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한 7가지 이유

본문: 여러본문

설교자: 조정의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 착용법과 구명조끼 사용법을 알려줄 때, 당신은 얼마나 집중해서 듣는가? 죽고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는데도 아무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쳐버리지 않는가? 왜?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심각한 난기류를 만나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승무원이 비행기가 바다에 비상 착륙하게 되었으니 구명조끼 사용법을 잘 들으라고 소리치고 있다면 어떨까? 살기 위해 바짝 귀를 기울일 것이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꼭 필요한 이야기니까.

이 천년 전 어느 날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주의 영광으로 그들을 두루 비추고 크게 무서워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모든 사람에게 미친 좋은 소식은 바로 이것이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구주 예수가 이 땅에 나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식이고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소식이다(눅 2:14). 그러나 당신에게는 이 소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구주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들어보라.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1.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신)이 없다면,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 없다. 신을 부정하는 세계관을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을 갖는다. 반대로 신을 인정하는 세계관은 유신론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 외에도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만일 유물론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도 없다. 부부 간의 사랑, 부모의 자식 사랑도 종족 번식을 갈망하는 본능을 일으키는 호르몬 작용이지 실체는 없다. 사람은 단지 지능이 뛰어난 동물에 불과하다. 영혼도 허구이기 때문에 소멸하고 난 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을 숭배한다. 만물은 지금까지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흘러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진화해 나가는 것이 옳다. 하나님이 없다면.

성경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에 관하여 이렇게 책망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대표적인 유물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이 없는 세상에 관하여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가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존 레논, 이매진). 하지만, 기술과 사회가 발전하면서 도덕과 윤리는 계속해서 후퇴하고 순리는 역리로 바뀐다. 세상은 갈수록 더 부패하고 악은 사라지기는커녕 만천하에 더욱 퍼져 나간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브레이크를 제거한 자동차처럼 멸망을 향하여 아무런 제동 없이 질주하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그렇게 해도 아무런 상관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그러면서도 구주가 필요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세상은 결코 행복한 세상이 아니다. 매우 암울하고 위험한 세상이다. 다행히 하나님은 계시고 그래서 당신은 구주가 필요하다.

2.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엔 신을 믿는 종교가 참 많이 있다. 어떤 종교는 수억 개의 신을 숭배한다(힌두교). 각각의 종교가 믿는 신은 그들만의 구원을 제시한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구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는 개인의 참선과 수양으로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어떤 종교는 미사와 고해성사 등 경건한 종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어떤 종교는 계속해서 제물을 바치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신의 호의를 얻어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신을 위해 폭탄을 몸에 달고 자신을 희생하면 천국에 이른다고 말하는 무자비한 신도 있다. 만일 이 많은 신이 모두 다 살아 있는 참된 신이라서 당신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교통수단처럼 결국 최종 목적지인 구원으로 당신을 이끈다면, 사실상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 없다. 어느 정도 성실하고 착하게 살다 보면 수많은 신들 중에서 어떤 신이든(혹은 그들 모두가 어떻게든) 당신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한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4-6).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시다. 그분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나머지는 다 죽은 신(가짜 신이다). 그분만이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을 위한 구주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3.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신다면 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가 실제로 죄를 단순한 욕심, 그 욕심이 낳은 허물 정도로 취급한다. 선을 수입, 죄를 부채로 보고 총합이 마이너스가 아니면 괜찮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면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될 수 있는 한 착하게 사는 것이다. 허물을 덮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죄가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죄가 조금 있더라도 적당히 봐주지 않으실까?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시 5:4). 그럴 수 없다. 빛과 어둠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과 함께하실 수 없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4. 당신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죄를 도저히 참지 못하시는 거룩하신 분이라도 당신이 만일 거룩한 자라면 구주가 필요하지 않다. 당신 자신을 점검해 보라. 당신은 거룩한 자인가? 예수님이 당신의 점검을 도와주실 수 있겠다. 그분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경고하셨다(마 5:22).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다(마 5:28). TV에 나오는 범죄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나 정도면 그렇게까지 죄인은 아니다.” 당신도 똑같이 핑계 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 대한 판결을 내리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당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이다. 당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것을 당신 스스로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5. 하나님께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선 명제와 중첩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에 관한 판결을 내리시지만, 심판하지 않고 넘어가신다면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 없다. 하나님이 어쩌면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헛된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시작됐다.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죄인을 영원히 심판하지는 않으실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거짓 가르침이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내가 죄인이긴 한데, 설마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까지 엄벌하시겠어?’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죽은 자의 심판을 묘사한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2, 15).

지위가 높거나 낮은 자, 재산이 많고 적은 자 누구도 차별이 없다. 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에 빠짐없이 그들의 죄악이 적혀있고 그 죗값대로 불못에 던져져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불못에서의 무기징역이다(“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 때가 되면 죄를 다 씻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원히 당신의 죄에 진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잠시 당신에게 구주가 필요한 이유를 정리해 보자. 성경이 말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거룩하셔서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데 당신은 그분 앞에 분명한 죄인이고 그 죄를 스스로 씻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관점의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에겐 분명 구주가 필요하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구주를 보내주셔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자신의 통치 아래 있던 피조물이 반역했다면 모두 쓸어버리고 새롭게 창조하면 그만이다. 반역을 저지른 자를 살려주는 것은 왕이 베푼 은혜이지 그가 당연히 베풀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죄인인 당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넘치는 긍휼과 자비로 당신을 바라보지 않으셨다면, 당신에게는 구주가 주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당신이 그분을 필요로 하고 원한다고 해도.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주로 하나뿐인 아들을(독생자) 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경이롭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분명, 당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독자를 내어주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에겐 구주가 결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 전에 시작되어 영원히 계속될 이 놀랍고 변함없이 신실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인가!

7.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하나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사랑이 지극히 크셔서 죄 때문에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당신을 불쌍히 보셨다. 하지만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구원자를 반드시 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지급해야 할 값이 헤아리기 힘들만큼 크다면 더욱 그렇다. 차에 치인 길고양이를 한없이 불쌍히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 살리기 위하여 지급할 수 있는 돈은 제한적일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지급하신 값은 얼마인가?

성경은 말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가령 당신에게 (혹시 있다면) 가장 귀한 독자의 목숨값.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희생제물로 바쳐질 어린 양으로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셨다. 예수님의 목숨값이 바로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급한 값의 크기이다. 예수님도 억지로 목숨을 버리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스스로” 당신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요 10:15, 18).

만일 누군가 당신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었다면 그 희생적인 사랑에 평생 감사하며 살지 않겠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7-8). 죄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내리시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당신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거나 바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원수처럼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은 자기 독자 곧 당신의 구주의 목숨을 당신을 대신하여 내어주심으로 크신 사랑을 확증하셨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것을 당신이 믿느냐이다. 당신에겐 구주가 필요하다. 그 필요를 못 느낀다면 당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성경을 하찮게 여기며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에 대한 형벌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값을 내어준 그 큰 사랑이 당신에게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