 통해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로부터 식사초대를 받으시면서 있었던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지만, 그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식사초대를 받으신 예수님이 이제 식탁에 앉으시는데, 그 식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두 번으로 나누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7절 끝에 “이르시되”가 나오고, 12절 처음에 또 “이르시되”가 나옵니다. 그래서 7절에서 11절까지를 첫 번째 말씀, 12절에서 14절까지를 두 번째 말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7절부터 11절까지는 청함을 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초대를 받은 사람들,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12절부터 14절까지는 자기를 청한 자, 초대를 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상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말씀하시는데, 결국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결론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정리하면 오늘 본문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청함을 받은 자는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그 이유는 이러하다.
둘째, 청한 자는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예수님은 식탁을 앞에 둔 평범한 일상에서 하늘의 진리를 이끌어내십니다.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인생의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삶을 더 가치 있게 하는 조언, 요즘 말로 하면 인생의 꿀팁을 주신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잔치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교훈이 우리 신앙에 어떤 원리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번째 교훈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에게 겸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셔서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실 때,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황과 반대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그들을 보십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주목해서 보신 것은 무엇입니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7) 예수님은 초대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식탁은 일반적으로 영어 알파벳 유(U)자 모양이었습니다. 맨 아랫부분이 주인의 자리이고 이 자리와 가까울수록 더 높은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는 주인의 왼쪽이고 그 다음 자리는 주인의 오른쪽입니다. 그리고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순서대로 자리가 배치됩니다.
보통은 미리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지만, 때때로 자리 선택이 손님의 재량에 맡겨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손님이 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초대된 사람들이 자신을 더 좋게 보이려고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비유는 혼인 잔치라는 배경에서 제시됩니다. 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8절과 10절에 그에 대한 명령이 나오는데,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과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명령은 두 개이지만, 하나로 요약됩니다.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왜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안 돼는 걸까요? 보통,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잔치에 왔습니다. 일반 손님들이 도착한 다음에 잔치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더 높은 사람이 왔을 때,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일입니다. 졸업반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총장님과 교수님들과 함께 하는 사은회를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갈 수 없는 좋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원수에 맞게 미리 예약을 하고 식당에 갔는데, 넓은 방에 식탁이 한 줄로 길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총장님이 가장 중앙에 앉으시고, 교수님들이 총장님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떨어져 앉으시고, 남은 빈자리를 학생들이 채워 앉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수님들께 드릴 선물을 챙기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 앉으려고 보니까 빈자리가 총장님 옆자리가 남은 겁니다. 총장님은 강의시간에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바짝 긴장한 상태로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 그 총장님 옆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입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들 피하는 자리인거 같아서 저는 희생하는 마음으로 정말 용기를 내어서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반대편에 계신 교수님이 그 자리는 교무처장님의 자리라고, 곧 오실 거라는 하는 겁니다. 학생 중에는 누구도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제가 앉았던 겁니다. 저는 앉아계신 교수님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이지 않았던 빈자리가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총장님과 멀리 떨어진 끝자리에서 편하게 밥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다르게 정반대의 행동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대를 받았을 때, 높은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끝자리에 앉으면, 초대한 사람이 더 나은 자리를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 받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대신에 식탁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비유에 대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집니다. 하지만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어떻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말이 됩니다. 이런 말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역설을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높은 자는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정말 강함은 약함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높으시고 누구보다 강하시며 누구보다 위대하신 예수님이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신 예수님은 다시 가장 높아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겸손을 가르치셨고, 친히 겸손을 보여주셨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는 어울리는 않는 모습입니다. 자발적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자신을 제대로 보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 겸손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만족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단순히 자신을 낮게 여기고, 자기비하에 빠지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주님 안에서 계속 성장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주님의 은혜로 채워가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인격, 여러분의 성품, 여러분의 신앙, 이 모습 이대로를 만족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더 성장하기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살펴볼 오늘 본문의 두 번째 교훈은 자비입니다. 예수님은 청한 자에게 자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12절에 “청하지 말라”, 그리고 13절에 “청하라”입니다. 누구를 초대하지 말아야 하며,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요? 초대하지 말아야 하는 대상은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이 도로 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받은 것에 대해서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식사초대를 할 때 친구나 가족이나 친척들을 초대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이제부터 부모님의 생신 때도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럼 누구를 초대해야 합니까?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 맹인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오늘 저녁에 식사초대를 한다고 했을 때,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누구를 초대할 수 있을까요? 가난한 분계십니까?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 앞이 안보이시는 분? 없으십니까?
여러분,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니겠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단순히 식사초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집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려고 할 때,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할 때,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관대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자비를 베풀 때 자신에게 갚음이 될까를 따지며 자기 유익을 위해서 자비를 베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미리 계산합니다. 이것을 이 사람에게 주면, 나에게 무엇이 돌아올까? 어떤 이득이 있을까?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면, 저 사람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이런 계산속에서 나에게 남는 것이 있을 때, 내게 유익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돕고 자비를 베풉니다. 하지만 해봐야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습니다. 수고하기를 꾹 참습니다. 그런 일은 번거로운 일이기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와 반대로 내게 돌아올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들을 위해 수고하라고 하십니다.
왜 입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4)
갚을 수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때, 지금 받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지금 나에게 손해가 되겠지만, 이를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더 큰 갚음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늘에서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상으로 업그레이드해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갚음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영원을 위한 투자입니다. 여러분, 자비는 투자를 제대로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관심을 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 옮기십니다. 우리의 관심이 온 통 지금, 여기, 이 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한 것에 대해서 지금 갚음을 받으려고 하고, 그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쏟고 있지만, 예수님은 갚음을 미루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받는 것보다 그날에 받는 것이 훨씬 더 남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저축입니다.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의 적은 금액을 저축하는데 자신이 얼마나 넣었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냥 잊고 사는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금액은 정확하게 통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큰 금액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이 세상의 은행들은 사람들에게 크게 추가해서 갚아주진 않습니다. 이율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늘 은행은 어떨까요? 우리가 주님의 본을 좇아서 사랑을 실천하고, 성도를 섬기고, 이웃을 돌아보고, 주님이 허락하신 물질과 시간을 하늘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관대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원한 상으로 갚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겸손에 대해서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잔치라는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신앙의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 우선되고 중요한 원리가 남아있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 본문에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너무 기본적인 것이고,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살면서 기본이 되는 이 원리를 놓치고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 원리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겸손과 자비에 대해서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겸손한자,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자는 갚음을 받게 됩니다. 이 두 결론이 어떤 표현입니까? 모두 수동태, 수동적인 표현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누군가에 의해서 높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서 갚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게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의 중요한 원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훗날 그 모든 수고에 대해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갚을 수 없는 자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그날에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왜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하며, 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주인이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나의 인생을 평가하시고, 보상하십니다. 그래서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자만에 빠집니다. 마치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거짓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면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평가, 사람들이 보는 것, 사람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가치 있다 하시는 것을 나도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중심이 되셔서 그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으로 계시는 신앙, 그것이 건강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지난 주 말씀과 오늘 말씀, 사건은 구분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큰 주제는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신앙,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신앙입니다.
자! 이제 스스로를 돌아볼 때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겸손하십니까? 여러분은 계산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십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고 봉사하고 수고하고 계십니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 알고 계십니까?
혹시, 대놓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남보다 나은 나의 어떠함을 내세우며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진 않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진 않습니까? 여전히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고, 나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지만, 중요할 때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습니까? 자신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여러분이 앉아 있다면 그 자리를 주님께 내어주십시오.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며 쫓겨나기 전에 미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내 삶이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내 모든 삶의 방식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주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내 삶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 교회에서 높은 자리는 어디인가요? 앞자리 일수록 높은 자리일까요? 그래서 다들 겸손하셔서 일부로 뒤에 앉으려고 하는 건가요?
여러분, 교회는 더 나은 자리, 더 높은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서로 앉으려고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곳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내 삶의 주인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 뜻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