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를 따르면서 거짓을 믿어도 될까?②
본문 : 요한일서 2장 18절~29절
설교자 : 조 정 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을 따르면서 거짓을 믿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거짓을 믿고 따르다가 결국 진리의 하나님과 그 백성을 떠난 자들(적그리스도)을 책망했다. 남은 성도들이 진리 안에 거하여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주가 강림하실 때 담대하게 주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사탄은 수많은 거짓으로 미혹한다(요 8:44; 요일 2:26). 어떻게 거짓을 분별할 수 있을까? 사도 요한이 말한 두 가지 진리의 척도를 가지고 분별하자: 말씀과 성령. 첫째, 거짓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형태로든 왜곡하고 반대한다(요일 2:24):. 둘째, 거짓은 성령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기름 부음” 곧 내적 증언을 거부한다. 어떤 형태로든 성령 하나님을 모욕한다(요일 2:27).
예수님을 따르는 자, 그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는 항상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해 씨름해야 한다. 매 순간이 진리를 고수하기 위한 영적 전쟁이다. 사도 바울은 거짓으로 미혹하는 마귀의 계략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했다(엡 6:11). 그중 진리는 우리를 온전히 붙들어 매줄 허리띠다. 진리를 알고 순종함으로 진리 안에 부지런히 거해야만 영적 전쟁에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거짓과 제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다.
1. 만물의 기원과 이치
마귀는 성경의 첫 페이지에 담긴 진리부터 거짓으로 훼방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분명히 선포하지만(창 1:1), 마귀는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이 진화론을 과학, 창조론을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둘 다 만물의 기원과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관찰 대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에 관한 설명이 다른 것이다. 창조론은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창조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설명하고, 진화론은 우연히 목적 없이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진화해왔다고 설명한다. 창조론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진화론은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런데 오늘날 유신 진화론이라는 것이 생겼다. 성경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진화론을 만물의 기원과 이치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문제는 없을까?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부교수는 기독교 내 가장 유명한 유신 진화론자 중 하나다. 그는 2014년 기독교 변증 콘퍼런스에서 “지구의 나이가 수백억 년이든 1만 년이든, 진화가 일어나든 말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백성에겐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창세기 1, 2장은 신의 창조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창세기 1, 2장의 목적을 재정의하여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진리를 아주 교묘하게 배척한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이 과학계의 주요 패러다임이 되면서 창세기 1장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수십억 년의 시대로 해석하거나(날 이론),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엄청난 간격을 끼워 넣어 최대한 진화론에 맞춰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려 했다(간격 이론). 어떤 형태로든 진화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성경 본문을 새롭게 해석, 역사적 사실로서 부정, 기록한 저자의 지식을 의심, 다른 문화권 신화에서 차용한 허구적인 기록처럼 여겨야 한다. 결국 성경 본문이 말하는 진리를 왜곡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또한 진화론은 성령의 증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출 20:11). 하나님께서 직접 이 말씀을 모세에게 하셨고 성령께서 감동으로 이것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 안에서 이것이 진리라고 확증하고 계신다. 대중의 인기를 얻고 학계에서 정설로 여겨지는 최신 이론과 가설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당신이 그것을 믿고 수용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이 내적 증언을 부인하거나 무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했다고 선포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요 1:3). 성령께서 우리에게 위와 같은 진리를 감동으로 쓰신 성경으로 증언하신다. 어떻게 우리가 성경을 왜곡하고 성령의 증언을 무시하는 거짓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2. 성별의 기원과 이치
마귀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라는 거짓말에 이어 하나님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질서를 부정하라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여섯 째날에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7). 오늘날 남자, 여자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복잡해졌다(바이젠더, 트라이젠더, 에이젠더…64가지). 하지만 첫째, 성별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 여자 오직 두 가지 성별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둘째, 성별 구분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생각하면 지극히 단순하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8). 남자, 여자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조된 생물학적 특징으로 분명히 구분된다(XY남성, XX여성). 그 외 다른 성별 구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남, 여여로는 목적 달성이 불가능.
하지만 오늘날 퀴어축제에 나온 기독교인들 심지어 신학교 학생들 중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나님 창조하신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격을 존중하고 이웃으로서 사랑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들이 선택한 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지지하신다고 말하는 것의 문제다. 왜냐하면 성경은 명백히 그것을 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레 18:22; 20:13; 롬 1:26-27; 고전 6:9). 어떻게 이 거짓을 믿을 수 있을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는 시대 문화와 변화에 따라 성경 해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구약의 율법을 비롯하여 로마서 1장은 무분별한 동성애를 비판하는 내용이지 상호합의로 동성연애를 하는 커플에 대한 말씀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경미 교수는 로마서에서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바울이 살아 있을 때, 사랑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인간으로서의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저자 바울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은 그 한계를 넘어 성경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면서 성경이 반대하는 성 정체성을 믿고 지지하려면 결국 기록된 성경,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훼손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성령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 내용을 바꿔 우리에게 적용하라고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시지 임의로 변경하여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최근 고 변희수 씨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괴로워하며 싸우는 이들을 향한 동정심과 안타까움이 생겼다.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반하여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죄다. 모든 죄인에겐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분명한 건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가 정욕대로 살도록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구원하신다는 것이다(갈 5:24).
3. 가정과 교회의 질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마귀는 가장 먼저 가정(하나님 만드신 공동체)을 거짓말로 무너뜨렸다. 오늘날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거짓말은 계속되고 있으며, 뚜렷이 나타나는 거짓으로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페미니즘, 징계. 둘 다 가정과 교회의 질서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기독교 내에서 많은 지지자를 만들고 있는 여성 인권운동이고, 징계는 민법에 있던 부모징계권이 삭제되면서 곧 그리스도인 부모와 자녀에게 법적 효력을 미칠 문제가 될 것이다. 교회 내 징계를 부정하거나 실제로 시행하지 않는 곳도 굉장히 많다.
유교의 뿌리가 깊은 대한민국은 잘못된 가부장제의 폐해를 많이 겪었다. 어떤 면에서 억압되고 무시당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운동은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말씀에 따라(갈 3:28) 복음의 은혜를 동등하게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는 운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동등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녀의 역할의 차이를 부정하고 결국 질서를 무너뜨린다.
성경은 가정 안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다고 하셨고(엡 5:23), 교회 안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고 말한다(딤전 2:12). 이는 권위주의를 지지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리스도처럼 희생적이고 본이 되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가정과 교회를 인도할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이고, 여자는 주께 하듯 순종하며 돕는 역할을 가정과 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주의를 배척하면서 올바른 권위까지 부정하려 한다. 웨인 그루뎀이 쓴 <복음주의 페미니즘>에 따르면 많은 기독교학자들이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고 지지하면서 성경의 분명한 말씀을 어떻게든 왜곡하고 거부하려 한다(15가지 방법). 가령 풀러신학교 폴 주엣 교수는 “남자와 여자는 하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바울이 얻은 통찰이고 여성의 복종을 가르친 것은 유대적 배경의 관점에서 얻은 잘못된 통찰이라고 구분했다. CBS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윤리 의식을 가르치는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바울의 기록은 현존하던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전통에 사로잡힌 발언이라고 치부했다. 바울이 꼰대였다는 말이다.
결국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유통기한 지난 것으로 판단하고 성경을 오늘날 문화에 맞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원래 의미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살도록 요구하신다면 뭔가 대단히 시대착오적 요구를 하신다고 그분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교회의 징계 혹은 가정의 징계를 거부하려는 오늘날 풍조 역시 보편화 되었다. 하지만 성경은 부모가 사랑으로 자녀를 징계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한다(잠 23:13-14; 29:15).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라고 말했다(히 12:6). 우리와 사귐이 있는 아버지 하나님이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행하시는 대로 또 말씀하신 대로 가정과 교회에서 사랑으로 징계를 실천해야 한다.
그러므로 징계를 금지하는 그 어떤 사회적, 심리학적, 정서적, 교육적 설명도 성경의 이 가르침을 훼손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수용할 수 없다. 가벼운 권고로 여기거나 당시 문화에 제한된 것으로 보거나 성경 저자의 실수로 여기는 등 회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참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서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증언하는 진리를 거부할 수 없다.
4. 결론
우리는 믿음 안에 있는가, 진리 가운데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한다(고후 13:5). 1) 하나님의 말씀과 2) 성령의 증언이 참 진리를 분별하고 모든 거짓을 몰아내는 은혜의 방편이 된다. 거짓에 미혹되는 건 두 가지 방편을 어떤 방식으로든 무시할 때 일어난다. 진리 안에 거하려면 최종 권위를 말씀과 성령께 드려야 한다.
한 조사 기관에서 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88%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님을 떠난다고 한다. 사도 요한의 말처럼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결국 거짓에 미혹되어 진리 밖으로 떠난 셈이다.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인 그리스도인도 언제든지 울부짖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에게 속아 거짓을 믿고 진리 공동체에서 뽑힐 수 있다.
예수님은 이리 가운데로 양을 보냄 같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시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를 원하신다(마 10:16). 우리는 수많은 거짓을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묻고 최종 권위를 성경에 두어 그에 반하는 모든 거짓을 쳐낼 수 있어야 한다. 17세기 청교도 설교가 윌리엄 거널은 “종교와 무신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종교는 심지 않으면 자라지 않으며, 심어도 물을 주지 않으면 죽어 버린다. 하지만 무신론, 무종교, 불경스러움은 노력 없이 잘 자라는 잡초이며, 뽑아내지 않으면 죽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매일 진리를 심고 거짓 잡초를 뽑아내라.
자녀가 어릴 때부터 진리 가운데 거하도록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들은 학교와 학원, 친구들과 교사,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거짓을 접한다.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뱀 같이 지혜롭게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을 잘 아는 자가 되게 하고 그 말씀을 삶의 여러 부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옳다고 해도 그 길을 옳은 길이 아니다.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 설명해도 거짓일 수 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얘기해도 그 얘기에 삶을 걸지 말라. 우리에게 있는 성경과 그 성경을 증언하는 성령 하나님만 의지하라. 바로 그런 삶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그분이 오시는 날까지 힘써야 할 영적 경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