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선택, 하나님께로 돌이키다
본문 : 룻기 1:1-6
설교자 : 이병권
룻 1:1-6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새해 첫 수요집회입니다. 어찌 보면 지난주와 별로 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으면 뭔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작년보다 나은 한 해를 기대합니다. 그러한 기대의 마음으로, 저는 오늘부터 시작해서 수요일에 룻기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룻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일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기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어떤 기적보다 더 놀랍게 나타나는 성경입니다. 매우 감동적이고 극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한 걸음 더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합니다. 어떤 선택은 아주 사소하지만, 어떤 선택은 아주 중대합니다. 그래서 그 선택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좋은 선택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만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때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나의 신앙을 생각하기보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선택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로 선택한다든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선택을 한다든지, 하나님을 불신하기로 선택합니다. 우리 삶의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은 그런 선택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더 길게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오셨습니까? 인생의 수많은 선택 가운데, 여러분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또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하십니까?
우리가 보는 룻기는 잘못된 선택을 했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선택, 하나님께로 돌이키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룻기의 역사적 배경을 말해줍니다. 룻기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에 본격적으로 왕정체제가 시작되기 전, 그 중간 과도기적인 사사시대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룻기 1장1절 바로 전에 있는 사사기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2:25). 그 때에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그냥 행동했습니다. 왕이 없었다는 말은 단순히 인간 왕이 없었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통치권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 때에 그 땅에 흉년이 찾아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든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자기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에, 자기 기준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에, 흉년을 겪게 된 것입니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고 얼마나 악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 대상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 땅에서 재앙과 환난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그 일이 그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한 가정이 중대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이 가정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는데 흉년으로 인해서 베들레헴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베들레헴은 문자적으로 빵 집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베이커리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빵이 없어졌습니다. 빵집에 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배고픔을 피해 빵을 찾아 이주하기로 선택합니다.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가정이 가려는 모압은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모압의 백성들은 종종 ‘그모스의 백성’ 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아주 흉악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겠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그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과 분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풍요로워도, 아무리 조건이 좋다하더라도,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빵을 찾아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빵을 찾아, 돈을 찾아, 풍요를 찾아 떠나는 겁니다. 그들은 인생의 고통을 만나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도망하기로 선택합니다. 거기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구하기보다는 그냥 도망가는 겁니다. 어쨌든 그들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해서 살았습니다. 1절에 ‘거류했다’는 말은 잠시 머물려 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라고 번역합니다. 흉년을 좀 피해보려고 잠시 머물려고 했는데, 10년이 더 지나버린 겁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잠시 하나님을 좀 뒤로 하고, 잠시 교회 일을 좀 내려놓고, 잠깐 세상일에 집중하려 했는데, 잠깐 내가 원하는 것 좀 하려고 했는데, 잠깐 떠나 있으려고 했는데, 모든 게 귀찮아서 잠깐 동안 관심 끄고 살려고 했는데, 다른 간섭에서 벗어나 잠깐 동안 내 뜻대로 하고자했는데, 그 잠깐이 긴 세월이 되는 겁니다.
2절에서는 모압으로 이주하는 이 가족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가장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그의 아내는 나오미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특별히 엘리멜렉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이름의 엘리멜렉은 흉년이라는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자, 왕 되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도 않고, 그분을 신뢰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자신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3절에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온 이 가정에게 비극의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모압 행을 선택한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사고인지 질병인지 모릅니다. 모압에 와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바로 죽었는지 좀 지나서 죽었는지, 그 정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오미는 졸지에 과부로 남게 되었다는 겁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 타향에서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을 보면 두 아들은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비록 모압 사람과의 결혼이 모세 율법에 정식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압과 분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 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런데 엘리멜렉의 두 아들이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4절 하반절은 두 모압 여인의 이름을 밝히는데 하나는 룻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바입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슬픔은 남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마저도 죽은 것입니다. 나오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식이 죽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그런데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다 죽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이게,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나오미 입장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냥 꾸준히 갑니다.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겠지만, 삶의 힘듦이 있었겠지만, 불평이 생기고, 원망이 있었겠지만, 쓴 뿌리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냥 갑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마음속에 씁쓸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시작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채 남겨진 여인들! 그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선택에 대한 교훈을 두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선택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을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룹과 개인이 나옵니다. 그룹은 이스라엘 백성이고, 개인은 엘리멜렉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불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 선택의 결과로 흉년이라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엘리멜렉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보다는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이라는 우상숭배의 땅으로 갑니다. 경로를 이탈한 엘리멜렉에게도 그에 따른 결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선택을 중요하게 보시고, 그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으로 심은 것을 결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했다면, 그것을 심었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의도적인 불순종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결코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까지 없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공부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충복의 아내를 범하고 그 충복을 죽이는 범죄를 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 밧세바가 낳은 아이는 죽었고, 다윗은 그 범죄로 인해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리더십의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할 때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고통과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들어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생각이 짧아지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성급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조심해서 상황보다 세상의 조언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환경이나 그냥 눈에 보이는 피난처로 도망가기보다 하나님께 피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냥 빵을 찾아서, 빵을 먹기 위해, 빵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참된 양식이 되시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여러분, 부부관계나 자녀양육이나 직장생활이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선택하십시오. 특별히 고통과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다가왔을 때 도망가지 마십시오. 고통과 맞서는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선택에 대한 첫째 교훈이 무엇이었습니까? 선택에는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과 그 결과까지도 선을 이루는데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잘못 선택하지만,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실패를 경험하지만, 하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는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엘리멜렉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 가문은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나오미는 한 여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상황들을 사용하셔서 나오미와 룻으로 하여금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엘리멜렉의 가문이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역할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엘리멜렉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하나님이 인류 구원이라는 큰 선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단순히 좋은 일만이 아니라, 나쁜 일, 정말 불쾌한 일, 고통스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 정말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지금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혹은, 내 잘못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에 빠져있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자포자기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잘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고통을 제대로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소망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배웠습니다. 비록 그분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결과를 당하게 하시지만, 그래서 다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사용하셔서 우리 삶의 선을 이루심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오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신 곳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빵이 있는 그곳으로, 생명의 빵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예배의 자리로, 은혜의 자리로, 회복의 자리로, 하나님의 자리로, 십자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버릴 것이 있으면 버리고, 우리의 악행과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고, 이제는 영적 방황을 끝내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생명의 빵이 있는 그 자리로 돌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