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당신 입에서 나오는 열매 Part.2 “말하기 전 듣는다”
본문: 잠언
설교자: 조정의
잠언에서 말은 종종 “입의 열매”(잠 12:14), “입에서 나오는 열매”(18:20), “혀의 열매”(18:21)라 불린다. 기본적으로 말은 생각이 맺는 열매다(마 15:18-20). 말하는 자와 듣는 이에게 모두 치명적이다(잠 10:11). 모든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전 12:14). 비극적인 사실은 자기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거다. 말엔 “쉬지 아니하는 악’,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약 3:8).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단을 통해 부정한 우리 입술을 거룩하게 하시고(사 6:6-7),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어 새 마음에서 선한 열매를(말) 내게 하신다(엡 4:15, 23; 골 3:16; 약 3:18). 결국 우리는 단순히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것, 훈련을 통해 더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우리 주 예수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한다. 말에 있어 구원의 은혜를 구한다.
이렇게 복음을 기반으로 삼고 잠언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입에서 나오는 열매’가 무엇인지 계속 살펴보기 원한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언어생활의 원칙을 다룬다: 말하기 전 듣는다. 경청의 중요성에 관해 잠언 말씀을 통해 살펴보자. 말하기 전 듣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대상) 있는데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다. 조금은 다르지만, 언어생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두 가지 종류의 듣는 것에 관해 알아보자.
1. 말하기 전 듣는 것의 의미(1):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명백하다. 말은 마음이 맺는 열매다. 그래서 선한 말을 맺으려면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선한 말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우리는 계속해서 그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 선을 마음에 쌓아야 한다(엡 2:10). 사람이 어떻게 그 마음에 선을 쌓을 수 있는가? 선한 것을 채움으로. 다른 말로 하면 정직하고 선하고 지혜로운 것을 들음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잠언은 ‘들으라’라고 여러 번 강조하며 요구한다.
-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
- “내 아들아…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2:1-2)
-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4:1)
-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5:1)
-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5:7)
- 지혜와 명철이 외치는 소리(8:6-9):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8:34-35)
-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22:17-18)
-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23:19).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눅 8:8).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명철과 교훈, 책망과 훈계를 듣는 것은 ‘말하는 것’에 있어서도 무척 중요하다. 듣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교훈 및 책망 하시고, 바르게 하시며, 의로 교육하신다(딤후 3:16-17). 그럴 때 새롭게 변화된 마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열매, 선한 말을 맺는 것이다(롬 12:2). 우리는 말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
적용: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경청할 수 있을까?
① 태도: 경외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
우리가 읽는 성경, 성경의 권위와 의미를 전달하는 설교, 말씀에 기초한 권면이나 조언 등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와 권위가 담겨있다. 하나님은 결코 흘려들어도 되는 분이 아니다.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지혜와 지식이 풍성하신 분 앞에서 귀한 것을 구하는 마음으로 들어라. 들을 때 경외심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라.
어떤 사람은 좋은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생각하여 불편하게 여긴다[큐티 자세]. 올바른 마음 없이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건 외식으로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올바른 마음을 갖추기 위해 겉을 훈련하는 것은 주 앞에 아름다운 일이다.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눅 11:42).
② 방법: 때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잠 6:20-22)
잘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칙적으로 자주 듣는 것이다(항상, 다닐 때, 잘 때, 깰 때). 초대 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과 집에서 모였던 것을 기억하라(행 2:4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려면 어쩌다 한 번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자주 규칙적으로 그리고 반복하여 묵상해야 한다: *함께 말씀 듣기(빠짐없이 듣기), *함께 성경 읽기(가족, 교회)—책임감 증진. *암송이나 메모 알람 활용, *한 절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애써라(‘지키라’).
2. 말하기 전 듣는 것의 의미(2): 상대방의 말
잠언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함께 대화에 있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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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
-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18:17)
두 말씀 모두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르친다. 충분히 듣기 전에 무언가를 결정하면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욕을 당하느니라”). 그런데 왜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지 못할까? 특별히 야고보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권면했는데, 그 이유는 말이 많을수록 실수가 많고 그러면 더 큰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약 3:1).
선생의 일을 하면서 말의 실수가 많아졌고, 또 다른 문제를 겪게 됐다. 바로 듣기가 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듣기보다는 말하는 데 익숙하고, 말하는 것을 기대하는 자리에 많이 간다. 점점 듣는 것보다 말하는 걸 좋아하게 된다. 듣고 있는 중에도 말할 것을 생각하느라 잘 듣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쉽게 끊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왜 그러는 걸까?
그 깊은 이면에는 이기적인 마음, 자기중심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온유하게 듣는 게 안 된다. 성내지 않고 오래 참으며 듣기도 힘들다. 듣는 데 필요한 사랑의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화에 있어서 자기의 유익을 가장 먼저 구하면 경청이 어려워진다.
교만한 마음도 발견된다. 상대방 뭘 말할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다. 상대방이 나에게 유익을 주거나 지식과 지혜에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높고 내 말이 더 옳고 내 지혜가 월등하다. 그러니 들을 필요가 없다. 이처럼 말할 때마다 자기 자랑을 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도 경청의 지혜를 갖추기 어렵다.
정리해보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건 ‘사랑 없음’, ‘사랑 부족’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일 만큼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누구도 그런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경청을 갈망한다. 누군가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하지만 말 잘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은 희귀하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가르치셨다(눅 6:31: 황금률, Golden Rule). 또한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가르치셨다(마 22:39). 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사랑으로 경청하기를 바라는 만큼 상대방의 말을 사랑으로 경청해야 한다.
또한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람에 따라 듣는 수준이 달라진다. 차별하여 듣는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지만,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은 쉽게 무시한다. 이것은 차별이다.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라고 말했다(약 2:8-9).
주님이 우리를 차별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 주님은 “너희가 만일 선대 하는 자만을 선대 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눅 6:33).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차별 없는 사랑을 상대방의 말을 듣는 일에서 실천하라.
청년들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결혼하여 살아보니 그게 참 중요하다는 걸 갈수록 많이 느낀다.
대화는 단지 정보의 교환이 아니다. 생각, 감정, 의지 등 전인격을 나누는 친밀한 사랑의 교환이다.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 명철과 지혜가 가득한 생각을 말하려면 말하기 전 하나님 말씀을 잘 경청해야 한다. 상대방을 향한 온유와 오래 참음, 겸손과 배려, 사랑을 말하려면 말하기 전 먼저 잘 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성령께서 야고보를 통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 1:19)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기 전에 경청하자. 듣기를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에 기쁨으로 순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