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당신 입에서 나오는 열매 Part.3 “때에 맞게 말한다”

본문: 잠언

설교자: 조정의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잠언은 ‘때에 맞게 말한다’라는 언어생활의 원칙을 여러 각도에서 가르친다. 당신의 마음이 맺는말, “입에서 나오는 열매”(18:20)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때도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때에 맞는 말’이 무엇인지 하나님 말씀, 특별히 지혜 가득한 잠언의 교훈을 받기 전에, 언어의 변화는 은혜로운 구원의 역사라는 걸 기억하자. 앞으로 살펴볼 원칙들은 단순히 더 지혜롭게 말하기 위해 말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혀라는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롬 6:13).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으로부터 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화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고 그 은혜의 지극히 큰 능력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입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빌 2:12-13). 그러면, 때에 맞게 말하는데 필요한 성령의 무궁한 지혜를 들어보자. 그리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자.

1. 때에 항상 안 맞는 말

먼저, 잠언은 그 어떤 때에도 내지 말아야 할 말에 관하여 경고한다: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4:24), ‘거짓말’(6:17, 12:17, 19:5, 9), ‘미련한 말’(10:10), ‘중상하는 말’(10:18), “과격한 말”(15:1), 패역한 말(15:4), 악한 말(15:28), “속이는 말”(21:6), “한담”(20:19, 26:22), “누설”(25:9), “아첨”(29:5).

바울은 성도가 내지 말아야 할 이런 말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며 “무릇 더러운 말은[더러운 말은 어떠한 것도우리말성경]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명령했다(엡 4:29). 여기서 ‘더러운’(사프로스)은 ‘못된’(마 13:48), ‘좋지 않은’(마 12:33), ‘썩은’이란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은 그리스도인은 농부인 하나님께 좋은 열매를 맺어 기쁨을 드려야 한다(요 15장). 그 어떤 때라도 썩은 열매, 좋지 않고 못된 열매를 내지 말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정한 입술을 가진 부정한 백성과 같이 이중 언어생활을 허용한다. 공적 자리에서 정갈한 말을 조심스럽게 하면서 사적인 자리에서 온갖 더러운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처럼, 한 입에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말을 내면서 동시에 악한 말을 내는 걸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야고보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고 물으며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책망했다(약 3:10-11). 당신이 자주 사용하는 ‘더러운 말’은 없는가? 가까운 이들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온갖 더러운 것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거룩한 백성)에게 마땅한 바다(엡 5:3).

2. 때에 맞는 말(시간)

“때에 맞는 말”(15:23)에서 “때”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의미한다. 잠언은 말하는 타이밍에 관하여 분명히 가르친다.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29:20).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17:27). 말이 조급한 사람은 적절한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급히 말하는 사람이고, 아끼는 자는 그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야고보는 조급하게 말하는 자의 합당한 예를 들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약 4:13-17). 야고보는 이것이 그들의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것이라 말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뜻과 때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이며, 우리가 살고 죽는 것,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말에 나타나야 한다. 이 지식은 말을 아끼는 자에게서 발견된다. 

조급히 말하여 낭패를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말은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는다는 진리의 때에 부합하는가?(잠 16:9, 20:24).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때를 기다리며 그 뜻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당신의 말로 열매 맺기를 구하라. 때에 맞게 말하라.

3. 때에 맞는 말(기회)

“때에 맞는 말”(15:23)에서 “때”(에트)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기회”이다.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한다(갈 6:10). 그리고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듣는 이의 유익을 위하여 선한 말을 낼 줄 알아야 한다. 잠언의 가르침을 들어보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24:26).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25:11). 입맞춤이나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는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미치는 이득과 가치를 가리킨다. 이처럼 우리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유익을 주고받기 위해 때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은 합당하고 적당한 말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말을 아낀다. 물론 잠언은 “입술을 제어하”라고 가르친다(10:19).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고 말한다(17:28).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은 악하고 쓸데없는 말을 제어하라는 명령이지, 적당하고 합당한 말을 내지 말라는 게 아니다. 성경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말을 하라고 명령한다(엡 4:15). 말하라는 것이다. 말을 아끼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지만, 다른 이에게 유익을 끼칠 기회를 무시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말을 아끼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이타적인 목적, 즉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기 위해 하라.

어떤 말이 적당하고 합당한 말일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즐거운 자들의 기쁨을 배가시키며 함께 나누는 말, 우는 자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함께 슬픔을 나눠지는 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게으른 자, 마음이 약한 자, 힘이 없는 자) 훈계(권계, 가르침), 격려(위로), 붙들어 주는 말을 하는 것. 

때로는 뼈아픈 충고도 필요하다. “좋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잠 29:1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하지만 때에 맞게 해야 한다. 그 의도가 의심되지 않도록.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27:14).

핵심은 당신의 입을 열어 나오는 말로 언제나 듣는 이에게 유익을 끼치라는 것이다. 모든 상황과 경우에서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 어떤 말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세워주고 위로하며 그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라. 잠언이 미련하고 악한 말로 취급하는 것 중에는 ‘한담’(11:13)이 있고, 신약성경이 악하다고 규정한 말 중에는 “쓸데없는 말”과 “마땅히 아니할 말”이 있다(딤전 5:13). 당신의 말은 듣는 이에게 유익한가? 영양가가 있는가?(농담도 유쾌하게 하는 것과 무익한 것 심지어 해로운 것도 있다). 주께서 당신의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키셔서 선한 말을 열심히 내는 자기 백성으로 빚으시길 구한다(시 141:3).

4. 때에 항상 맞는 말

처음에 우리는 ‘항상 때에 맞지 않는 말’을 살펴봤다. ‘온갖 더러운 말’이었다. 그러면 항상 때에 맞는 말이 있을까? 있다. 잠언은 이런 말을 가리켜 ‘지혜를 내는 말’(10:31, 20:15), ‘진실한 말, 참된 말’(12:17, 19, 엡 4:15), “선한 말”(12:25), ‘지식이 있는 말’(15:2, 7, 16:23), ‘의로운 말’(16:13)이라 부른다. 때와 상관없이 우리 말은 언제나 지식과 지혜가 있고 선하며 의롭고 정직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말을 낼 수 있나?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잘 들어야 한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화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잠 20:17-21)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분명한 목적 중 하나는 그 말씀대로 대답하고 말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식과 지혜가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 선하고 의롭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은 교제 중에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교제를 망치는 ‘설교’(?), ‘꼰대같은 말’로 취급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 3:16). 우리가 말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격려하고, 붙들어줄 때 필요한 모든 지혜는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말씀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적극적으로 권장할 일이며,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교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먼저 주님 나라에 갔을 때,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어린 자녀가 죽어 슬퍼하는 성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잠자는 성도를 살리기 위해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란 말, 우리 살아남은 자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란 말,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란 말을 하는 것이 정말 위로가 될까? 우리는 의심한다. 때론 이런 말을 하는 게 무례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는 자들에 관하여” 묻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했다(살전 4:18). 

물론 말하는 태도와 표현 방식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지식과 지혜가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 선하고 정직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언제나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이 말씀은 가증한 사람, 가식적인 사람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그분께 요청하고 구하면서, 정작 그분의 말씀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귀를 돌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을 항상 들어주시길 바란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죄인이 전적으로 타락했을 때 마음도 심히 부패하고 혀도 악해졌다. 다른 말로 하면 고장나서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는 말이다. 고장난 볼펜이 나와야 할 때 안 나오고 나왔다 안 나왔다 제 멋대로인 것처럼, 우리 혀는 때에 항상 맞지 않는 악한 말을 계속 내고, 때에 맞는 말을 내지 못하여 조급하게 말하고, 듣는 이에게 해를 끼치고, 항상 때에 맞는 말은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 입술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제 때에 맞는 말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때에 항상 맞지 않는 말, 온갖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때에 맞는 말을 내기 위해 조급하지 말고 하나님 뜻을 구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선한 말을 내라. 그리고 항상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의 대화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풍성히 거하게 하라.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때에 맞는 말로 기쁨의 열매를 많이 거두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