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당신 입에서 나오는 열매 Part.7 “부모의 말, 자녀의 귀”
본문: 잠언
설교자: 조정의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자녀 양육 방법과 원칙이 있다. 먹는 것, 입은 것, 자는 것, 싸는 것, 말하는 것, 읽는 것 등 가르쳐야 할 것도 참 많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모는 단 하나의 명령에 순종할 의무가 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이다(엡 6:4).
다른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가르치든, 어떤 양육 방식을 따르든,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전 12:13). 생각해보라. 이 목적에서 벗어난 자녀가,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 이르게 될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잠언은 어떤 면에서 부모의 교훈을(잔소리) 기록한 책과 같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자기 아들들26번에게 남긴 교훈이기 때문이다(잠 1:1, 8, 4:1). 솔로몬 역시 다윗 왕의 아들이자 밧세바의 “유약한 외아들”로 부모의 교훈을 받았다(잠 4:3-9).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지혜를 누린 솔로몬은 자녀를 어떤 교훈과 훈계로 양육했을까? 이는 마땅히 오늘날 주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 가지로 정리해서 살펴보자.
1. “하나님을 경외하거라”
1: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부모의 모든 훈계와 양육 방법의 근본 목적이 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부모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경외”(히: 이르아)는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을 무시무시한 분으로 알고 공포심을 갖게 만들라는 게 아니다. 창조주, 전능자, 주권자로서 마땅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 권위 아래 굴복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경외’는 ‘즐거움’을 포함한다. 사람을 영원히 경이롭게 하고 만족시키는 하나님의 무한한 속성을(만물과 구속사에 드러난)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말을 포함해야 한다. ‘이것을 보렴.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선하신) 분이시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하도록 하자.’ 또한 부모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어야 한다. 폴 트립이 <경외>에서 밝힌 것처럼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를 경외하며 산다: 하나님 또는 우상(사람, 사업, 취미 등).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겠는가?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할 때, 자녀가 그것을 진지하게 듣겠는가? 절대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지 않는 부모가 자녀 양육에 쏟는 모든 시간과 노력은 모래 위에 집을 쌓는 것과 같다. 자녀의 삶에 폭풍이 불면 단번에 무너져 버릴 인생을 세우는 것이다(마 7장). 반면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잠 22:4). 자녀의 인생이 견고하고, 잘 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라.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심은 중생(거듭남)의 결과다. 중생 없이 경외심만 지나치게 요구하면 종교인이 되고 만다. 철저한 종교 생활을 하더라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외식자가 된다. 떠나는 건 시간문제다. 중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이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날마다 부르짖는 것(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의 말과 삶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듣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2.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거라”
잠언엔 지혜와 유사한 말이 많이 나온다: 훈계, 지식, 명철, 교훈, 책망, 말씀 등(1:2). ‘실제로 삶에 적용된 지식’이란 의미에서 지혜가 다른 개념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혜는 의인화되어 이렇게 외친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자 안에 부음바 되셨다(엡 1:17).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감동으로 기록하셨다. 말씀을 조명하여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지식, 교훈, 명철, 책망, 훈계를 보여주신다(딤후 3:16-17).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데 필요한 소원과 능력을 공급하신다(빌 2:13).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아버지, 솔로몬은 자녀에게 계속해서 이런 말을 했다:
-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3:1)
-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3:21)
-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4:10)
- •“내 아들이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5:1-2)
-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7:1)
-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19:27)
먼저, 솔로몬이 말한 “나의 법”, “나의 명령”, “내 말”, “내 지혜”, “내 명철”, “내 계명”은 솔로몬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법, 명령, 말씀, 지혜, 명철, 계명.
부모로서 솔로몬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힘써 알라고 반복해서 가르쳤다. 잊지 말고 간직하라고 권면했다. 반드시 삶으로 실천하라고 명령했다. 말씀이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들고, 자녀를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고, 악한 자에게서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잠언 2장엔 아버지 솔로몬의 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1) 말씀이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든다(2:1-5).
2) 말씀이 자녀를 보호하고 선한 길로 인도한다(2:6-10).
3) 말씀이 자녀를 악한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2:11-12).
말씀은 부모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 곧 자녀가 하나님 경외하도록 만든다. 말씀은 부모가 없는 곳에서도 자녀를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한 길로 인도한다. 말씀은 부모가 세상을 먼저 떠나도 끝까지 자녀의 삶을 악한 길에서 지켜낸다. 그러니 부모의 말에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나와야 하겠는가?
① 자녀가 말씀을 충분히 배우고 있는지 점검하라. 교과별 수업시수라는 게 있다(‘국영수’보다 ‘하나님의 지혜’). 매일 자녀에게 성경을 먹이라.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 자녀와 함께하라(수요일/주일). 자녀가 어떻게 또 얼마나 하나님 지혜를 이해했는지 물어보라.
② 말씀이 자녀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일상생활 가운데 말씀을 나누는 것을 어색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지혜로운 질문으로 아이가 하나님의 지혜를 생각하도록 도우라: ‘이 상황에 적합한 하나님 말씀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3. “부모에게 순종하거라”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인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완벽한 부모의 완벽한 양육을 받아도 자녀는 잘못될 수 있다. 아무리 부모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지혜로 날마다 교훈한다고 해도, 자녀가 불순종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잠언은 오늘날 자녀 양육법에서 철저히 외면 받는 ‘체벌’을 강조한다. 때려서라도 순종하는 자녀를 만들라는 것이다:
-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22:15)
-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23:13)
-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29:15)
체벌은 부모의 뜻대로 자녀를 조종하기 위해 가하는 충동적인 폭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죄인의 미련함(반항심), 어리석음을 꾸짖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이끄는 절제된 사랑의 훈육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부모의 본이 되신다(잠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라고 잠언에 의도된 ‘체벌’의 개념을 제대로 집어냈다(히 12:6).
자녀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건 좋다. 그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자녀가 독립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가정에 세우신 부모에게 있다. 자녀가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 그 권위에 순종하도록 양육하라. 부모를 거역하는 건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순종을 요구하는 부모는 끊임없이 자신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에게 명령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녀는 주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부모의 뜻을 거부해야 할 때가 있다: 명백히 주님의 뜻에 위배된 것을 요구할 때. 하지만 성경은 그 외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골 3:20).
순종하는 자녀가 되도록 훈육하라. 일반적으로 부모만큼 자녀를 희생적으로 이타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부모가 자녀의 유익을 위해 명령하는 것에도 즉각적인 순종이 되지 않는 자녀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부모 외 다른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겠는가? 부모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최고의 교사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겸손히 존중하며 들을 ‘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녀들이여, 주님은 여러분에게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셨다(엡 6: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고, 그분을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고 고백하면서, 주님이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신 것을 업신여긴다면, 이 얼마나 모순인가? 십 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들이여,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없다. 부모에게 버릇없고 예의 없게 굴어도 괜찮은 때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죄인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살인, 사기, 악독과 더불어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언급했다(롬 1:30).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의 특징을 묘사할 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부모를 거역하”는 것을 말했다(딤후 3:2). 무슨 말인가? 우리가 사는 말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더욱 심각해지고, 죄인은 자기 유익을 위해 부모의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업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세라고 해도, 아무리 일반적인 현상이 그렇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모와 자녀는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내주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 질서대로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하나님 주신 소명대로 살 수 있게 됐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의 형상)을 충만하게 하는 자들이 됐다. 그러므로 부모들이여, 자녀에게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분의 지혜를 사모하라, 부모의 말에 순종하라’라고 말하라. 자녀들이여, 그 말에 귀를 기울이라. 바로 그런 가정이 구원에 이르는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