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명령을 지켜 가정을 지키라
본문: 에베소서 6장 1~4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키지 못했을 때 겪게 되는 충격과 피해가 너무 크고 심각하기에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오늘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은 가정입니다. 우리는 내가 속해있는 나의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가정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기에 지켜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것이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최초의 가정을 거짓으로 유혹해서 무너뜨렸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가정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가정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가정의 건강을 지킬 수 없고 가정의 안전을 지킬 수 없으며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없습니다. 가정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의 언약으로 하나 되어 가정을 이루고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둘이서 잘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이 가정에 좀 불편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요구사항이 많은 눈치 없는 손님입니다. 자신이 집 주인인 것처럼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하고 사고도 많이 칩니다. 부부를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부는 손님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조용한 집을 시끄럽게 만드는 손님이지만, 부부는 누구보다 이 손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가정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결혼으로 가정이 시작되고 자녀를 낳음으로 가정의 모습은 달라지고 부부의 삶도 달라집니다. 가정에 생명이 더해짐으로 그에 맞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많은 수고가 따르고 시행착오와 실수가 반복됩니다. 죄인 두 사람이 만나 성화되어 가는 곳, 서로 부딪히며 다듬어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부 둘만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또 다른 죄인이 추가되었으니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때때로 가정은 나의 바닥이 드러나는 곳이 되고 나의 한계를 경험하는 곳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귀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 됩니다. 나의 죄의 본성과 마귀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 속에서 가정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가정과 자녀양육에 대한 책들과 교육 영상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 중심의 가르침들이 전문가의 견해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사람들이 거짓에 속아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기도 합니다. 무서운 것은 세상에서 무너진 가정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기에 사람들이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협하는 공격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려고 수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 속에서 우리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지키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내가 해야 하는 수고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며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무너집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국가도 무너집니다. 자녀가 방치되면 부모가 무시되면 그렇게 가정이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명령을 지킴으로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키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니다. 명령을 지키는 것은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것은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명령을 지켜야 하고 명령을 지킴으로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새로운 신분에 맞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명령, 남편과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에 이어서 오늘 본문은 부모와 자녀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녀가 지켜야 할 명령, 첫째는 “순종하라”입니다.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에게는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 명령에 대해서 특별히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명령이 적용되는 기간입니다. 이 명령은 자녀의 일생동안, 혹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변함없이 적용되는 명령은 아닙니다.
결혼의 원리를 제시하는 창세기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룰 경우 부모에 대한 순종의 의무가 만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혼이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어 부모에게서 독립한 자녀라면 순종의 의무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뜻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독립한 자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부모의 뜻에 순종할 수 있고, 또 부모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마음대로 불순종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한 자녀에게 순종의 의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녀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주어진 순종하라는 명령은 오늘날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습니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의 흐름과 반대되는 일이기에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은 갈수록 더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이 말씀 앞에 이유를 의미하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옳다고 하셨고 우리는 그 옳은 것을 따릅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반대로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되는 어리석은 자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며 말세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롬1:30, 딤후3:2).
자녀가 순종하라는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께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녀와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반항하는 자녀는 완악하고 패역한 자로 여기고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그러한 악을 제거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부모에게 거역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악한 일이기에 그러한 죄가 공동체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즉각적이고 무서운 벌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일을 합니다. 옳은 일이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안전하고 유익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라는 명령에는 예외사항이 있습니다. 이 명령은 “주 안에서” 라는 수식을 통해서 제한됩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일을 명한다면 순종하기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에서 순종합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예외 없는 절대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거절할 수 있고 거절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유사한 골로새서 말씀에는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향한 순종의 마음으로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순종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에 기쁨으로 기꺼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않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말고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 기분에 따라 순종하고 말고를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이고 하나님을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습관처럼 불순종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패역한 일이고 악한 일입니다. 절대로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셨을 때,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인 부모에게 순종하셨다면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할 핑계나 이유는 없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녀가 지켜야 할 명령, 둘째는 “공경하라”입니다.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바울은 십계명의 제5계명을 인용하면서, 부모라는 단어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로 구분되는 각각의 단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로 이 명령의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가치를 둔다는 말이고 높이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부모로서 인정하고 마땅한 태도로 부모를 대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라는 명령에는 어떤 수식도 없습니다. 다른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대상과 범위에 있어서 제한되는 부분이 있지만 공경은 아닙니다. 자녀가 독립해서 순종할 의무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일생동안 유지되는 의무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때 주어지는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다만, 이 약속은 일반적인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병장수하게 되고 반대로 일찍 죽은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은 잠언의 약속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 명령은 번영과 장수의 복을 가져오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때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위험과 어려움들을 미리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존중히 대하고 필요하다면 부모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사회적으로도 그 필요가 더 커지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UN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낮아진 출산율로 인해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합니다.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20%가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이 명령을 보다 실제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는 공경이 실체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나는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한지 어떻게 공경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명령은 다른 제한 사항이 없습니다. 평생에 걸쳐서 지켜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명령을 지키려고 할 때 제한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명령으로 우리 마음을 일깨우고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지켜야 할 명령, 첫째는 “노엽게 하지 말라”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이 명령이 가정의 리더인 아버지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이 명령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뜻하는 이 단어가 부모를 뜻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이 우리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지만 당시 배경에서는 충격적인 명령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버지의 권한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로마법이 그것을 보장했습니다. 아버지가 태어난 아이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를 결정했고 원하면 언제든지 자녀를 노예로 팔거나 집에서 쫓아낼 수 있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집회서는 당시 자녀를 대하는 방법으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비는 아들이 어렸을 때에 그를 때리고 자주 매질해야 할 것이고 아비는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나두어서는 안 되며 그와 놀아서도 안 되고 같이 웃음을 나누어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 명령에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가정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나타날 것입니다.
이 명령은 자녀를 화나게 하면 안 되니까, 어떻게든 자녀에게 맞춰주고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명령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화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자녀가 원하지만, 유익하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화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가 칼을 달라고 했을 때, 아무리 화를 내며 떼를 부려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어지는 말씀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 그 목적에 따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바른 방향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자녀가 싫어하더라도 자녀에게 순종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이나 부모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녀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잘못 사용하기 쉽고 자녀에게 지나친 것들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 있고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도록 자녀를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자녀를 통제하고 억압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편애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모는 자녀의 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는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청지기로서 자녀를 잠시 맡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녀를 귀하게 여기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지켜야 할 명령, 둘째는 “양육하라”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에게 주어진 양육하라는 명령을 지키려고 할 때 부모가 따라야 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입니다. 주님께 속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훈과 훈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주의 교훈과 훈계는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교훈하고 말씀에 따라 훈계하는 것, 그렇게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잘못된 길로 갑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타고났습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던 자들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아이들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떻게든 자녀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가치를 두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친구들로부터 다른 말을 듣더라도 학교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더라도 다른 가치와 세상의 문화가 아이를 유혹하고 흔들 때에도 분별하고 거절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무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말씀으로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봅니다. 부모가 부부로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고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돈을 어떻게 대하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힘을 무엇을 위해 쓰는지 보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주님은 입술로만 말하는 주님인지 아니면 주님이 실제로 삶의 주인이시기에 주님 뜻을 따르고 있는지, 자녀가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어떤 태도로 예배드리고 있는지, 자녀가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주님의 은혜를 말하고 주님의 사랑을 말하고 주님을 이야기할 때, 부모가 삶으로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자녀는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의 대한 지식과 사랑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부모라면 다른 부모들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신 모습, 주님의 역사하심을 부모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자랄수록 자녀에게는 자기 부모에 대한 분별이 생깁니다. 내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알고 나름대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녀가 알게 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모습을 보고 무엇이 진짜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자녀가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권위를 배우는 곳입니다. 가정은 가장 먼저 순종을 배우는 곳이고 순종을 배워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자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는 부모의 가정은 홈스쿨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학교 대신에 가정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믿는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말씀으로 양육하는 홈스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부모만이 할 수 있고 부모가 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의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지 않으면 자녀는 결핍을 느끼며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영적인 건강과 안전을 지키려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명령을 지킬 때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의 가정만이 아니라 자녀가 시작하는 가정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양육하라는 명령은 단순히 이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주고 주님을 전하는 중대한 명령인 것입니다. 부모로서 이 명령을 지킴으로 가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부모로서 마귀로부터 세상의 죄와 유혹으로부터 자녀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에게 주신 명령을 지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가정에서 정하신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에서 정하신 나의 위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는 명령을 지키지 않을 때, 그 자리를 지키지 않을 때 생깁니다.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깨는 것입니다.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내가 내 자리를 떠나서 결국은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가정도 자리를 지키지 않음으로 무너졌습니다. 내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 자리에 오르려고 합니다. 그렇게 명령을 지키지 않고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가정은 무너졌습니다. 명령을 지킴으로 자리를 지키고 자리를 지킴으로 가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자리는 하나님 아래입니다. 자녀의 자리는 부모 아래입니다. 부모의 자리는 하나님과 자녀 사이입니다. 부모는 그 자리를 지킴으로 자녀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따라 가정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퍼즐 조각을 생각해보십시오. 조각들은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조각들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원래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계획하신 가정의 그림, 그 아름다운 모습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 자리에 있을 때 만들 수 있습니다.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공격이 계속되더라도 명령을 지킴으로 우리가 자리를 지킬 때, 우리의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