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를 반대하는 자
본문 : 누가복음 11장 14~26절
설교자 : 조정의
2010-12년에 걸쳐 유명 연예인의 학력에 대한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3년 가까이 계속된 논쟁 속에 자신의 여권, 성적증명서, 학위 취득, 재학생 학적 인터뷰 등을 제시하였으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가짜로 만들어 낸 허구라고 비난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약 30만 명의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방송에서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증거가 없어서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는 ‘타블로’라는 연예인인데 그에게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을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실을 반대하는 사람, 진실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명백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많은 증거를 제시함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진실 앞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마음에 완악하고 견고한 마음, 불신이 가득 차 있는가를 알기 원합니다. 또한 그들을 사랑과 온유로 품기 위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거절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사단과 함께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온 자연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과 짐승을 창조하시고 하늘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천사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들 중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귀신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반대하는데 힘씁니다.
그들 중 한 귀신이 한 사람에게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말을 못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울까요? 저는 목이 아플 때, 말할 때마다 고통스럽고 불편했습니다. 이러한 건강상의 일시적인 문제도 어려움이 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통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통과 답답함, 괴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악한 귀신이 행하는 일들 때문에 귀신들린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위협적이고 불쾌한 존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아무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의학이 발전된 이 시대에도 말을 못하는 사람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악한 귀신이 역사하고 있었기에 그를 내어 쫓지 못한다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고, 그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귀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그것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권세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수천 귀신이 예수님의 단 한마디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귀신은 예수님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이러한 권세를 가지신 이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님이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3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놀랍게 반응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병 고침에는 놀라운 반응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놀라움이 때로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경우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으로 이르기도 하지만,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런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알세불을 통해 이뤄진 일이라고 의혹을 가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욱 큰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생각인지요.
바알세불이라는 말은 ‘바알’과 ‘세불’의 합성어입니다. 바알은 블레셋이 섬기던 신인데,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바알’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조롱의 의미로 쓸 때 이 말은 ‘파리의 왕’, ‘똥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에 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사탄, 마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바알세울을 힘입어 이런 기적을 행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가리켜 사탄 마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질 낮은 모욕입니까? 진실과 거리가 먼, 말도 안 되는 왜곡인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던 안중근이나 유관순을 두고 그들은 사실 친일파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터무니없고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들의 의혹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공의롭고 사랑과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선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온갖 불의와 이기심과 교만으로 상대방의 파멸을 추구하는 마귀와 동일한 족속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 얼마나 견고한 마음이 존재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며 불신했습니다. 더 위대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미 제자들이 먼저 가서 여러 기적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가르침과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많은 것들을 요구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사건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지 못해서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와 같습니다. 애굽에 수많은 재앙이 하늘로부터 임하였지만 바로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견고하고 딱딱한 바위 같은 마음,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아브라함에게 죽은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진실을 전하게 해달라고 구했을 때, 주님은 “모세와 선지자(구약성경)를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부활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눅 16:31). 우리 마음에 견고한 불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과 말씀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명백한 증거까지도 부인하고 왜곡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십시오. 이제 막 한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주변에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처참한 모습입니다. 이런 자에게 예수님은 긍휼을 베풀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대적으로 많은 말로 마음이 완악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너희에게 은혜와 자비는 필요치 않아’ 라고 하며 그들에게 불이 내려오는 심판으로 멸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십니다. 꾸짖고 깨닫게 하십니다. 말 못하던 사람의 혀를 굳게 만든 귀신을 쫓아내신 것처럼, 견고하게 굳은 그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 친히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귀신이 귀신을 내쫓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전을 겪는 나라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싸우면서 나라가 발전할 수 없고, 부부가 매일 싸우면서 가정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또한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19)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퇴마사들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서를 보면 그들은 약초를 만들고 귀신이 되돌아오지 못하게 철저히 쫓아내는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 시대에도 이와 같은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유대인의 고대사 8:5:2). 그럼 너희는 무슨 힘으로 귀신을 내어 쫓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한다면 나는 왜 사탄의 힘을 빌어서 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통치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곳에 펼쳐지고 있다는 말은, 내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서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다, 나에게 그러한 통치권과 주권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그리스도)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온전히 승리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전쟁 비유는 그리스도의 권세가 사탄을 압도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한 악의 영이 어떻게 나가게 되었는가, 더 강한 존재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고 통제하여 자신의 숙주로 삼으려 해도 더 강한 존재 하나님께서 막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누가 강한 사탄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까? 누가 사탄을 이기고 그가 가진 소유를 빼앗고 재물을 나눌 수 있습니까?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내가 그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겠는가? 나를 받아들이겠는가? 나를 믿겠는가? “누구든지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에 반대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중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이거나 반대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은 참 좋은 분이고 성인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불신의 마음이 있습니다. 분명한 증거들에도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견고한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의 비유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갔을 때 그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물 없는 곳은 생명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못하게 된 귀신은 만족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있던 곳에 와보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귀신이 있었을 때의 여러 가지 폐해에서 회복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이제 내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다른 귀신들도 데리고 가야겠다고 말합니다. 귀신들렸던 자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비유에서 주님은 강한 귀신이 있었지만 더 강한 내가 왔을 때 온전히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 한 귀신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을 다시 점령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악한 귀신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더 강한 누군가가 그 집을 지키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더 강한 누군가가 없기에 귀신들은 이 사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여러 종교 활동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더욱 깨끗하게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완악한 마음, 불신의 마음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종교적인 노력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을 때,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실 때, 견고하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에게는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밤의 별들이, 지음받은 생명체와 인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부활하신 분에 대한 기록된 증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우리의 신이다,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과 진리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견고한 마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왜곡하고 불신했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것만이 악한 세상 속에서 악한 여러분의 마음에서 여러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처음 구원받았을 때 이 놀라운 사실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는 악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습관적인 죄들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나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합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생각하며 지혜와 의지를 총동원합니다. 그러다 낙심하고 실패하며 좌절 속에 살아갑니다. 더 강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싸우는 죄를 능히 이길 수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힘과 지혜로 싸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그분을 믿고 바라보는 것으로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우리 안에 계셔서 그의 능력으로 모든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온전한 그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