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설교자: 조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사도가 전수한 복음의 핵심이다(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3-4절). 누구든지 이복음을 진실로 믿고 굳게 지키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2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을 ‘받았고 또 그 가운데 섰다’고 말했다(1절).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모든 나라,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언한 사도적 복음을 전수 받아 그 가운데 믿음으로 굳게 선다.
믿는 우리에겐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겐 미련한 것이다(고전 1:18, 23). 이천 년 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 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당한 죄수에게 어떻게 믿음을 두고 살아간단 말인가? 어떻게 구원자가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의 형틀 위에서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남을 구원할 수 있는가?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보게 만드는 이 의문들을 단번에 해결하는 답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죽임당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죄인 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으나 하나님의 살리심을 입어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부활하심으로 자기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셨다. 부활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부여한다.
본문을 통해 성령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부활의 말씀을 들어라. 십자가의 도를 거리끼는 것으로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당신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는 능력을 베푸실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믿는 당신도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전수 받은 복음을 더욱 확실히하고 더 견고하게 그 가운데 서도록, 성령께서 부활의 능력을 더하실 것이다.
1.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성경대로…죽으시고, 성경대로…다시 살아나사(3-4절).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미련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나사렛 예수가 외력에 의해 자기 의지에 반하여 무기력하게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그분의 죽으심이 하나님이 전부터 뜻하신 계획을 철저히 자발적인 의지로 순종하신 것이었다면 어떨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약 700여년 전,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할 것이며, 우리의 평화를 위해 징계를 받고, 우리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을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셨다(사 53:5). 1400여 년 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았다고 말씀하셨고 이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신 21:23). 시간을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람이 죄를 범해 저주 아래 있게 됐을 때, 하나님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그는 뱀에 의해 발꿈치를 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창 3:15). 이는 죄의 저주에서 사람을 해방하고 원수를 이기실 그리스도의 상함을 예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마시라고 주신 잔, 아버지의 뜻으로 여겼다(요 18:11).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고 계셨다. 그래서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면서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도록 아버지께 구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물으셨다(마 26:52-54).
예수께서 하나님 뜻대로 죽으셨다는 걸 확증하는 표적은 무엇인가? 부활이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보일 표적이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고 하셨다(마 12:39).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뭍으로 나온 요나처럼,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대로 순종하신 것임을 부활의 표적으로 확증하셨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교하며 인용한 시편 16편 말씀엔 ‘주의 거룩한 자를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나타난다(시 16:10; 행 2:27). 예수님도 자기 부활이 하나님 뜻대로 된 것임을 확실히 아셨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셨다(눅 24:25-27). 또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성경엔 참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신 참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는 표적이다.
2. 역사적으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그러면 둘째, 그리스도는 실제로 부활하셨는가?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불신하는 사람은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실험 과학이 실험을 통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달리 역사 과학은 증거와 증인을 통해 사실을 입증한다. 이순신 장군이 실존했고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것,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시했다는 것은 모두 역사적 기록과 증인의 증언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본문 5-8절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의 목록이 나온다: 게바, 열두 제자, 대다수가 살아 있는 오백여 형제(+자매),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비어있던 무덤을 봤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고, 함께 식사하고, 못자국을 만져 봤다.
만일 이들이 종교적 열심히 대단하여 거짓말하거나 망상을 한 거라면? 그러면 예수를 장사지낸 무덤에 가보면 된다. 하나님의 교회 교주 안상홍처럼 무덤에 시신이 그대로 묻혀있다면 부활이 거짓이라는 게 단번에 들통날 테니. 하지만 무덤은 비었다.
만일 이들이 광신도라서 예수의 시신을 훔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두고는 부활하셨다고 거짓을 퍼뜨리는 거라면? 실제로 대제사장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덮기 위해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이런 소문을 내게 했다(마 28:11-15). 하지만, 큰 돌로 막고 경비병이 굳게 지키던 동굴에서 시신을 훔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누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톱으로 몸을 켜서 죽기까지 자신이 만든 거짓을 믿으려 하겠는가?
사람들은 고대 문서의 역사성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려 애쓰지만, 성경의 증언만큼은 의심하고 불신한다. 하지만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로서 하나님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아무리 자신이 무신론자이지만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리 스트로벨처럼, 만일 당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신약성경에 기록된 증인들의 증언을 평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진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3. 우리 위해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셋째,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딱히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그분의 부활이 확증하기 때문이다.
13절부터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성도들을 꾸짖으며 부활이 믿는 자에게 주는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13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이 참된 것이고 거기에 둔 믿음도 참된 것이다(14절).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우리는 복음의 참 증인이다(15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성도에게도 소망이 있고(18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헛되지 않다(19절). 첫 사람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죽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를 믿는 자는 살고 생명을 얻게 되었다(21-24절).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죄 씻음을 받고 새 생명을 누리는 자, 즉 사도적 복음을 전수 받고 그 가운데 믿음으로 굳게 선 자들이 누리는 부활에 합당한 삶,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①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한다(32-34절). 방종(“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은 부활에 합당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내일에 있을 보상과 심판을 믿는다.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져올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을 가져올 의를 부지런히 행한다. 부활의 능력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작동되는 게 아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거룩함을 원하고 행하게 하신다.
②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대한다(35-50절).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는 썩을 육체다. 타락한 육체다. 약한 육체다. 흙에 속한 육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할 육체다. 영광스러운 육체다. 강한 육체이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육체다. 지금 입고 있는 육체에 실망하고 좌절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가 입게 될 새로운 몸을 기대하라. 주가 부활하신 것이 분명한 만큼, 우리도 부활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49절).
③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51-57절). 그리스도인도 죽음을 무서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망이 쏘는 아픔은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 율법 앞에 온전하지 못한 죄인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느끼는 고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곧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사망이 쏘는 아픔을 면한다. 사망을 이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린 영원한 형벌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은 자로서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다.
④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쓴다(58절).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 더욱 주의 일에 힘쓴다.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썩어질 것이 썩지 않는 것에 둔 우리 믿음을 흔들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보상이 바로 주어지지 않아도,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주가 약속하신 보상을 믿음의 눈으로 본다. 그래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쓴다. 우리는 불확실한 것에 막연한 믿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확실한 부활은 우리 믿음을 확실한 것으로, 견실한 것으로 만든다. 복음에 깊게 뿌리내려 굳게 서게 한다. 그래서 갈수록 더 주를 위해 살고 싶게 한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게 한다.
복음을 믿고 그 가운데 선 자들이나, 복음을 거부하고 그 밖에 선 자들이나 모두 예수의 부활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예수의 부활이 참이라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당신의 굳은 마음과 반항심밖에 남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복음을 믿는 당신에게 합당한 삶은 너무나도 분명해진다. 사망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당신이 마치 이 세상이 끝인 것처럼 죄를 즐기는 것이 합당한가? 열심히 의를 행하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