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본문: 창세기 28장 10~22절
설교자: 이병권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야곱이 이삭의 허락과 축복을 받아서 집을 떠나는 장면까지 살펴봤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집을 떠난 야곱이 외삼촌의 집으로 가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본문을 두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10절에서 15절까지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머지 16절에서 22절까지는 그에 대한 ‘야곱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은 야곱이 그곳에 기둥을 세우고 서원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렇게 두 부분으로 살펴보면서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을 만난 야곱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만남이 야곱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10)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가 살던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제 부모로부터 떠났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났다는 것은 이제부터 그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세기 저자는 야곱의 목적지를 “하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지시할 때는 “밧단아람”이라고 말했고, 28장 2절부터 4번에 걸쳐서 모두 밧단아람이라고 기록했습니다(28:2,5,6,7). 그런데 저자는 10절에서 밧단아람을 하란으로 바꾸어서 기록합니다. 하란은 도시의 이름이고, 밧단아람의 아람의 평지라는 뜻으로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둘은 같은 곳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란이라고 기록한 것은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순종을 생각하도록 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옛적에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처럼,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말에 순종하여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나 브엘세바로 왔었는데, 야곱은 반대로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와 지금 야곱의 입장은 많이 다릅니다. 야곱은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을 피해서 먼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간적이 없는 곳을 혼자서 외롭게 가고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900킬로미터 이상 가야하는 먼 길입니다. 대략 한 달은 더 걸리는 여행길입니다.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이제 곧 설 명절입니다. 설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길을 떠날 때 어떤 마음일까요? 비록 가는 길이 멀고 또 고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게 될 가족들을 생각하고 함께 할 시간을 생각하면 그런 수고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어떠합니까? 야곱도 어찌 보면 고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있었던 곳, 자신의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외삼촌의 집으로 그를 만나러 갑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야곱의 뒤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가 있고, 야곱의 앞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가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만약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지금 자신이 한 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장자의 명분을 받아내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것들이 지금 야곱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야곱에게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축복이 정말 내 것이 되었을까? 내가 정말 장자가 된 것인가? 내가 진정한 상속자라면, 내가 왜 지금 이렇게 떠나야 하는 거지?‘
지금 야곱의 처지를 한 번 보십시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11) 야곱은 하란으로 가는 중에 밤을 맞게 되었고 밖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온 세상이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어디에 묵을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돌 하나를 베개로 삼고 잠을 청합니다.
밤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그 어떤 밤보다 더 캄캄하지 않았을까요? 뭔가 부스럭 소리가 들리면, 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되지 않았을까요? 그 밤에 야곱이 느꼈을 고독과 두려움을 우리는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야곱이 잠들어서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세 가지를 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12-13a) 성경은 야곱이 본 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아있었습니다. 두 번째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로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또 본즉’, 하나님이 그 위에 서 계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본즉”이라고 말하며, 사닥다리, 하나님의 사자들, 그리고 하나님을 보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닥다리’라는 단어는 성경에 딱 한 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파악하는데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성경에는 사닥다리라고 번역을 해서 야곱이 본 것을 사다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사다리’ 보다는 ‘계단’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자가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하늘의 계단’인 것입니다.
하늘의 계단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도록 그 계단에서 하나님의 사자,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꿈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그 위에 계셨습니다. 계단 위에 서 계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13b)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맺은 약속을 야곱에게까지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며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대한 약속과 자손에 대한 약속, 그리고 모든 족속이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땅과 자손들과 자손을 통한 복, 이 세 가지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계속 반복되면서 그 중요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제 야곱에게 전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야곱에게 이 약속이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무서움에 떨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고 있는 그에게, 혼자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이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지금 야곱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약속의 땅에서 도망한 상태입니다. 자녀를 생각하기는커녕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야곱이 누워 있는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자손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비록 야곱은 축복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썼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계획 가운데 야곱을 품으셨습니다. 비록 야곱은 약속의 땅에서 도망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5)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고, 두려워하고 있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 불안해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넌 혼자가 아니란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고 있단다.’ 야곱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뚫고 승리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나를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나를 통해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반드시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야곱의 부모는 야곱에게 약속의 땅을 떠나라고 권면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에게 안전하게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이루실 때까지 결코 야곱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약속의 성취라는 목표를 위해 언제나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때가 이를 때까지 주님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이루실 때까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16절부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야곱의 반응이 기록됩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랍니다. 야곱은 이런 평범한 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된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생기는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17)
야곱이 느끼는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람이 가지는 당연한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은 그분을 향한 예배로 이어집니다.
잠자기 전에는 평범했던 장소가 깨어난 후에는 하나님을 만난 특별하고 두려운 장소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야곱은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는데, 그 장소에 실제로 집이 존재하거나, 진짜 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곳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그곳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이었고, 야곱에게 그곳은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가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자신이 베고 잤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야곱이 베고 잤던 베개가 제단이 되었고, 그 제단 위에 기름을 예물로 드린 것입니다. 이 투박하게 만들어진 제단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어서 야곱은 서원을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0-22)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평안히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 대해서 야곱은 이곳이 예배의 장소가 될 것이고, 자신의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합니다.
이 서원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서원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걸 해주시면, 저도 그걸 하겠습니다.’ 혹은 ‘하나님 이거 안 들어 주시면, 저도 그거 하지 않을 겁니다.’ 서원이 내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협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약속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서원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한 도망자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타내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야곱,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야곱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만한 몇 번의 사건이 있는데,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그 첫째 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야곱의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구분점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브엘세바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브엘세바는 야곱의 과거입니다. 야곱은 그곳을 떠나 하란으로 갑니다. 하란은 그의 미래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그 중간인 벧엘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곳, 벧엘에서 야곱은 과거를 떠나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그곳”이라는 장소가 강조됩니다. 우리성경에는 좀 다양하게 번역되었는데, “한 곳, 그곳, 거기, 여기, 이곳” 등으로 번역된 단어가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이 동일한 단어가 6번이나 사용되면서 한 장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에 빠져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곳입니다. 야곱이 있는 그곳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알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벧엘은 야곱을 바꾸었습니다. 벧엘 이전의 야곱과 벧엘 이후의 야곱은 다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바뀝니다. 과거와 미래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도망자에서 예배자로 바뀝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고 있는 자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예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약속된 축복은 그분을 향한 예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배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함께하심 가운데 그 길을 걸어갑니다. 여전히 같은 길입니다. 부모를 떠나 혼자 가는 길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가 처한 현실 역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도망가야 하며, 여전히 힘든 길이며, 여전히 두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그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약속, 그 모든 문제들을 덮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이제 야곱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돌무더기의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바꾼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도망자 야곱의 여행을 순례자의 여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이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기꾼과 같은 야곱을, 도망자 야곱을 예배자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은 믿음의 역사 가운데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역사는 우리 삶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만남으로 인해 실제로 우리 삶에 벌어지는 일들, 실제로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직면하는 것들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바쁘게 오늘의 삶을 살고 있고, 직장에서, 가정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만나고, 때로 힘겨운 각자의 삶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함께하심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형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 처지였고, 여전히 외삼촌이 있는 곳까지 직접 걸어 가야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갑자기 에서가 화해를 신청하거나, 하루아침에 외삼촌에게 갈 수 있는 고속열차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가야하는 길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야곱이 매일 맞서야 하는 어려움과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기에, 야곱의 삶의 태도는 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서원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신뢰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의 환경이 완전히 변하거나 매일매일 부딪치는 문제나 어려움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달라지며, 그것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가 변하며,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그분의 어떠하심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집으로 우리를 초청하셨고, 우리가 그곳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벧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곳,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분의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는 그분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달라지지 않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그것이 벧엘입니다. 그 벧엘이 여러분의 삶에서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영원하기에 우리 삶을 다르게 만드는 그분의 능력도 영원합니다. 그 능력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실은,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더 깨어서 주님을 위해 살도록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더 민감할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