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옛사람을 벗었습니까?
본문 : 골로새서 3장 1-11절
설교자 : 조정의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육체 따르는 것을 벗는 것, 다른 말로 옛사람을 벗는 것에 관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유대교와 이교도 사상에서 흘러나온 세상적, 미신적 가르침을 받아들일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런 것들은 자의적(꾸며낸) 숭배와 겸손과(종교적 모양)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2:23).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면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옛사람을 벗어 버릴 수 있을까요? 오늘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일에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유익을 얻기 원합니다.
1. 옛사람을 벗어야 하는 이유(1-4)
옛사람이라는 말 자체는 본문의 9절에 나옵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옛사람”(old self)이란 말은 과거의 신분을 가리킵니다. “그 행위”는 옛사람의 신분에 걸맞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옛” 모습이라면 지금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실제로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아주 명확하게 골로새 성도의 옛 상태와 지금의 상태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7절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절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골로새 성도들의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그들이 그 가운데 살고 그 가운데서 행하였습니다. 옛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옛사람의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신분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난폭하고 악독한 남편과 함께 살던 여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녀는 악한 남편에게 매 맞고 그가 시키는 대로 악한 일을 행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의로운 남자가 그녀의 상황을 딱하게 여기고 그녀를 구해주기 원합니다. 그래서 큰 값을 지불하여 악한 남편이 그녀와 이혼하도록 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그의 집에서 경건하고 행복한 삶을 함께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의 삶을 다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3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죽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죽었다는 말입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입니다(벧전 2:24). 과거엔 땅에 소속된 사람이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의 뜻에 따라 살았고, 그가 만든 세상 풍조에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엡 2:1-3; 골 3:6).
그러나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습니까? 죄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엡 2:4). 그래서 그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에 못 박았습니다(14절). 죄인의 옛 남편이었던 세상의 악한 영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15절). 이제 그리스도인은 더이상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골 2:20).
또한 하나님은 죄인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 1:1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믿는 우리를 함께 일으키셨습니다(골 2:12). 그리스도인은 이제 세상과 이혼하고 그리스도와 혼인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남편이 바뀌었고(신분) 그래서 과거의 삶을 모두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1절에 나오는 이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는 다른 말로 하면 “네가 누구에게 속하는지 기억하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 또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우리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옛사람을 벗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야 하는 이유는 위에 있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위에 계신 분,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을 더 이상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땅과 이혼한 사람입니다. 3절에 나오는 것처럼 땅에 대하여 우리는 죽었습니다. 분리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습니다(3절). 이 말은 우리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또 우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졌습니다(3절). 이중으로 보호된 생명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9:38-39)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는 단지 안전한 삶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삶도 보장받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1절). 하나님 우편은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만물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2:9)이 거하십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습니다(2:3). 우리가 주님 뜻대로 구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4). 그리스도의 충만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안전함과 충만함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우리 삶이 그렇게 안전한지, 충만한지 잘 모를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분과 함께 하나님 안에 보호받고, 우리가 만물의 머리 되신 그분으로 충만하게 채워진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4절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충만함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그분 안에 우리가 함께 누리는 영광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 그분께로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옛사람을 벗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벗어야 하는 옛사람의 행위(5-8)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벗어야 하는 옛사람의 행위는 무엇일까요? “땅의 것”(2절)이란 표현은 불명확해 보입니다. 감사하게도 바울은 아주 명확하게 우리가 벗어야 할 행위가 무엇인지 말해주었습니다.
5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절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8절에 보면 또 다른 목록이 나옵니다.
8절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그리스도인이 벗어야 하는 옛사람의 행위는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했던 행위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미워하셔서 그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땅에 있는 지체”(“땅에 속한 지체”, 우리말성경), 혹은 9절에서처럼 “옛사람과 그 행위”라고 부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벗어야 하는 행위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들이 따랐던 타락한 세상의 삶의 방식입니다(“육체 따르는 것”, 2:23). 거룩하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죄를 죽여야 합니다.
성경엔 바울이 언급한 죄보다 더 많은 죄가 기록되어 있지만, 본문에서 바울이 제공한 죄 목록, 우리가 죽여야 할 죄 목록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집니다. 5절에 나오는 죄의 목록은 욕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8절에 나오는 죄의 목록은 행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간단한 사실만 봐도 그리스도인이 죄를 죽인다는 것은 외부 행동만 교정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한 욕구도 죽여야 합니다.
조금 가까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5절에 나오는 악한 욕구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그리고 탐심입니다. 음란은 모든 형태의 성적인 욕구입니다. 부정은 모든 종류의 악한 생각과 의도를 가리킵니다. 사욕은 온갖 부끄러운 욕심을 말하고(육체 관련), 악한 정욕은 특별히 정신적으로 악한 욕구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탐심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의 것을 얻으려는 마음입니다.
바울이 제시한 다섯 가지 악한 욕구는 각각 구분하여 특징을 살피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전체적으로 바울은 악한 성적 욕구를 강조합니다. 아마도 이교도권에서 우상숭배를 하던 자들이 성적인 죄를 하나의 문화적, 종교적 행위로 자연스럽게 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욕구가 결국은 마지막 절정에 나오는 탐심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 그 이상을 얻으려는 우상숭배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성적인 욕구 그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배우자와 관계 속에서만 제한적으로 허락하신 것, 그 이상을 얻으려는 강력한 욕구입니다. 욕구가 하나님의 뜻보다 더 커질 때 그 욕구는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그 욕구를 숭배하고, 그 욕구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 마음 속에 강력한 욕구가 생길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아래 복종하는지 아니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지 지켜보십시오. 어떤 욕구든지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아진다면 바로 그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 욕구를 죽여야 합니다.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분이시며(시 33:15), 그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롬 8:27). 우리의 마음이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 덕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간절히 원하기를 기도합니다(빌 4:8).
자, 이제 다음 목록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한 욕구보다 더 눈에 잘 드러나는 죄의 목록입니다.
8절엔 악한 욕구가 맺는 열매인 악한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입의 부끄러운 말입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분함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라면, 노여움은 분함이 터져 나와 갑자기 폭발하는 악을 가리킵니다. 악의는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고, 비방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악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입의 부끄러운 말은 입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더러운 말을 가리킵니다.
앞의 목록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말로 하는 죄를 강조했습니다.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이 세 가지 모두 우리 입으로 하는 죄입니다. 분함과 노여움도 같은 종류의 죄로 묶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사람이 가장 쉽게 범하는 죄를 예로 들어 제시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수많은 죄를 짓고 시시때때로 분노합니다.
데이비드 폴리슨은 “선한 분노, 악한 분노”라는 책에서 분노는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지 않다’, ‘공평하지 않다’, ‘합당하지 않다’라는 판단에 기초한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선한 분노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옳지 않은 것에 대해 그럴 권리가 있는 사람이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대표적인 예가 되십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며 가난한 자를 벗겨 먹는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그들의 행위에 공분하시고 성전의 주인으로서 그들을 내어쫓으셨습니다.
하지만 보통 우리의 분노는 선하지 않습니다. 판단 기준이 하나님의 뜻이기보다는 주관적인 판단 기준입니다. 분을 표출하는 방식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판단하실 부분인데 우리가 재판관처럼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죄는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을 이렇게 두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합니다. 만일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로 하는 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죄입니다. 하지만 이 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쓰는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꾸짖었습니다(약 3:9-10).
우리가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비방할 때, 입에서 여러 가지 부끄러운 말을 낼 때, 그 순간 만큼은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서 계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마음에서 분이 생길 때,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올 때, 다른 사람에 대한 비방이 흘러나올 때, 그것이 바로 내가 죽여야 할 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이 있는 벌레가 붙어있는 옷을 재빨리 벗어 버리듯이 악독한 행위를 재빨리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3. 옛사람을 제대로 벗는 방법(9-11)
그러면 어떻게 옛사람을 제대로 벗을 수 있을까요? 9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벗어야 할 옛사람의 행위로 “거짓말”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 행위를 벗어버릴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9절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절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9절에 나오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그동안 설명한 옛사람과 그 행위 중 하나입니다(말로 하는 죄). 벗어 버려야 할 행위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 방법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는 너희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한 마디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니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죄를 벗어 버리기 위해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교정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음란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이트를 멀리하거나 환경을 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욕(욕구를 틀어막는)의 방법으로 수행이나 금식 등을 사용합니다. 욕구 자체를 말려 죽여 악한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방법으로는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2:23). 행위나 욕구를 통제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문제는 더 깊은 뿌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목록과 비슷한 악한 생각, 음란, 탐욕, 악독, 비방, 교만 등을 말씀하셨습니다(막 7:21-23). 이런 죄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시작된 죄가 욕구로 가지를 뻗고 악행으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 다시 말해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하려면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심장이식수술). 죄를 조금도 알지 못하시고 악이 조금도 없으신 분을 닮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 안에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지식과 생각이 담겨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롬 8:29). 선지자 에스겔이 기록한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셨습니다(겔 11:1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들은 절대로 죄를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살 수 있고 좋은 사람, 좋은 남편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자신을 살펴본다면, 그 안에 악한 생각과 욕구, 그리고 그 열매인 죄가 삶에서 계속 맺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대신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로운 마음을 넣어주시며 죄를 벗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을 입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만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출신을 묻지 않습니다. 11절 말씀처럼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할례파(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나 무할례파(할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나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주전 11세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침략한 아주 강한 야만성을 가진 자들)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출신도 따지지 않습니다. 종이든 자유인이든 그리스도는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기에 충분하시며 그들이 악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는 일에 충분하십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운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선을 사랑합니다. 종종 연약하여 악한 생각을 품고, 악한 욕구를 키우며, 죄를 낳기도 하지만, 그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시 1).
가장 대표적인 본을 보여준 사람은 바로 다윗입니다. 그가 쓴 시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왜 제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왜 주무십니까?” 바울이 말한 악한 욕구나 분노, 비방의 죄가 흘러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채웁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고라 자손이 쓴 시편 42편엔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 나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로 채워질 때 바울이 에베소서 24장 23절에 말한 것처럼 “오직”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욕구와 행위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에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엔 한정된 용량이 있고, 우리가 세상적이고 미신적인 것을 채우면 그만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로 우리 마음을 온전히 채우기 위해 다른 것을 배설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말고 어떻게든 그리스도를 더 얻기 위해 수고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자기 형상을 닮도록 변화시키는 일 즉 옛사람을 벗겨 내고 새사람을 입히는 일에 충분한 지혜와 지식과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