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수의 부르심
본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설교자 : 조정의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부르셨던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동역자들(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처음 부르셨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이에 앞서 베드로를 부르셨던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곳으로 돌아왔을 때 요한이 주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치고, 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곧 시몬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고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게바”(“바위”를 뜻하는 아람어) 헬라어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십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베드로를 부르셨던 때입니다.

그 이후로 베드로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두 번째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깁던 동역자들,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 두 형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이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제 그들이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이 여전히 그들의 배와 그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훌륭한 랍비라고 생각했지만 그분을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베드로와 같은 상태일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 성인들 중의 한 사람, 종교지도자, 윤리적 도덕적으로 대단한 사람, 평안을 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베드로처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도 주일에는 주님을 따르지만 평일에는 예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이 베드로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그 부르심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은 갈릴리 호수, 또는 게네사렛 호수입니다. 갈릴리 바다라고 알고 있는데 이곳은 민물 호수입니다. 그런데 왜 바다라고 불렀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바다를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불렀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첫째로는 그 호수가 너무 커서 그렇게 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수 둘레만 53km이고 면적은 이동면의 두 배 크기(오산시의 네 배)입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에서는 엄청난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그 곳을 방문한 사람의 글들을 보면 갈릴리 호수 근처의 호텔은 10층에서도 파도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100명 정도가 탑승하는 유람선이 뒤집히는 일이 있는 정도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 안에서 겪었던 일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당시 농업, 목축업, 어업이 주된 산업들이었는데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은 이 지역사람들에게 엄청난 삶의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에 보면 베드로는 장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선 베드로가 자기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는 자신의 집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어부로서 일하고 동업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경제적 유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고 계신데 건너편 동네로 가실 때, 이동하시는 배경이 갈릴리 바다였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겠습니다.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수에 서서”(1절)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마을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회당들을 안식일마다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아닌 때에도, 회당이 아닌 곳에서도, 산이나 바닷가에서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말씀을 선포하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셨습니다.

항상 위대한 설교자에게는 많은 청중이 따릅니다. 미국의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등의 목사님에게는 많은 이들이 따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목사님들의 설교를 다운받아 듣고 책을 읽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많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평범한 인간 설교자와 같지 않습니다. 훌륭한 설교자들도 설교를 위해 본문과 수십 시간을 씨름하며 공부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해력과 지식에 한계가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잘못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설교를 준비하셨을까요? 율법을 연구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생명의 말씀”(요일 1:1) 그 자체이셨습니다. 당연히 인간설교자들을 추종하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비좁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점점 그 군중들에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셨고 뒤에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빌려 그 위에서 군중들을 가르치려 하십니다. 마침 보니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의 배와 그 동업자였던 요한과 야고보의 배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갈릴리 바다에 뜨거운 남풍이 붑니다. 너무 뜨거워서 낮에는 작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어부들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이용해서 낚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그물이나 장비들을 수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봤고 배에 오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느 정도 제자로서 따르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선뜻 배에 오르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내내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후에 사도들에게 부탁하신 일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가르침이 많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교회에서 가르침은 인기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듭니다. 외국 교회에 가보니 10분~20분 설교를 하는 곳이 참 많았습니다. 한국 교회들 가운데도 이런 곳이 많습니다. 성령체험, 방언, 예언체험, 치유의 사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말씀은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갑니다. 봉사, 무료배식 등을 점점 강조하고 가르침은 점점 약화됩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역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고치시기도 했고 이적을 행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기적과 교제, 섬김과 봉사는 그분이 하시는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가르침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참된 가르침이 적어서 문제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배에 올라가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그것은 참 뿌듯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권위 있는 교사, 탁월한 스승으로서 예수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 마치고 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찾아가서 여러분이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선생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선생님은 목수이지 않습니까? 저는 프로어부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곳에서 고기를 잡아왔습니다. 늘 사용하던 그물로 밤새 잡았는데 하나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배에서 내려 모든 장비를 다 수선해놨는데 이 장비를 다 들고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것입니까? 배 두 대를 다 띄우고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안드레도 데리고 가서 넷이 그물을 펼치고 그 많은 작업을 하란 말입니까?’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베드로는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어차피 안 될 것이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번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베드로가 확신과 기쁨으로 순종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합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보인 반응과 대조적입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내리는 순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해집니다. 며칠 전 두 분 목사님이 낚시를 하러 가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낚시를 좋아하십니다. 강가에서 자라셨고 잠수해서 메기를 잡으실 정도입니다. 염목사님은 낚시를 별로 즐기시지 않으십니다. 두 분이 낚시를 가셨는데 염목사님이 많이 잡으셨습니다. 더 좋은 장비와 기술, 경험이 있으셨던 아버님은 별로 잡지 못하셨습니다. 낚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참새 한 마리도 그분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나는 새를 돌보시고 들풀을 입히시고 우리의 모든 머리칼을 세신 분입니다. 모든 만물들을 아시고 공급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누가는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큰 자로, 세상의 구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열두 살에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권능으로 율법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분은 아담과 그 후손들이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사단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은 질병을 이기고, 귀신을 제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동안 예수님을 훌륭한 랍비라고만 생각했다면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당시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그물의 길이가 80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이 찢어질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왜 이 일을 또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이 그물을 올렸을 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잡을 수 있을까? 이 분이 그저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 이것은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모든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앞에 엎드리고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러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참 하나님,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순간 모든 인간은 이렇게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위대한 분이라고 인정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분을 하나님으로서 만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 적이 없다면 그 분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안다면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입니다. 두 번째로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 이 ‘취하다’는 말은 고기를 사로잡는 것을 말하는데 이제는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사로잡는 일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단순히 어부에서 전도자로 직종이 변경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베드로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입었는지 대조해보기 원합니다.

베드로가 어부 일을 계속 했다면 그는 부유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처럼 이런 식으로 고기를 잡았다면 중산층 중에서도 아주 부유했을 것입니다. 큰 물고기를 잡고 좋아하는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 많은 부도 그 가치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그 가치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과장, 부장, 이사, 사장, 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의 가치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로또에 당첨되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정말 가치 있는 일을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어 소방관이 되어 불속에서 질식하여 죽어가는 아이를 살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일입니까? 정말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영원할까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생각해보십시오. 불 가운데 건져냄을 받은 아이가 죽어 영원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당하게 된다면 이 땅에서 잠시 건져냄을 받은 그 가치가 얼마나 별 일 아닌 게 되고 맙니까? 이 땅에서 소중한 가치라도 영원 앞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알고 이 땅에서의 삶을 헛되고 헛되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해 아래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그 분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치 있다고 인정하시는 삶이 영원히 가치 있는 삶입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모든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합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러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헛되고 헛된 해 아래의 삶에서 영원한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하나님께 칭찬받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잡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리는 일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일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일,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로 부르셨습니다. 영원토록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일, 영원한 기업을 이어받을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영국프로축구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퍼거슨이 박지성 선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 팀에서 같이 뛰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박지성의 축구 커리어에 평생 남을 위대한 제안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이 직접 부르고 계십니다. 무슨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영원토록 가치 있는 일, 영원토록 아름다운 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 칭찬과 존귀를 이어받을 일을 하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십니다. 누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릅니다.

저는 이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가 남긴 편지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형제, 자매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성도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것이 그들이 부름 받은 목적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일을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이들을 특별히 택하시고 제자로 삼으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침례 받으신 분들이 고백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그와 같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로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말을 통해서 그들의 영혼을 건져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입니까? 이 일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일입니다. 영원토록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내일은 월요일입니다. 여러분은 사회 각처로 흩어질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직장을 통해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배와 그물로 고기만 잡다 죽을 사람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냥 가정주부, 그냥 회사원, 그냥 교사, 그냥 일꾼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놀라야 합니다. 자신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어려움을 당하며 고생스럽고 수고스러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저 사람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살아갈까 놀라야 합니다. “일하는 게 다 그렇지, 애 키우는 게 다 그렇지, 돈 벌려고 하지 뭐”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사나 죽으나 예수님의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잊지 마십시오.

이 가운데 계신 분들 중에 예수님이 그저 훌륭한 스승이다, 위대한 종교지도자라고만 생각하신다면 베드로가 느꼈던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 앞에 나와 여러분의 죄를 자백하고 그 분이 누구신지 알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베드로와 동일한 부르심을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