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
본문 : 빌립보서 2장 17-30절
설교자 : 염창훈
빌 2:17-30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 사도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할 것에 대해 말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하며 희생적인 삶을 살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특별히 15절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 가운데 살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인 17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17절).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섬기는 것을,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이 매일 제사를 드렸는데 아침, 저녁으로 양 한 마리를 전제로 드렸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양을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고운 가루를 2리터 가량 그 위에 얹고 다시 그 위에 포도주를 1리터 가량 붓습니다(출 29:38-41).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구약의 제사를 말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의 섬김, 믿음의 제물이 어린양이라면 자신은 포도주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쏟아 붓겠다고 말하고 그것으로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고후12:15)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재물을 내어주고 자신을 내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8,9).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사도 바울은 각지에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교회 성도들을 사랑해서 자신의 삶을 드리기를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마음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사도 바울은 모든 행함에 있어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고 자신의 안위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19-22절). 디모데는 사도 바울보다 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를 가리켜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을 구하는데 디모데는 주님의 일을 구하고 사도 바울과 뜻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마음이 무엇입니까? 영혼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희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소원, 삶의 목적은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빌 1:20). 그런데 젊은 디모데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를 가리켜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2절)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헌신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순종하고 그를 아버지처럼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부모에게 공경하라고 명령하셨고 그럴 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잠 23:22). 우리는 디모데에게 있었던 공경의 마음, 순종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었으나 자신을 낮춰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디모데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품었던 사람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말씀에는 에바브로디도가 나옵니다. 그는 말씀을 잘 증거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25절). 그는 빌립보에서 온 형제로서 사도 바울이 “나의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충성되고 주님을 섬기는 자였고, 사도 바울의 필요를 공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병이 들었고 그것을 주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27-30절). 그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바울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아끼지 않은 것은 마치 주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훗날 녹슬어서 못 쓰는 쇠가 되어 삶을 마치고 싶지 않다. 주님을 위해 힘써 일하다가 닮아 없어지고 싶다.”
사도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에바브로디도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가 주님을 본받았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를,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과 성도들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모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본받아서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주님께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자신을 일치시켰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주님을 닮는 것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주님을 믿게 하신 목적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남은 삶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처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주님을 따라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버트 채프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처럼 사는 사람은 적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삶의 목표를 주님처럼 사는 것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따르고 주님처럼 살았던 앞선 사람들을 본받아, 남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