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세에 하나님이 요구하신 회개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0절
설교자: 조정의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소아시아 교회(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두 번째로 쓴 편지로(3:1), 주후 68년 로마 감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 직전에 쓴 유서에 가깝다. 베드로가 두 편지를 쓴 목적은 분명하다.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1-2절)
베드로는 성도들이 생각나게 하기 원했다. 또 기억하게 하기 원했다. 무엇을? 성경의 진리를. 2절에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은 구약 성경에, 주 되신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신약 성경(당시는 구전된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 진리의 말씀이다.
베드로는 말세에 거짓 교사가 많이 일어나 교회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할 것을 염려했다(벧전 5:8; 벧후 2장; 3:3).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향한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켜 그 진리에 삶을 굳건하게 세우길 바랐다. 말세에 거짓에 속아 떠내려가지 말고 오직 진리로 돌아올 것을(회개할 것을) 간청했다.
“회개”란 후회가 아니다. 기대한 것만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아쉬움이 아니다. 내가 올바른 길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정신을 차려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움직이는 것이다. 거짓에서 돌이켜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우리는 말세에 거대한 거짓의 물결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거짓의 홍수에 휩쓸려간다. 하나님의 진리에 단단히 붙들려 있어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 먼저 말세의 거짓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살펴보고, 하나님의 진리가 거짓과 그에 따른 삶을 어떻게 교정하는지, 어떤 삶으로 우리를 회개하도록 요구하시는지 깊이 생각해보자.
1. 말세에 거짓이 요구하는 삶(3-4절)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3절)
베드로는 거짓 교사를 고발하는데 잡범이 아니라 거물급이다(먼저 이것을 알지니, 긴급!!!). 그들은 말세에 성도에게 접근하여(와서) 미혹하는데 그들의 특징은 자기의 정욕에 따라 행한다는 것이다. 정욕에 따라 사는 삶은 전형적인 믿지 않는 자의 삶이다(벧전 4:3). 신자에게 있어서 정욕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갈 5:24), 제어하고(벧전 2:11) 죽여야 할 땅의 지체(골 3:5)이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가 정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기 위함이다(벧전 4:1-2).
왜 거짓 교사는 정욕에 따른 삶을 살았을까? 그들이 믿고 있는 거짓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믿음에 따라 산다.
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약속이 어디 있냐고 조롱했다. 주님은 사도들을 통해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강림하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지만(마 24-25장; 살전 1:10; 약 5:8), 그들은 믿지 않고 도리어 비웃었다.
그들의 불신은 단순히 주님의 다시 오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있었다.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하나님 나라의 시조부터 아니 만물이 처음 창조된 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있지 않냐고 비난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물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는, 없는 셈 쳐도 상관없는 분이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실제적인 무신론자라 부른다. 하나님을 대놓고 부정하진 않더라도 그들의 삶에서 철저히 배제하기 때문이다. 혹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법칙과 원리에 따라 잘 돌아가도록 만드셨을 뿐이지 절대 개입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이 혹시 존재하더라도 저 멀리 어딘가에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해도 실제 우리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을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기는 자의 삶이 어떠하겠는가? 바울이 “이것을 알라”고 경고했던 말세의 사람들처럼 정욕에 따라 살지 않겠는가?: 자기, 돈, 쾌락을 사랑, 자랑, 교만, 비방, 부모 거역, 감사하지 않음, 거룩하지 않음, 무정, 원통함을 풀지 않음, 모함, 무절제, 사나움, 배신, 조급, 자만, 선한 것을 미워함,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부인함(딤후 3:1-5).
바울은 베드로처럼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거짓에 기초한 믿음대로 자기 정욕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 거짓이 아니라 진리로 돌이켜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이 시간 당신의 마음을 일깨워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강림하실 것과 만민을 심판하실 것을 믿는가?
J. D. 그리어 목사는 전도하는 중에 구도자가 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만일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 영원한 심판을 앞두고 있고 그날이 아주 임박했다면 하루를 어떻게 그냥 살 수 있는가? 매일 구도자를 붙들고 제발 심판을 피하라고 간청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은 주의 임박한 강림을 믿는 사람처럼 심판을 앞둔 이들을 불쌍히 바라보고 심판을 면하라고 간청하고 있는가? 결산을 눈앞에 둔 자처럼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곧 불타버릴 곳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에 당신의 재물을 쌓고 있는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당신의 삶을 진지하게 평가해보라. 당신의 삶은 주님의 강림을 믿는 자의 삶인가 아니면 그 진리를 조롱하는 자의 삶인가?
‘믿기는 믿는데 믿는 것처럼 살진 못한다’는 것을 겸연쩍어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면, 정신을 차려라. 돌이켜라.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고 거기로부터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요구한다.
2. 말세의 거짓을 반박하는 진리(5-10절)
베드로는 5-10절까지 말세의 거짓을 반박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제시한다.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창조될 때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말씀에 붙들려 있다는 반박(5-7절),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주의 날, 만물의 마지막 날이 도둑 같이 올 것이란 반박(8-10절)이다.
(1) 말씀이 만물을 붙드신다(5-7절)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은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냥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있다고 반박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5절)
하늘 곧 궁창은 물과 물 가운데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다(창 1:7). 그래서 시편 기자는“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라고 노래했다(시 33:6).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났으며 하나님은 그 뭍을 땅이라 부르셨다(창 1:9-10; 사 45:18).
만물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무에서 유가 그냥 생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움직이시며 붙드신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걸 부정하는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6절)
이로 말미암아가 가리키는 것은 “물”이다. 물은 세상에 그냥 있지 않았다. 넘쳤다. 그냥 넘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로 넘쳤다.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진 심판이었다(창 7:4). 다윗은 시편 29편에서 홍수 때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하셨고 영원히 그리하실 것이라 노래했다(시 29:10).
말세에 하나님 말씀을 조롱하던 자들은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하다 못해 그런 약속이 있기는 한 거냐고 불신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7절)
‘그 동일한 말씀으로’가 핵심이다. 말씀이 하늘과 땅을 무에서 창조했다. 말씀이 온 땅을 물로 덮어 심판했다. 그 동일한 말씀이 이제 하늘과 땅을 보호하고 보존하신다. 언제까지?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그날에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하늘과 땅을 불사르실 것이다.
(2)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8-10절)
자, 이제 베드로는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붙드는 자들, 그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계속해서 기억하며 살도록.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말세를 살아야 할까?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대 사본: 모든 것은 타버릴 것이라)
베드로는 시편 90편 4절을 개작하여(“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모세)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같지 않다고 말했다. 먼지와 안개같은 삶을 사는 유한한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과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시는 시간은 확실히 다르다.
또한 곧 오신다는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은 아니지만 더디다고 느껴지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하지만 주의 날은 말씀대로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도둑같이) 임할 것이다. 그 날에는 하늘(계 6:14)과 땅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모든 만물이 뜨거운 불로 심판받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하늘과 땅을 붙드시고 움직이시고 보존하시며, 하나님 말씀대로 하늘과 땅은 곧 불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믿는 자처럼 살겠는가 아니면 알아도 부정하며 사는 경건하지 않은 자처럼 살다가 심판과 멸망을 맞이할 것인가?
3. 적용
“내일 종말이 온다면…”이란 질문에 흥미롭게도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대답이 현저히 다르다. 믿지 않는 자는 정욕을 따라 최대한 즐기려 한다. 믿는 자는 정욕을 최대한 죽이고 성령을 따라 최대한 살려 한다. 믿지 않는 자는 쾌락을 끝까지 맛보고 죽으려 하고 믿는 자는 거룩을 끝까지 맛보고 죽으려 한다. 믿지 않는 자는 자기를 최우선으로 사랑하려 하고, 믿는 자는 남을 사랑하여 심판을 면하는 복된 소식을 전하려 한다. 믿지 않는 자는 돈과 재능과 시간을 낭비하고 믿는 자는 절제한다. 믿지 않는 자는 조급하고 믿는 자는 기대한다.
주의 날 앞에서 믿지 않는 자는 그동안 거짓에 속아 정욕대로 살았던 삶의 방향으로 도리어 전력 질주하고, 믿는 자는 잠깐 졸아 뒤쳐진 삶에서 바짝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다시 말씀이 인도하는 곳으로 재빨리 돌아간다. 회개한다.
그래서 베드로가 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벧후 3:11). 하나님 말씀은 조금의 변함도 없이 오차도 없이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만물을 만들고 붙들고 보호하고 이제 곧 불태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또 믿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뭐라 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