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본문 : 요한복음 10장 11~29절
설교자 : 염  창  훈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목축을 하던 민족이 아니기에 양을 키우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의 중동지방 사람들은 대대로 목축을 해왔기에 이 ‘양과 목자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15, 17, 31),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사 40:11). 하나님을, 양을 보살피고 기르는 목자로, 그 백성을 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겔 34:23).

 

본문 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처, 마호메트, 공자 등 수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없습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고, 인도자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10)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8). 예수님은 참으로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었는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당부하기를, 목사님이 세례 문답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잊지 말고 반드시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대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세례를 받는 당일에 목사님이 예수님이 왜 죽으셨느냐고 물으니 시어머니는 “우리 며느리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자신의 죄는 빼놓고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분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12). 삯꾼은 돈을 받고 양을 기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위험한 일이 있으면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양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가리켜 삯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목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권에 9백 만원인 책을 파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강남에 큰 아파트가 두 채나 있고 값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의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아닌 자신을 따르게 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방송, 텔레비전을 통해 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보며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거짓 교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4). 주님께서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같이, 진실로 주님을 따르는 자를 주님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3,4). 주님께서는 주님의 양들을 잘 아십니다. 엄마들은 자녀들을 잘 압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누군지 몰라도 엄마들은 잘 알아차립니다. 어릴 때 있었던 일들을 엄마들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여러 번 “잘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환란과 궁핍을, 유대인들이 핍박하는 것을, 어디에 사는 것을,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을 다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주님께서는 진실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십니다. 아픈 것도 아시고, 때론 정신없는 것도 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 아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5).

주님만 우리를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6,27).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 말에 순종하고 따라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들을 우리에 가둬서 기르지만, 중동지역은 사막이라 먹을 것이 없어서 양들이 전적으로 목자를 의지합니다. 밤에는 한 우리에 모아놓고 잠을 재우는데 아침에 풀을 먹이러 갈 때 여러 양들이 모여 있는 중에서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이 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만의 특이한 소리를 내므로 자신의 양들을 부릅니다. 양들은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진실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을 만난 수가성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던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그 여인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하셨고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그 말을 듣고 물어봅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요 4:25,26). 구약부터 예언된 그리스도,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할 구원자에 대해 물었을 때 주님은 “내가 그 메시야이다”라고 하셨고 그 때 여자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 9:35-38).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주님의 양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따라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고 따라가는 것,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순종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 1:5). 믿음과 순종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향해 하고 있다면 주님의 양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 기도도 하고 말씀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할 때마다 그분이 어딘가를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벽에다 교황 사진을 걸어두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서랍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 보여주는데 예전에 침례를 받았던 사진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침례 받은 사진을 가지고 계십니까? 침례를 열 번 받았어도 지금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는데 한 신부가 와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신부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신부가 손을 보여주니 “당신은 내 죄를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에게는 못자국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 오늘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만 구원하기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8,29). 진실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영생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천국 가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을 때 지금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주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고 또한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구원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확신을 줍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0-34).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려고 하면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의 구원은 주님이 보장하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7). 주님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한 목자가 되신다고 합니다. 이분은 얼마나 좋으신 목자이십니까. 그분은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양들을 다 아십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인도하시고 어떤 처지에 있는지도 다 아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양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양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해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그 믿음과 확신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