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그리스도만 따르십니까?(하)
본문 : 골로새서 2장 8-23절
설교자 : 조정의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골로새 성도들을 권면하신 말씀으로, 오직 그리스도만 따르고 다른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대로 거짓 가르침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적, 미신적 사상을 그리스도에 추가하려는 것이고,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거짓 가르침을 추가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입니다(8절).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것은 실제로 골로새 교회가 유대교와 이교도 사상의 영향 아래 여러 가지 거짓 가르침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16-23절). 골로새 교회는 유대교가 집착했던 안식일, 초하루, 먹고 마시는 것의 규례 등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추가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교도에서 흘러들어온 금식, 고행, 천사 숭배, 환상 등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힘주어 설득합니다.
오늘 성령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도 동일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오직 그리스도로 충만함을 누리기를, 그래서 설교 제목처럼 오직 그리스도만 따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두 가지 변증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고 두 번째는 죄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9절 말씀이 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9절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여기서 “그”는 8절 마지막에 언급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 곧 하나님의 본성과 인격의 ‘모든 충만’이 계속해서 거하십니다(현재형). 하나님의 전능하심, 전지하심, 편재하심, 영원하심, 무궁하심, 거룩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자비, 공의, 정의 등 하나님께 속한 모든 본성과 인격 전체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제로 영원히 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거동락 했던 제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영광을 누가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10절 말씀도 유사합니다.
10절 너희도 그(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을 누린다’라는 말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신성으로 충만하시고,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 아름답게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두신 모든 신성의 충만함으로 충만합니다. 나머지 11절부터 15절까지,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셨는지 설명합니다.
11-15절을 설명하기에 앞서, 저는 먼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진리를 변증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분이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신 충만함도, 결과적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충만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들에게도 이 변증이 유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미 들어오신 분들도 우리가 충만함을 누리는 근거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계속해서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의 기둥 위에 세우셨습니다(마 16:16-18).
변증1: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만물을 충만하게 하신다
복음반 공부할 때 종종 저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 제가 자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주로 답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입니다. 우리가 법으로 그렇게 하지 말자고 정했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면서 그 사회적 합의를 배우고 경험하기 때문에 도덕적 기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달라지면 언제든 도덕적 기준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간통, 낙태,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고 법이 변경되는 현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이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 봅시다. 만일 아주 강력한 카리스마와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정권을 갖게 되어 자기에게 유리한 방법대로 법을 뜯어고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법에 따라 사람의 소유물을 빼앗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면, 그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가령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당, 소련의 스탈린과 공산당, 중국의 마오쩌둥과 공산당처럼 말입니다(이들이 죽인 사람의 숫자는 대략 1억 2천만 명). 아무리 법을 바꿔도 본질적인 도덕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 도덕적 본질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요?” 만물이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 약육강식의 생존 방식에 따라 우세한 개체가 살아남고 우열한 개체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라면 말입니다. 자연법칙에 따르면 왜 우열한 민족을 학살하고 강력한 민족이 살아남는 것이 나쁜 것입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대답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창 1:27). 인간의 기본권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권도 없습니다.
본질적인 도덕 기준 역시 하나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마 10:19).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속여 빼앗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도덕적 근거는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변하지 않는 기준에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도덕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며, 언제든 잘못된 통치자와 권세가 악용할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근거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도덕적 양심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롬 1:20; 히 3:4). 그리고 하나님이 오직 인간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죽음 이후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역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전 3:11).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십니다.
변증2: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왜 우리가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는지, 그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게 막고 있는 문제에 관해 변증하겠습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11-15절 말씀은 예수님이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셨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과 같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 곧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옵니다(약 1:17). 여기엔 호흡, 건강 등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 안전, 평안, 만족, 기쁨 등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엡 1:3).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으로 온전히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상태였습니다(창 1:31).
문제는 죄가 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문제가 그렇게까지 심각하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상종할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크신 긍휼과 자비에 따라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마 5:45).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거둬가신다면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한편, 지옥에서 영원히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바로 그것이 될 것입니다.
죄가 존재할까요? 죄 혹은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살인, 간음, 강간, 절도 등 수많은 범죄가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일이 미치는 파괴력, 고통, 슬픔을 헤아려본 사람은 누구든 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변증한 대로 이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싫어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거스르는 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인, 간음, 강간, 절도, 거짓 증언 등을 하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행동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죄, 특별히 골로새서 3장에 기록된 것처럼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모두 욕구와 관련 항목)도 죄라고 하셨습니다(5절).
우리 모두 이런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음란한 마음이나 탐심을 한 번도 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죄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분명히 판결합니다(롬 3:23).
죄의 가장 깊은 뿌리로 내려가면 거기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시 14:1).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시지만,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롬 1:21). 하나님이 만물을 자기를 위하여 창조하시고 붙들고 계시는데도,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엡 2:3). 바로 거기에서 악한 욕구와 악한 생각이 가지를 뻗고 악한 행위를 열매 맺는 것입니다.
우리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사 59:2). 아무리 많은 고행을 하고 금식을 해도 죄를 가진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규례를 지키고 종교적 행위에 열심히 참여해도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환상 같은 초자연적 경험을 했다고 해도 죄인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천사를 숭배하여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 요청하려 해도 죄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일반적인 공급과 돌보심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록한 것처럼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 3:9).
주님은 도둑 같이(갑자기) 오실 것이고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벧후 3:10). 하나님과 단절된 끔찍하고 처절한 현실을 제대로 느끼며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땅에 태어난 모든 죄인에게 정해진 운명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드디어 본문 11절 말씀을 살펴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창조주로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함을 우리가 맛보지 못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11절부터 15절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살펴봅시다.
변증3: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11절과 12절에는 할례와 세례라는 예식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예식 모두 어떻게 죄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먼저 11절을 보시면 “그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옛 언약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증표가 할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 언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따로 떼어 구분된 것처럼, 신자는 “육의 몸” 곧 죄악 된 몸 가운데서 따로 떼어 구분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죄 가운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구분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증표입니다.
12절에 나오는 예식 “세례”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하셨는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12절 중반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와 함께”, “그(그리스도) 안에서 함께”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신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를 함께 묶어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의 결과를 우리가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례식 때 하는 일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침례탕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물속에 잠깁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고 무덤에 묻히실 때, 우리도 함께 죽고 장사 된 것입니다.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을 때(부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신 모든 일의 결과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12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은 다른 어떤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갑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롬 1:17).
2)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하셨다
11-12절을 통해 죄인이 그리스도와 운명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던 죄는 어떻게 해결하신 것입니까? 그 대답이 13-14절에 나옵니다.
13, 14절에 나오는 표현들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외인이었던 이방인을 묘사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의 구원받기 전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기준으로 볼 때 “범죄”를 행했고, “육체의 무할례”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를 묘사한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엡 2:12).
바울은 13절에 “죽었던 너희”라고 표현하는데,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 죄인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바로 전에 살펴본 내용), 그리고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1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확실히 제거하셨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먼저 그들의 죄를 마치 채무 증서처럼 묘사합니다(“법조문으로 쓴 증서”). 여러분 카드 대금이 적힌 서류를 볼 때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특별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카드 대금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한 절망감을 가져다주고 소망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 급기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듭니다.
죄인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습니다.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죄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금액은 오늘날 단위로 환산하면 약 3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죄는 죄인을 거스릅니다. 불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의 허다한 죄, 무거운 죄, 모든 죄를 지워버리셨습니다. 완전히 제거하셨습니다. 어떻게요?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머리 위에는 죄 패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있었지요. 그건 그분의 죄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죄가 조금도 없으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습니다(고후 5:21). 그 죄 패에는 사실 죄인의 허다한 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빚진 모든 채무 증서가 박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죄인의 모든 죄를 완전히 제거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는 악한 영들을 제압하셨다
마지막 15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사로잡으려는 거짓 가르침, 세상적, 미신적 가르침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제압하셨다고 선포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바로 그 악한 영들, 마귀(사탄) 그리고 그와 함께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귀신들(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풍조를 만들어 불순종의 아들들 즉 죄인들을 조종합니다. 죄인이 자기 육체가 원하는 것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사람의 가르침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사로잡으려는 세력도 이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무력화하셨습니다. 머리를 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18). 예수님은 또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요 16:33).
특별히 15절에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는 표현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성으로 복귀하면서 큰 환호를 받고 그 뒤에 포로로 잡은 적군을 끌고오는 것을 묘사합니다. 원수 마귀와 그 졸개들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고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키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 발아래 꿇게 하셨습니다(빌 2:9-10). 10절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모든 통치자와 권세를 굴복시킨 “머리” 곧 으뜸이 되신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바울이 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며 선포하는지 아십니까?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행위가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제압하신 패배자들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헛된 속임수를 좇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분으로 우리는 충만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충만할 수 없다고 미혹합니다. 불평, 불만, 염려, 낙심은 우리가 그들에게 속아 넘어갈 때 우리 삶에서 맺는 열매들입니다(배우자, 아기, 건강,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우리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만유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골 3:11). 그런데 무엇이 더 필요하십니까? 무엇이 부족하십니까?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