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여호수아에게 순종을 배우다
본문 : 여호수아 5장 13-6장 21절
설교자 : 이병권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순종이라는 말은 요즘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종’ 보다는 ‘반항’을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종적이라고 하면 힘이 없어 보이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반항적이라고 하면 강해보이고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나쁜 남자 신드롬이란게 있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형을 나쁜 남자, 혹은 나쁜 여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면, 실체를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순종이라는 말이 오늘날 사회에서 인기 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에 마땅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신뢰하면 순종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순종을 1에서 10까지로 평가를 한다면, 그래서 1이 불순종이고 10이 순종이라면,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기쁨을 맛보고 계십니까?

저는 오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놀라운 승리를 경험한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순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시 말해 순종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결실하는지를 배우기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약속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첫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까 한 사람이 칼을 빼고는 여호수아 앞에 서있습니다. 굉장히 압도적인 모습이겠죠? 군인의 본능으로 여호수아는 묻습니다. “너는 누구편이냐? 우리 편이냐 아니면 적군이냐?” 그럴 때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자 여호수아는 바로 엎드려 절을 하고 그에게 말합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칼을 뺀 이 사람은 천사도 아니고 하나님,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현현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15절에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했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로, 경의를 표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대로 합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여호수아가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나서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물었다는 겁니다. 여호수아는 200만이 넘는 사람들을 다스리며 인도하는 지도자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종으로 낮추며 그 말씀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에 대한 첫 번째 교훈을 얻습니다. 순종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대로 순종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거나, 설교 말씀을 듣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이러한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주님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이것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메시지에 노출되어 있는 겁니다. 온갖 종류의 음성들이 우리의 귀를 파고듭니다. TV 광고, 드라마, 인터넷, 사람들의 생각이나 평가들, 이러한 여러 다른 메시지들을 듣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고 순종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계속 듣는 말들이 하나님이 없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듣는 말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높이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이런 내용의 기사를 봤습니다. ‘새해가 되면 한 해의 길흉을 점치려는 이들로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어서 그릇된 곳에 가서, 그릇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릇된 길로 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겁니다.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점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열심과 진지함으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안타까운 사실은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 월간지의 통계에 의하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약30%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통계가 사실임을 보여주듯이 점집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교인 환영, 직분자 우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이 말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며, 그 말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는 그런 말들이 거짓임을 알기에 단호하게 그런 말들을 무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때마다 여호수아처럼 정말 겸손히 땅에 엎드려서 “주님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라고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말씀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간절함이 없다면, 성경을 읽어도 건성으로 읽게 될 것이고, 설교를 들어도 별 생각 없이 멍하니 딴 생각하며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그 반대되는 소리에 자꾸만 귀를 열고, 자꾸만 그런 것에 귀를 쫑긋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말씀을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계십니까? 그러한 태도가 여러분의 신앙이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서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말씀에 대해 순종하려는 마음도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순종의 열매도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이 순종의 첫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는 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듣다 보면 그것이 내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주님, 제가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은 시간이라도 투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에 10분 이상 읽는다면, 계속해서 진지하게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십시오. 매일 그 음성을 구하며, 결혼이나 자녀 양육이나 부부 관계나, 직장 생활이나, 교회 생활이나, 여러 가지 삶의 영역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그래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순종의 시작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발에서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호수아라면 어떤 명령을 기대하시겠습니까? 제가 여호수아였다면 아마도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만한 정말 탁월하고 위대한 전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여리고의 지형적인 특징을 고려해서, 군대를 이런 식으로 배치를 하고, 일부의 군대는 복병으로 매복시켜두고, 또 특별한 무기를 만들어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정말 기상천외한 전법을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아주 이상한 명령을 그에게 내리십니다. 3절에서 5절까지 기록된 그 명령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여러분 사실 이것은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장난으로 전쟁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전쟁을 앞두고 있는 백성들이 아무런 무장이 안 된 제사장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성 주위를 그냥 걷다가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다함께 큰 소리를 지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듣고 이 무슨 전략인가? 의문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만약 여호수아가 군인의 상식으로 자기의 경험으로 이 명령을 판단했다면, 이것은 너무도 받아들이기 힘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성을 돌고 있는데 적이 갑자기 기습 공격이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성 주위를 걷고 있는데, 위에서 돌이라도 던지면 어떻게 합니까? 좋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결국 칠일 동안 다 돌았습니다. 그래서 전부다 큰 소리를 외쳤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어떡합니까? 백성들이 모두 “와!” 하고 소리쳤는데, 여리고 사람들이 그냥 “왜!”이러면요. 여호수아는 모든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상식만으로, 자기의 경험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2절에서 말씀하는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말이 안 되는 이 명령을 백성들과 함께 행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보다 강함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에 대한 두 번째 교훈을 얻습니다. 순종은 상식의 잣대를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진행된다는 겁니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상식, 나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해야지 순종의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상식이나 느낌, 관습만으로 판단한다면, 그것만으로 우리가 행동의 기준을 정하고 따른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의 상식,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과 잘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산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가파른 절벽으로 미끄러졌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했는데 간신히 그곳에 튀어나온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있었지만, 손에 힘이 빠지고 너무도 절박해서 소리칩니다.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그는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도와주겠다.” 깜짝 놀란 그 사람은 묻습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구해 줄 테니 먼저 나무를 잡고 있는 손부터 놓아라.“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소리칩니다.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우리도 이 사람과 같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그냥 걸러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이나 말씀을 내 기준으로 평가해서 납득이 되는 것, 이해가 되는 것만 순종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2만이 넘는 군중을 먹여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자 자기 앞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기보다 열심히 밥값을 계산했던 빌립처럼, 우리는 계산하고 따져보고, 우리 머리로 판단하기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빤히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기대하지는 않습니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만 시작하고 그 외의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을 우선하지는 않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반드시 무모해야 하고, 우리는 항상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면, 내 상식과는 맞지 않더라도, 내 경험과 대치되더라도, 내 느낌은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그런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분의 판단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늘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결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함에 있어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함에 있어서, 직장에서 맡은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나의 물질과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서, 내 생각이나 내 상식이나 세상의 기준에 따라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변하지 않는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나의 생각이나 느낌, 세상의 기준을 따라 갈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의 걸음을 이어가십시오. 순종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다시 본문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받은 명령은 시간적으로 7일이 걸리는 일입니다. 결과가 당장 드러나는 일도 아니고, 인내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 주위를 도는데, 한 마디도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마지막까지 침묵을 지키며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7일까지 계속 돌아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에 대한 세 번째 교훈을 얻습니다. 순종은 온전히 실천함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곧 실천입니다.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순종이고 실천함으로 순종했을 때, 순종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행동은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대답을 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한다 하더라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순종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마음이 감동되고 도전되어서 그 말씀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것,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해서 실제로 실천하기 전까지는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고, 때에 따라 필요한 약을 먹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효과가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반복해서 계속 먹으면 그 효과가 처음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약효가 떨어지는 겁니다. 그것을 내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성은 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 배우고, 공부하는 것에도 내성이 있다고 합니다. 배움을 통해 머리로는 아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않음으로 실제적인 학습효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지적인 내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적인 내성이 무서운 이유는 본인은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적인 내성은 실천해야만 없어집니다. 실천해야지 내성이 사라지는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지적인 내성,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인 내성이 나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를 해서 알기는 아는데, 그런데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 잘 알고 있지, 그거 내가 잘 아는 말씀이야!” “에이~ 내가 교회를 다닌 지가 몇 년인데 다 알지!“ “또 그 말씀이야! 내가 다 아는 거네!“ 이렇게 말하며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내 삶에서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알기는 아는데 실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꾸 들어도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별로 인겁니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고 머리만 커져버린 비정상적인 신앙이 되는 겁니다.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경을 안다고 해도 아무리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삶으로 실천하기까지는 순종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의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감사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라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의 삶에서 죄를 멀리하고 말씀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라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의 삶에 왕이 되셔서 통치하고 나는 그 분에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이 순종입니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들은 말씀을 온전히 실천함으로 순종의 결실을 맺고 계십니까? 불편하더라도, 쉽지 않더라도,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우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명령을 지키겠습니까? 그냥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려고 하십니까? 내가 편하게 생각해하는 것, 내가 좋아 하는 것, 나에게 쉬운 것만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온전히 실천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는 정말 불편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한다면, 그러면 용서하기 위해 그를 만나겠습니까? 만약에 결혼이 늦어진다 하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배우자를 찾기 위해 인내하며 기도하시겠습니까?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공부가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말씀으로 양육하고 항상 믿음을 우선하며 첫째 자리에 두시겠습니까?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관대하게 나누는 삶의 실천을 계속 하시겠습니까?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직하게 행하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과는 다른, 쉽지 않은 길을, 더 어려운 길을 계속 걸어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종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예배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순종이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리는 순종의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의미 있고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순종이 바로 그에 대한 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가운데 들은 바 말씀을 온전히 실천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의 삶에 여리고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